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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정권 말의 마지막 검찰총장···'독립성'과 '중립성'이 화두

유력 후보였던 이성윤 지검장 탈락, '피의자' 검찰총장 우려는 피해
차기 정권에도 영향 미칠 수 있는 자리, '불편부당'한 업무 수행해야

 

【 청년일보 】 검찰은 국가 최고 수사기관이다. 총수인 검찰총장은 엄격한 상명하복(上命下服)으로 무장되고,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의 원칙을 고수하는 검사집단을 지휘한다. 한마디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자리다.

 

검찰은 민간인은 물론 정치인 등 힘 있는 자들을 상대로 수사해야 한다. 이 때문에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보장이 필수적이다. 검찰이 조직 체계상 행정부에 속하지만 다른 부처와 달리 일방적인 지휘를 받지 않는 이유다.

 

특히 검찰총장의 임기는 법에 보장돼 있다. 지난 1988년 검찰청법이 개정되면서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겨났다. 검찰총장 임기제 역시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검찰청법 개정 이후 2년 임기를 끝까지 채운 역대 검찰총장은 8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3명은 중간에 사퇴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됐던 윤석열 검찰총장도 임기를 4개월 남긴 상태에서 검찰을 떠났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검찰총장들은 대부분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과의 갈등을 겪었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상대를 벨 수 있지만 자칫하면 자신이 다칠 수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마찬가지 사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사표를 던진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임으로 임명될 차기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일 공산이 크다. 그리고 누가 되든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통상적으로 정권 말에 터지는 각종 정치적 사건은 검찰총장의 결단을 요구한다. 그리고 결단의 지향에 따라 현 정권의 레임덕은 물론 차기 정권의 색깔을 바꿀 수도 있다. 당연히 현 정권에서는 레임덕을 막아줄 방패용 검찰총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반 검사들은 물론 국민은 다르다. 정치적 중립지대에 있으면서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업무를 수행할 인물을 기대하는 것이다. 

 

검찰총장 인선은 천거 → 추천 → 제청의 절차를 밟는다. 지난 3월 15일부터 진행된 44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민 천거 절차는 같은 달 22일 마무리됐다. 법무부는 이 가운데 본인 동의 및 검증 절차를 거친 14명을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심사 대상으로 올렸다. 추천위원회 위원장은 박상기 전 법무장관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으로 퇴임후에도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세워 온 인물이다. 

 

추천위원회는 29일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김오수 전 법무차관, 구본선 광주고검장,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그리고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 등 4명을 박범계 법무장관에게 추천했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이른 시일 내 1명을 최종 후보자로 선정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할 예정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면 인사청문회를 거쳐 5월 말 또는 6월 초 새 검찰총장의 임기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추천위원회의 이날 최종 후보군 확정 결과보다 더욱 관심을 모은 것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탈락이다. 그동안 검찰 안팎에서 나돈 차기 검찰총장 하마평에서 그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일각에서는 차기 검찰총장이 '이성윤이냐, 아니냐'로 갈린다는 말도 나왔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대놓고 "차기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상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 이성윤 지검장에 무게가 쏠리는 단초로 작용했다. 이성윤 지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직속 후배다.

 

이성윤 지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불법 출국 금지와 관련한 형사사건의 '피의자'다.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출국 금지 요청서가 가짜 사건번호와 내사번호를 붙인 위조 공문서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당인 서울동부지검에 "내사번호를 추인한 걸로 해달라"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출국 금지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당연히 지검장의 직인도 없었다. 이 같은 불법 행위를 이성윤 지검장이 은폐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배경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 금지 닷새 전 "검경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이란 지난 2013년 불거진 별장 성접대 의혹을 말하는데,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오래 묵은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이 재차 소환된 것은 2019년 초 불거진 버닝썬 사태 당시의 경찰 유착 의혹을 물타기 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시 '경찰총장'으로 불린 윤규근 총경과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이규원 검사, 그리고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정권에 불리한 내용을 덮기 위해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 금지와 함께 허위 내용이 포함된 의혹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친(親) 정권 성향의 검경과 청와대 비서관이 사고를 치고, 이성윤 지검장이 비호한 구도라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이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들의 행위는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정치공작 그 자체다. 

 

이성윤 지검장은 그동안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불법 개입 사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 정권의 불법에 대한 검찰 수사를 뭉개는 방패 역할을 해왔다. 억지로 꿰맞춘 채널A 기자 사건은 무혐의 처리를 못하도록 끝까지 막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데도 협력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선후배 검사들에게 “당신도 검사냐”, “양심은 엿 바꿔 먹었느냐”는 비판을 들었다.

 

이성윤 지검장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 금지 사건과 관련, 수원지검의 수차례 소환 통보를 모두 무시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수사에서 손을 떼고,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정권의 수족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공수처가 지원군으로서의 역할을 해줄 것이란 계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피의자를 공수처장 관용차로 모시는 '황제 조사' 논란 등으로 여의치 않게 되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카드를 꺼내들었다. 수사심의위원회 개최로 수원지검의 기소를 지연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 차기 검찰총장 레이스를 마친다는 전략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불기소 권고한 한동훈 검사장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겠다는 수사팀의 결재 상신을 몇달 째 뭉개며 질질 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성윤 지검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차기 검찰총장 인선을 위한 추천위원회의 최종 후보군에서 이성윤 지검장이 탈락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이 차기 검찰총장에 이성윤 지검장 임명을 강행했는데, 이후 불법 출국 금지 사건으로 피고인이 돼 재판을 받는 상황이 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불법 출국 금지 사건의 피의자인 이성윤 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천거돼 추천위원회의 심사 대상에 올라갔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워도 후폭풍이 불 것임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검찰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최종 후보군으로 확정된 4명 중 누가 차기 검찰총장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정권 인사들이 개입된 사건은 어떻게든 무마하거나 시간을 끌어 사법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울산시장 선거 불법 개입 사건 등 정권 관련 수사는 수사팀 자체를 사실상 공중분해시키는 일도 있었다. 향후 정치적, 사법적 재해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권 말의 마지막 검찰총장이 이 같은 '지뢰밭'을 피해 가기 위해서는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화두(話頭)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형국인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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