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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세계 경제 '퍼펙트 스톰' 조짐···한국 경제는 '방 안의 코끼리' 위기

미국, 중국, 유럽 발(發) 악재에 '회색 코뿔소' 경고등···재정·통화·금융당국 수장 모두 경고
한국 경제 위기는 구조적 요인 외에 '정치 리스크'도 원인···대선 판가름하는 포인트 돼야

 

【 청년일보 】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기상(氣象) 용어다. 개별적으로 보면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내는 현상을 말한다.

 

퍼펙트 스톰이 경제 용어로 진화한 계기는 지난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한 달러가치 하락과 국제 유가 및 곡물가격 급등으로 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세계 경제는 '홍역'을 치렀다.

 

한마디로 퍼펙트 스톰은 한꺼번에 악재가 겹쳐 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최근 세계 경제에 또다시 퍼펙트 스톰의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유행 와중에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는 조짐이 뚜렷한 것이다. 

 

실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개발회사 헝다(恒大)사태와 함께 전력난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유럽 역시 풍력 발전량이 감소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이로 인해 소규모 기업들의 파산이 잇따르고 있다.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것이다.

 

미국은 정부 부채의 상한을 법으로 정해 놓는다. 미국 정부의 법정 부채 한도는 22조 달러(약 2경6107조원) 수준인데, 현재 이를 초과한 상태다. 이는 지난 2019년 설정된 것인데, 한동안 유예됐다가 지난 8월 부활됐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행정부는 더 이상 빚을 내지 못한 채 각종 비상조치를 통해 연명해 오고 있다.

 

미국의 회계연도 시작일은 10월 1일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달 28일 국가부도(國家不渡)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 의회가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높이거나 유예하지 않으면 디폴트, 즉 국가부도에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달 30일 임시지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연방정부의 업무정지 상태를 의미하는 셧다운은 가까스로 모면했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데 실패하거나 유예하지 못하면 국가부도 사태를 피할 수 없다.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은 현재 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다. 신호등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교통체증은 물론 일부 상점들은 촛불에 의지해 장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 통신이 중국의 진짜 위기는 헝다 사태가 아닌 전력난이라고 보도한 이유다. 실제 헝다의 부채는 중국 은행권 총 부채의 0.3% 정도인 만큼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전력난은 중국 공장의 가동을 멈추게 할 만큼 심각하다. 

 

원인은 호주산 석탄의 수입 금지 정책이다. 호주가 화웨이의 5세대(5G) 통신사업 참여 배제와 코로나 19 기원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자 지난해 10월부터 호주 석탄의 수입을 금지했다. 보복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중국에 부메랑이 됐다. 코로나 19 상황이 다소 안정되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전력 수요가 늘어나자 발전용 석탄 공급 부족에 직면한 것이다. 호주산 석탄은 중국이 사용하는 발전용 석탄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중국의 전체 발전량 가운데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57%에 달한다.

 

상황은 유럽도 마찬가지. 천연가스를 비롯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 올 겨울 에너지 수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것은 풍력 발전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전체 발전량의 4분의 1을 풍력에 의존하는데, 올해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영국 당국은 부족해진 풍력 발전량을 메꾸기 위해 천연가스 발전 비중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천연가스 가격이 2배 이상 급등하면서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영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럽은 총 발전량의 16%를 풍력에 의존하고 있는데, 지난해 봄 이상한파로 난방용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럽 천연가스 사용량의 3분의 1 이상을 공급하는 러시아가 최근 천연가스 수출을 대폭 줄였다. 시베리아의 천연가스 생산공장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이지만 '유럽 길들이기'의 일환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무척 높다. 대외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계산되는데, 국내 금융시장 역시 해외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퍼펙트 스톰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위기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미 코로나 19 이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는 급격히 꺾이고 있다. 국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가중되고 있다.

 

생산·소비·투자가 동반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도 재연되고 있다. 지난 8월 전산업생산지수는 전월보다 0.2% 하락했고, 소매판매액지수는 0.8% 떨어졌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5월의 마이너스(-) 5.1% 이후 15개월 만에 가장 큰 폭(-5.8%)으로 감소했다. 국내 경제의 생산, 소비, 투자가 모조리 뒷걸음질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며 소비심리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은행 금리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특히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율이 15%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국내 요인 관리도 부실하면서 한국 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살얼음판에 내몰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한계기업과 자영업자의 부실 확대, 자산의 급격한 가격조정 등 다양한 리스크가 일시에 몰려오는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회색 코뿔소(gray rhino)'에 비유했다. 멀리서 풀을 뜯는 코뿔소가 날카로운 뿔을 가진 위험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외면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금융위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등이 이전부터 깜빡였지만 '버블 잔치'에 취한 시장은 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마침내 거품은 터졌고, 코뿔소에 치인 경제는 오랜 기간 신음했다.

 

거시경제금융회의에는 홍남기 부총리를 비롯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금융위원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등 재정·통화·금융당국의 수장들이 모두 모였다. 이날 회색 코뿔소가 언급됐다는 것은 상황이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고작이다. 초대형 복합위기를 대출 규제 정도로 막겠다는 접근 자체가 위험한 상황을 외면하려는 회색 코뿔소라는 지적이다. 여전히 장밋빛 낙관론을 버리지 못하고, 경기를 재정으로 떠받치려는 행보가 눈에 읽힌다. 

 

실제 경제계의 한 인사는 "정부가 장밋빛 낙관에 빠져 있는 사이 미국, 중국, 유럽 발(發) 악재에 가계부채 문제는 물론 생산·소비·투자 등 실물경제에도 복합적인 위기가 왔다"며 "단순히 가계부채 문제 대응에만 그치지 말고 복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경제는 제로 성장, 더 나아가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활용해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 즉 잠재성장률에 대한 경고등 역시 점멸하고 있다. 경제의 기초체력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물론 성장 잠재력이 이처럼 허약해진 것은 구조적 요인이 한 몫 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투자 부진, 생산성 정체 등의 요인이 겹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정치 리스크'다. 서울대 싱크탱크인 국가전략위원회가 6일 발표하는 보고서 '코리아리포트'가 이를 적확하게 짚고 있다. 

 

보고서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은 잘못된 처방이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저출산·고령화 대응 재원은 포퓰리즘 증세 대신 보편적 증세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공 일자리는 생산성이 낮아 국가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재정만 낭비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경제 위기는 회색 코뿔소를 넘어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에서 온 셈이다. 누구에게나 보이고 모를 수가 없는데, 알량한 정치적 이해를 위해 마치 안 보이고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폐단에 과감히 메스를 가하고, 경제 위기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제시할 수 있는지 여부가 내년 대통령 선거를 판가름하는 핵심 포인트가 돼야 할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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