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신뢰, 플랫폼은 사람"…107년 전 청년들의 '아날로그 단톡방'

등록 2026.03.01 08:00:00 수정 2026.03.01 08:38:08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스마트폰 대신 기차표 끊고 치마폭에 선언서 숨겨…전국 이은 오프라인 점조직
편의 넘어선 '목숨 건 약속'…시대 달라도 맞닿아 있는 청년 세대의 실천과 연대

 

【 청년일보 】 3.1절이 올해로 107주년을 맞았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스마트폰을 꺼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해시태그를 달고 오픈 채팅방에 모여 의견을 나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은커녕 전화기도 귀했던 1919년의 청년들은 어떻게 전국적인 만세 운동을 동시에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지하실의 낡은 등사기와 청년들의 발품에 있다. 1919년 당시 만세 운동의 기획과 실행의 중심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오늘날의 메신저 단체방이자 중앙 서버 역할을 한 것은 인쇄소 보성사와 각 학교, 종교 시설 지하실에 숨겨둔 등사기였다.

 

보성사에서 비밀리에 인쇄된 2만1천장의 독립선언서 외에도, 연희전문학원이나 세브란스 의전 등의 학생들은 기숙사와 하숙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독자적인 지하신문과 격문을 밀어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손에 잉크를 묻혀가며 유인물을 만들어낸 이들의 아날로그 기획력은 전국적인 만세 운동의 불씨로 작용했다.

 

정보의 확산 방식도 무척 흥미롭다.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수백만 명에게 메시지가 전달되지만, 107년 전의 알고리즘은 철저히 사람 그 자체였다. 거사일 즈음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갓 찍어낸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품에 숨기고 고향행 기차에 올랐다.

 

이들은 일제의 촘촘한 검문검색을 피하고자 놀라운 기지를 발휘했다. 여학생들은 치마폭이나 버선목에 유인물을 둘러서 운반했고, 남학생들은 학생모 챙 안쪽이나 구두 밑창에 선언서를 숨겼다. 기차역에 내린 청년들은 다시 며칠 밤낮을 걸어 이웃 마을 장터로 소식을 전하며 거대한 전국구 네트워크를 완성해 나갔다.

 

보안 유지 역시 오늘날의 메신저 암호화 못지않게 철저했다. 서울 시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담당자를 배정하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 학생들의 연락망은 일제의 정보망을 교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모임 장소는 수시로 변경되었고, 암호를 사용해 거사 일시를 전달했다.

 

만에 하나 체포되더라도 다른 동지들의 이름이나 전체 계획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각자가 하나의 독립적인 노드 역할을 한 결과다. 디지털 발자국이 남지 않는 시대의 훌륭한 보안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김재원 가톨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지금의 단톡방이 편의의 도구이고 SNS가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이라면 1919년의 점조직은 목숨을 건 약속이었다"며 "알고리즘이 아니라 신뢰가 연결의 기준이었고, 서버가 아니라 사람이 플랫폼이었던 시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07년 전 청년들이 가졌던 가장 강력한 소통의 무기는 책임감과 서로를 지키겠다는 신뢰의 태도였다"라며 "최근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청년들이 SNS를 통해 빠르게 모여 연대를 조직한 것처럼, 1919년과 오늘은 단절이라기보다 다른 조건 속에서 이어진 서로 다른 두 개의 실천으로 보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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