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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비극의 아프가니스탄···'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예정된 결말

초강경 율법으로 공포정치 펼친 탈레반···예상보다 빠른 카불 점령
인권 암흑시대 재현 공산···스스로 돕지 않는 나라 돕는 것은 '한계'

 

【 청년일보 】 아프가니스탄은 3800만명의 인구에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의 6.5배다. 내륙 국가로 대부분이 고산지대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외세는 많았다. 기원전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시작해 알렉산더 대왕과 징키스칸도 있다. 근현대 들어서는 영국과 러시아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역사상 어떤 제국이나 강대국도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들이 점령한 곳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시 지역일 뿐이다. 산악지대는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들여놓은 제국이나 강대국은 도시 지역의 저항없는 태도에 속았다가 산악지대 전사를 만나면 좌절을 겪곤 했다. 

 

이는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환경에 기인한다. 아프가니스탄 동쪽은 800㎞ 길이의 힌두쿠시 산맥이 동과 서를 나누고 있다. 완전한 산악지대인 셈이다. 서쪽은 거의 사막으로 몇 군데의 강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같은 거친 환경으로 아프가니스탄 민족은 지역적으로 분리된 채 종족사회로 살아왔다. 전체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을 비롯해 타지크족·하자라족·우즈베크족 등 4개 종족이 다수를 차지한다. 종교적으로는 99%가 이슬람을 믿지만 수니파(80%)와 시아파(19%)가 공존한다. 

 

파슈툰족이 아프가니스탄의 주류 세력이 된 것은 18세기 아프가니스탄 민족국가 건설을 주도하면서부터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아프간은 파슈툰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어느 한 종족이 전국을 통치했던 적은 없다. 종족간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대표적인 것이 무자헤딘에 뿌리를 둔 북부동맹과 탈레반의 내전이다.

 

무자헤딘은 '성전(지하드)에서 싸우는 전사'를 의미한다. 지난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친소 정권을 수립했을 때 저항에 나선 반군 게릴라를 의미한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무자헤딘을 적극 지원했으며,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도 동참했다. 결국 소련은 10년간 5만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고 1989년 2월 철수했다. '제국의 무덤'이란 말도 이 때부터 회자됐다.

 

북부동맹의 주력은 타지크족·하자라족·우즈베크족이다. 이들은 1996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자 5년간 내전을 벌이게 된다. 당시 탈레반이 장악한 국토는 전체의 4분의 3에 지나지 않았다. 탈레반은 나머지 북부 지역도 장악하기 위해 북부동맹을 공격했지만 완강한 저항에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선포했다. 특히 미국은 9.11 테러 참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비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지목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북부동맹은 탈레반을 몰아내는 주도 세력이 된다. 

 

2002년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대규모 소탕작전을 벌인다. 하지만 이들은 험준한 남부 지역의 산악지대로 숨어버렸다. 특히 2003년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발목이 잡히면서 기사회생한 탈레반은 2005년부터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2007년 이슬람 국가 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화려하게 부활했다. 

 

탈레반은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집단이다. 온건 파슈툰족과는 또 다르다는 얘기다. 실제 탈레반은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 산재한 이슬람 신학교의 교육을 이수한 신학생들, 그 중에서도 전쟁 고아들이 주축이다. 이들이 이슬람권 국가들마저 경악할 초강경 율법을 펼치며 공포정치에 나선 것도 어쩌면 정해진 수순인지 모른다. 

 

탈레반은 집권 당시 수니파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탄압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굴을 파괴한 것이 대표적이다. 암벽에 조각한 석불들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으며, 동굴 내 불화는 화염방사기로 태워버렸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박물관에 있는 유적들을 도끼로 박살내 사막에 갖다버렸다. 

 

이 같은 문화재 반달리즘도 인권침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탈레반은 모든 언론활동을 중단시켰으며, TV와 라디오는 오로지 하나의 채널로 24시간 쿠란만 방송하도록 했다. 서구식 학교, 도서관, 극장은 모조리 폐쇄시켰다. 절도범은 손목을 잘랐고, 재범일 경우에는 발목을 잘랐다.

 

남성들은 수염을 자르지 말아야 했고, 면도하는 이들을 공개처형했다. 특히 의료, 교육, 법률의 권리를 박탈하는 등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여성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여성 변호사를 선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교육이 금지돼 있는 만큼 여성 변호사가 있을 수 없다. 또 여성의 몸은 여성만 진료할 수 있는데, 여성 의사가 있을 수 없다. 부르카를 입지 않으면 사형시키는 것은 물론 매니큐어를 칠하다 걸리면 손가락을 잘랐다. 

 

수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수도 카불 인근의 공항으로 몰려든 아비규환의 장면이 펼쳐진 것도 바로 이 같은 탈레반 집권 시기의 악몽 때문이다. 탈레반은 과거에 비해 온건해졌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교조적 종교 신념을 토대로 수 십년 동안 큰 희생을 치르며 전쟁을 해온 탈레반이 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권의 암흑시대가 재현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아프가니스탄은 누구나 탐을 내는 전략적 요충지는 아니다. 영국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통로로 활용하려 했고, 소련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했지만 사실상 계륵(鷄肋)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하는데, 개발은 되지 못하고 있다. 설사 원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돼도 파키스탄을 거쳐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활용이 어렵다. 큰 대가를 치르면서 꼭 손에 넣고 있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드는 땅인 셈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도 철수를 결정한 것은 아무리 도와줘도 성과가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의 카불 점령이 예상보다 빠르기는 했지만 예정된 결말이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면 미군이 1년 더, 또는 5년 더 주둔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은 이를 핵심적으로 대변한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돕지 않는 나라를 국제사회가 돕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복되는 전란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보통 사람, 특히 여성이다.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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