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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유산까지 가로챈 '화상 보이스피싱' "검사실도 운영"

10여명이 검찰·수사관 사칭하며 감시
가짜 공문에 감시용 '피싱 앱'도 사용

 

【 청년일보 】 A(25)씨는 이달 7일 오전 전화 한 통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이 보이스피싱(전기통신금융사기)에 속을 일이 없을거라 믿어왔다.

 

 "살면서 보이스피싱 같은 전화가 오면 여유롭게 웃으며 '그렇게 살지 말라' 충고조로 끊기까지 했는데…"

 

서울중앙지검의 '윤선호 수사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은 살짝 어눌하지만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로 A씨 명의의 여러 시중은행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고, A씨가 대포통장을 양도한 가해자인지 정보를 도용당한 피해자인지 밝히기 위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약식조사 녹취를 시작해야 한다며 A씨가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하도록 한 뒤 "담당 검사를 연결해 줄 테니 무고한 피해자로 입증받으라"고 했다.

 

곧 고압적인 말투를 쓰는 자칭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성재호 검사'라는 남성에게 전화가 넘어갔다.

 

'성 검사'는 A씨의 통장이 '중고나라' 등에서 벌어진 조직 사기에 사용됐고, 이 통장에 6천400만원의 피해액이 입금됐다고 했다.

 

그는 "주범을 비롯한 사기 조직원 28명이 이미 검거됐고, 이 중에는 전·현직 은행 직원도 있다"며 A씨가 스스로 피해자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2주 뒤 법원에 나와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사 상황을 남에게 발설하면 '보안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48시간 동안 구속수사를 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A씨는 "각종 법 조항을 들먹이며 윽박지르는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진짜 검사라고 믿게 됐다"고 했다.

 

협박을 이어가던 '성 검사'는 여성인 A씨가 같은 여성 검사에게 조사를 받으면 편할 것이라며 '손정현 검사'라는 이에게 전화를 넘겼다.

 

'손 검사'는 A씨가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계좌에서 현금을 찾아 금융감독원에 넘긴 뒤 자산을 합법으로 취득했음을 증명하는 '금융거래명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10여명이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쉴 새 없이 지시와 협박을 이어갔다. 화상 공증을 한다며 검사실로 꾸민 장소에서 영상통화를 하고,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들의 낙인과 서명이 있는 가짜 공문을 보여주며 실제처럼 믿게 했다.

 

치밀한 사기 수법에 속은 A씨는 결국 은행으로 향했다. 사기범들은 '사기 조직원 중 은행 직원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은행원도 믿어서는 안 되며, 은행원이나 보안요원과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면 본인과 주변인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겁을 줬다.

 

A씨는 이후 9일까지 사흘간 서울시내 은행 10여군데를 돌아다니며 1억4천500만원을 인출해 수차례에 걸쳐 '내사 담당 수사관'이라는 남성 등에게 전달했는데, 이 돈은 어머니의 유산을 비롯해 A씨가 7년 넘게 모은 청약통장과 적금, 보험 등 전 재산이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사흘 내내 A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휴대전화에 '법무부 공증 앱'으로 꾸민 피싱 앱을 설치하도록 해 A씨가 일당과 연락하는 용도 외로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밤에도 취침 전까지 1시간마다 위치를 보고하도록 했다.

 

심지어 은행 안에서는 "폐쇄회로(CC)TV로 다 보고 있다"면서 은행원과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지시하기도 했다. A씨는 "실제로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가까이서 따라다녔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결국 이달 9일 귀가 후 창문으로 몰래 빠져나와 이웃에게 '신고해 달라'는 쪽지를 건네고서야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이들 일당은 신고한 다음 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진행된 약식조사는 취소됐고, 직접 검찰청에 출석해야 한다"고 알리고 연락을 끊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동경찰서는 23일 "보이스피싱 일당 중 1명은 경기남부 모처에서 검거돼 조사를 받았다"며 "CCTV를 토대로 6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다른 피의자가 택시에 타는 모습을 포착하고 나머지 조직원들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 청년일보=안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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