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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이해충돌방지법 통과···청렴 진일보 불구 부작용 유의해야

직무상 권한이나 취득한 정보 활용해 사적 이득 취하는 행위 금지
공직 투명성과 행정 효율성은 '상충적 가치'···'신중한 적용' 필요해

 

【 청년일보 】 공직자의 사적 이익 추구를 차단하기 위한 이해충돌방지법이 29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19대, 20대, 21대 국회를 거치며 폐기와 재발의를 거듭하다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은 공직자가 직무상 권한이나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사적 이득을 취하는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직무수행 중 사적 이해 관계자와 얽힐 경우 스스로 이를 피하는 것도 주문하고 있다. 직무 관련자와의 금품 거래는 규제 및 감시 대상이다. 

 

이 법은 또 채용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나 고위공직자의 가족이 해당 공공기관과 산하기관, 자회사 등에 채용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 공직자 및 배우자, 직계 존비속은 공공기관 및 산하기관과의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특히 토지와 부동산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공직자의 경우 기준을 강화, 부동산 매수 14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처벌도 강한 편이다. 미공개 정보로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공직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미공개 정보를 받아 이익을 얻은 제3자도 처벌 대상이다.

 

이 법의 직접 적용 대상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등 190만여 명이다.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까지 포함할 경우 대상이 80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공직자 가운데 국회의원, 차관급 이상의 공무원,  지방의원, 정무직 공무원, 공공기관 임원 등은 '고위공직자'로 분류돼 더 강한 규제를 받는다.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본회의에서 이해충돌방지법과 함께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은 상임위원회 활동 등 국회의원 업무의 특성에 맞춰 구체적 회피·제재 절차를 명문화한 '패키지 법안'이다.

21대 국회 후반기인 내년 5월부터 국회의원들은 당선 30일 이내에 자신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주식·부동산 보유 현황은 물론 민간 부문 재직 단체와 업무활동 내용 등을 등록해야 한다.

이해충돌 발생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의원은 위원장에 상임위원회 회피를 신청해야 한다.이런 의무를 위반한 의원은 국회법에 따라 징계를 받는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처음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지난 2013년이다. 당시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해충돌방지의 경우 공직자의 직무수행 범위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빠지고, 부정청탁 금지 부분만 '김영란법'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일보한 법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에서 보듯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 김영란법의 의도는 바람직 하지만 '과잉입법'의 혐의도 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자는 44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이 부정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건네면 처벌받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全) 국민이 적용 대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 국민이 자기검열을 통해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여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특히 김영란법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타격을 입히는 등 내수경제 전체를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모든 규제는 한편으로 시장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김영란법의 일부 조항은 이미 사문화된 상태다. 아무도 이에 대한 문제점이나 장·단점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아예 관심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는 선의와 명분을 앞세운 과잉입법으로 시장에 피해를 주는 부작용을 감안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규제하는 김영란법, 그리고 직무상 권한이나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사적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은 법안의 성격이 다르다. 그렇다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공직자의 윤리를 규율하는 법률과 시행령이 5개나 있다. 부패방지법에서는 이미 직무상 비밀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LH 사태는 막지 못했다. 법령이 없어 문제가 벌어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직의 투명성과 행정의 효율성은 사실상 한 배에 탄 상충적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행위가 이해충돌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민원 등 국민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자세와 시간을 잃어버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처벌을 의식하면 민간과의 대면을 줄여 본인의 위험 수준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해충돌방지법이 교조적으로 해석ㆍ적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애초의 입법 의도와 달리 공직사회 내부에서 경쟁자 공격하기, 미운 사람 찍어내기 등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이 갑작스럽게 정치권의 '신줏단지'가 된 배경도 석연치 않다.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LH 사태가 메가톤급 악재로 부상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책 마련과 관련, "공직자가 아예 오이밭에서 신발을 만지지 않도록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제도까지 공감대를 넓혀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충돌방지법을 당의 중점 추진 법안으로 띄웠다. 지난 8년간 뭉갰던 이해충돌방지법을 LH 사태가 터지자 다시 소환해 밀어붙였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LH 사태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서둘러 입법을 하고, 그것으로 국민들의 비난을 면했다고 안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모든 법은 선의와 명분을 가지고 입법화된다.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법은 일률적으로 규제하기 때문에 개인 간 발생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행위를 탄력적으로 선별할 수 없다. 특히 대상이 광범위해 적용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질 수도 있다. 과잉입법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법의 적용에 신중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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