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데이트 브렌트(Dated Brent, 실물 브렌트유 가격) 가격 급등 등 정유업계의 원재료비 부담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통상 원가 상승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전가되지만, 현재는 글로벌 수요 위축과 정부의 가격 억제 기조에 가로막힌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수익성 방어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지속가능항공유(SAF) 혼합 의무화’까지 임박하며 업계의 고민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당장 원가 부담으로 기초 체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설비 전환 등 비용 부담까지 감내해야 하는 탓이다.
◆실물 원유값 역대 최고… ‘역대급 백워데이션’에 수익성 악화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데이트 브렌트’ 가격은 지난 7일(현지시간) 배럴당 144.42달러를 기록, 1987년 집계 시작 이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날 브렌트 선물 가격이 109달러 선에 머문 것과 대조적이다. 데이트 브렌트는 선적 기일이 확정된 실물 가격을 가리킨다. 선물(Futures) 가격이 장부상 계약이라면, 데이트 브렌트는 당장 정유 공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실제 원유 가격이다.
현물 가격이 선물을 크게 웃도는 ‘백워데이션(현·선물 가격 역전)’ 현상의 발생은 글로벌 수급 불안이 극심하다는 방증이다. 즉, 중동 전쟁 장기화 여파로 나중에 받을 권리보다 당장 실을 수 있는 기름이 귀해진 상황인 셈이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의 고민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유업계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 지속으로 재고 평가 이익을 누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여러 악재가 겹치며 수익구조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유사의 '원재료비' 부담이 커졌다. 일반적으로 원가가 오르면 제품 가격도 함께 상승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전쟁 여파로 글로벌 수요가 크게 위축된 탓에 가격 인상도 쉽지 않은 상태다. 결국 제품 가격은 올리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원유만 비싼 가격을 주고 사와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여기에 정부가 가격통제에 나서고 있다 보니 국내 마진에 대한 고민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가격통제로 기름값이 과도하게 억제될 경우 원가가 오른 기름의 소비량이 줄지 않고 재고 소진이 빨라지며 오히려 수급 위기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대응책 마련조차 여의치 않다. 다른 이유가 아닌 전쟁에 따른 타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보니 기업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가가 높아지고 있지만 수요는 위축되고 있어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다만, 원인이 전쟁에 있다 보니 개별 기업이 특별한 대응에 나서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SAF 의무화’ 임박… 거액 투자·원료 확보 ‘이중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되는 가운데 정유사들은 ‘탈석유’를 위한 미래 투자까지 서둘러야 하는 처지다. 글로벌 항공유 시장의 SAF 사용이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항공유 수출 1위인 국내 정유업계로선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SAF 사용 의무화 바람이 시작된 가운데 국내 역시 2027년부터 모든 국제선 항공편에 SAF 1% 혼합이 의무화된다.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혼합 의무 비율은 2030년 최대 5%, 2035년 1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될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강제성이 부여됐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SAF 2% 혼합 의무화를 시작으로 2050년까지 그 비율을 70%로 확대할 방침이다. 미국 역시 2050년 SAF 100% 전환을 목표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싱가포르와 캐나다 등 주요국들의 경우 세제 혜택을 내걸고 SAF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정유사들은 기존 설비에 바이오 원료를 함께 투입하는 ‘코프로세싱(Co-Processing)’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수율과 생산량에 한계가 뚜렷하다.
때문에 시장이 확대될수록 전용 생산설비 확대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평가된다. 의무 비율이 확대될수록, 필요 생산 물량도 늘어나는 만큼 신규 전용 설비의 필요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다만 전용설비와 함께 인프라 투자까지 필요한 만큼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원료인 폐식용유 확보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국내 생산 물량의 대부분이 다른 사용처에 수급되고 있어 추가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항공유 시장의 SAF 의무화 흐름이 지속되며 폐식용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이미 지난해부터 바이오연료 기업들은 폐식용유 수급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폐식용유의 수출 통제 조치 등을 진행하며 가격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SAF의 의무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여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항공유 시장 경쟁에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특히 항공유의 주요 수출 대상 국가인 미국, 유럽 등이 SAF 도입에 적극적인 만큼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신영욱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