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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文 정부 개혁 외면으로 '폰지게임' 전락하는 국민연금

2041년 적자 전환돼 2056년에는 기금 고갈···유례 없는 고령화와 저출산 최대 악재
개혁 미룬 채 복지 포퓰리즘 몰두···나랏빚 더해 국민연금 폭탄 돌리기는 '후안무치'

 

【 청년일보 】 폰지게임(Ponzi Game)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의 금융사기를 말한다. 폰지게임은 신규 투자자의 유입이 줄어들거나 일시에 투자금을 회수하면 파산하게 된다. 폰지사기(Ponzi Scheme)라고도 한다. 

 

현재의 상황을 방치하면 암울한 결과가 뻔한데도 당장 들어오는 보험료로 기존 가입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기에 바쁜 우리나라의 공적연금(公的年金)이 폰지게임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계속 부담을 떠넘기는

재정운영으로 어느 시점에 이르면 미래세대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공적연금 재정운영을 비판하는 정적(政敵)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다. 연금제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는 '위기 경고'다. 차기 한국연금학회 회장인 이창수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창수 교수는 최근 열린 한국연금학회·인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2065년 기준으로 생산가능연령에 속하는 1명이 1명 이상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창수 교수는 또 "공적연금 적자가 2088년에는 1경40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미래세대가 이걸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공적연금은 운영 주체가 국가인 연금으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이미 적자라서 매년 재정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사학연금 도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2023년이면 세금을 넣어야 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 2200만명에 적립된 기금의 규모가 855조원이다. 외형만 보면 국민연금의 덩치는 세계 공적연금 중 3위에 이른다. 법으로 가입을 강제하는데다 선심성 정책의 일환으로 자격 요건도 잇따라 완화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운영이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국민연금의 취약성에 대해서는 이미 무수한 경고가 나왔다. 연금을 수령할 노령인구는 매년 급증하는 반면 보험료를 낼 젊은 인구는 급속도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와 최저 출생률의 이중 '덪'에 갇히면서 들어올 돈보다 나갈 돈이 훨씬 많아져 재정은 '골병'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정부 전망에 따르면 2041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2056년에는 기금이 고갈된다. 유례없는 고령화와 최저 출산률을 감안하면 이 시기도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실제 정부가 지난 2018년 국민연금 재정을 추계할 때 가정한 출산율은 1.24~1.38명이었다. 이 계산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 1명이 부양하는 노인은 2065년 0.9명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실제 출산율은 지난해 0.84명에 그쳤고, 올해는 0.7명대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는 사망자 수가 신생아 수를 웃돌아 인구가 사상 처음 자연감소하기도 했다.

 

잠재성장력은 고꾸라지고 있다. 여기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쇼크까지 겹쳐 장기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되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줄어드는 반면 수령자는 급증하고, 운용수익 제고에도 한계가 있는 3중고(苦)에 처한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된다. 큰 덩치로 인해 많은 주목을 받지만 둔해서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혁 방향과 관련해 '덜 내고 덜 받느냐'와 '더 내고 그대로 받느냐'를 두고 갑론을박하지만 지속가능성 측면을 감안하면 더 내고 덜 받아야 하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란 기존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의미하는데, 이를 40%에서 50%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시계(時計)를 지난 2017년 4월 대선후보 2차 TV토론으로 옮겨보자. 당시 유승민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겠다는데, 무슨 돈으로 할 것이냐"고 따졌다. 이에 문재인 후보는 "보험료 증가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보험료를 더 내지 않고도 연금 수령액을 늘릴 '환상적 비법'이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정말 이 같은 정책이 가능하다고 믿은 것인지, 아니면 선거를 앞두고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을 내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약속하면서 보험료 인상에 반대한 것은 두고 두고 발목을 잡게 된다. 좋은 말로 하면 '딜레마'에 빠진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국민을 속인 것이다.

 

여권 일부에서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시점은 먼 미래의 일인 만큼 나중에 개혁을 해도 된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책임 회피다. 개혁을 미루는 것은 미래세대에 폭탄을 돌리는 일임에도 기금 고갈 문제를 꺼내면 '공포 마케팅'이란 프레임을 뒤집어 씌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 범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1월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국민연금 개혁안 3개를 모두 퇴짜 놨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인데, 실상은 지지율 깎아먹는 개혁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개혁안 3개는 모두 보험료를 더 내는 방향이었다.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보험료는 동결하고 연금 수령액을 줄이라는 지침을 준 것도 아니다. 그 무렵 연금 전문가인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국민연금 개혁의 근본적인 해법은 ‘더 내고 덜 받기’다. 여론 악화 등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카드라면 운용수익 제고를 위해 재정운영 역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안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엉뚱하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이 문제를 넘겨버렸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노사정 대화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본연의 기능이다. 국민연금 개혁과는 번짓수가 다르다는 얘기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그해 12월 ‘현행 유지’까지 포함된 4개의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무책임과 무소신의 극치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정부의 입장이 어정쩡하니 20대 국회에서 통과될 리 없었다. 거대 여당이 독주하는 21대 국회는 더 문제다. 의석수만 놓고 보면 여권이 절대 다수여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 논의는 아무런 진전이 없다.

 

국가 지도자의 역할은 제도에 내재된 문제와 실상을 국민에게 사실대로 알리고,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스웨덴과 독일 등 다른 나라의 정부는 정권 잃을 각오를 하고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더불어민주당도 관심사는 오직 퍼주기식의 복지 포퓰리즘이다.

 

개혁을 늦출수록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은 떨어진다. 미래세대에게 막대한 나랏빚을 물려주는 것도 모자라 국민연금 폭탄까지 돌리는 것은 너무도 후안무치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 폭탄 돌리기조차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성세대만 덕을 보는 국민연금의 실상을 파악한 젊은 세대가 가입 거부나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료 인상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연금 수령액이 줄어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했다. 제 때 개혁하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치면 공적연금은 폰지게임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미래세대의 생선 뼈까지 발라먹는 것이나 진배없다. 

 

개혁은 회피하면서 복지 포퓰리즘에 몰두하는 것은 한 때의 '눈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를 망친 지도자로서 영원히 기록될 수 있다. 대한민국호(號) 자체를 바닷속에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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