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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검찰개혁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역대 정부와 결 달라···'정치적 목적'에 무게 실렸다는 관측
검수완박 등 있을 수 없는 일 강행···권력 비리 수사가 검찰의 정의이자 존재 이유

 

【 청년일보 】 대한민국 검찰의 권한은 막강하다. 기소 독점주의와 기소 편의주의로 요약되는 기소권부터 그렇다.

 

기소 독점주의는 국가의 모든 기관 중 오직 검찰만 독점적으로 기소 권한을 갖는 것을 말한다. 또한 기소 편의주의는 기소 또는 불기소의 결정이 전적으로 검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기소 독점권과 기소 재량권이 함께 주어지면서 힘 있는 기관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개시권과 종결권을 포함한 수사권, 그리고 형집행권과 영장청구권도 갖고 있다. 수사 개시권은 범죄의 혐의 유무를 밝히기 위해 범인을 확보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일을 시작할 권리를 말한다. 수사 종결권은 말 그대로 이를 끝낼 권리다. 사실상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검찰은 특정 정치세력에 우호적인 수사를 하는 정치 검찰, 이권에 개입하는 부패 검찰 등이 문제가 되면 자체 감찰, 특임수사 같은 방식으로 검찰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려는 여론의 비판을 피해갔다. 검찰을 수사할 수 있는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이 같은 행보를 지속하는 사이 거대한 권력집단이 됐다.

 

사실 검찰이 어떤 견제와 통제도 받지 않고 이 같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행사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영미법 체계를 도입해 수사기관(경찰)과 기소기관(검찰)을 이원화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사법 파트너로 경찰을 선택하면서 경찰이 검찰보다 더 큰 권력을 갖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반공(反共)이 중시됐다. 이로 인해 중앙정보부, 경찰청 대공수사단, 국군보안사령부 같은 정보기관이 득세했다. 당시 검찰은 이들 기관의 통제를 받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검찰이 오늘날의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軍) 출신이었지만 권력 핵심부에 군 출신을 줄이고 검사 출신을 중용했다.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사권을 폐지하면서 검찰만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유일한 국가기관이 됐다. 이어 영장청구권까지 독식하게 되면서 거대 권력을 가진 검찰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권한의 오남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처럼 검찰권이 너무 비대해지면서 권한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시도가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도됐다. 이를 처음 가시화한 것이 김영삼 정부인데, 공수처 설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에게는 검찰개혁보다 하나회 해체가 더 큰 과제였기 때문이다. 신군부(新軍部)로 불리기도 했던 하나회는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된 군 내부의 사조직이다.

 

김대중 정부는 호남 출신의 검찰 수뇌부를 앞세워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를 김영삼 정부 때보다 더욱 심화시켰다. 이 때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특별검사제도, 즉 특검이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특검의 수사 대상은 1999년의 '옷 로비' 사건이었다. 옷 로비 사건은 당시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김대중 정부의 고위 인사 부인들에게 옷 로비를 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김태정 법무장관은 취임 15일 만에 사퇴하면서 김대중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검찰개혁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은 '검사와의 대화'가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은 판사 출신의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서열 파괴로 검찰개혁을 시도했다. 특히 대통령이 검사들과 직접 대면해 대화를 가졌음에도 반발을 잠재우지 못했다. 더구나 경찰의 수사권 독립, 공수처 논의 등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유의미한 검찰개혁 움직임이 없었다. 다만 박근혜 정부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만이 유일한 '전과'로 남았을 뿐이다. 한마디로 검찰개혁은 민주화 이후 제기된 오래된 숙제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역대 정부와는 결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 권한의 오남용을 막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노무현 대통령 자살이라는 진보 진영의 '트라우마'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검찰 조직에 대한 강도 높은 숙정(肅正)과 함께 생존 차원에서 검찰의 무력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는 '검수완박'이 나온 배경이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개혁은 개혁 대상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과도한 힘을 빼서 원래 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로 개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검찰의 칼'을 이용했다. 정권 반대세력 제거를 겨냥한 것으로 이는 '독이 든 술잔'이다. 자신들의 정권만 검찰의 칼을 이용하고, 그 다음부터는 못하게 할 검찰개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금 '있을 수 없는 일'을 강행하고 있다. 정권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나라의 형사사법 체계가 붕괴해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선택들이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검찰에 부패, 공직자, 선거, 경제,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사건 수사만 남겨 놓았다. 이마저도 불안했는지 반부패수사부가 있는 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한 지검에서는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수사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규모가 작은 지청 단위에서는 수사가 더욱 어려워 진다. 검찰총장의 요청을 거쳐 법무장관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수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법무장관들은 출중한 대통령의 대리인들이었다. 조국 장관과 추미애 장관이 박범계 장관에 앞서 충분히 증명했다. 권력형 비리를 대통령 대리인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수사하지 못하는 나라가 법치국가이고 민주국가일 수 없다. 정말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여권은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검찰의 수사 기능을 모두 없애는 공소청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경찰이 수사를 독점하고, 검찰은 기소 여부만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청은 공소청, 검찰총장은 차관급의 고등공소청장으로 격하된다.

 

여권에서는 입버릇처럼 '민주적 통제'라는 말을 쓴다. 수사는 영장심사나 재판 등 법원의 사법적 통제를 받는 것이지 민주적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수사 대상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치인도 포함될 수 있는데, 민주적 통제가 국민이 선출한 이들의 지시에 수사기관도 따라야 한다는 의미라면 이는 특정 정치세력을 위한 '검찰의 시녀화'를 의미한다.

 

이 같은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 라임·옵티머스 변호로 도덕성에서도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김오수 검찰총장을 뇌물죄, 업무상 배임·횡령, 변호사법 위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로 고발한 상태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검찰의 정치 종속을 부추길 '똘마니 총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조만간 이루어질 법무부의 검사장급 인사에서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후임으로 대표적 ‘친정부’ 검사

인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심재철 지검장은 지난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과 징계를 주도한 인물이다. 역시 대표적 친정권 검사인 이성윤 지검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승진, 김오수-이성윤-심재철 '조합'이 완성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현 정권 관련 수사는 무마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배우자 등 가족 수사에는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권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인사가 현실화될 경우 후폭풍은 명약관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 정신의 파괴라고 비판했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진정한 검찰개혁이자 정의(正義)라는 입장도 보이고 있다.

 

지금 국민 여론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여권에서는 '산 권력'과 '죽은 권력'을 따지는 것은 그저 메타포일 뿐이며,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정의라는 말에 대해서도 '선택적 정의'라고 폄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본질을 흐리는 것이자 말장난이다.

 

검찰개혁은 '당위'다. 하지만 검찰의 칼을 빼앗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살아있는 권력 수사라는 것은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안다. 모든 권력의 비리를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 검찰의 정의이자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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