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신건강 문제는 더 이상 일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4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에 따르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국민의 비율은 2022년 63.8%에서 2024년 73.6%로 불과 2년 사이에 10% 포인트 증가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최상위권에 머물며 매년 정신건강 위기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나, 정신건강의학과를 향한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상담 한 회기 당 드는 비용은 통상 5만 원에서 10만 원 이상이며, 대기 기간도 수 주에 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것은 'AI 감정 챗봇'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고, 익명성이 보장되며, 비용도 저렴한 AI 기반 정신건강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 감정 챗봇이란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감정을 인식하고 대화를 통해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Woebot은 인지행동치료 원리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Replika는 AI 친구·동반자 형태로 감정적 교류를 지원한다.
국내에서도 보건복지부 주도로 자살 위험 예측 기술 및 지능형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 개발이 진행 중이며,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 병원은 '토닥이'를 공황장애 치료에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2026년 2월부터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에 자연어 기반 AI 챗봇 '마음이'를 도입해 24시간 상담 접근성을 확대했다.
2024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연구팀은 생성형 AI 기반 정신질환 치료 챗봇 '테라봇'의 임상시험 결과를 의학 저널 NEJM AI에 발표했다. 우울장애, 범불안장애, 섭식장애 진단을 받은 106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테라봇은 기존 외래 치료와 유사한 수준의 증상 개선 효과를 보였다. 연구팀은 환자와 테라봇 사이에 성공적 치료의 핵심 요소인 치료적 동맹이 대면 의료진과 비슷한 수준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AI 상담의 강점은 분명하다. 접근성이 높고 비용 부담이 낮으며, 즉각적인 정서 지원과 반복적인 습관 교정에 효과적이다.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농어촌 지역 주민, 경제적 취약 계층, 또는 낙인에 민감한 청소년과 청년층에게 특히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AI 감정 챗봇이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경고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2025년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매일 사용하는 응답자는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중등도 이상 우울증을 경험할 확률이 30% 높게 나타났다. 물론 연구팀은 '이미 우울한 사람들이 AI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는 양방향 인과관계도 짚었지만, AI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무시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 한계다. 자살 충동이나 심각한 정신과적으로 응급인 상황에서 AI 챗봇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14세 청소년이 AI 챗봇과의 대화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버드 의대 존 토러스 교수는 AI 챗봇의 정신건강 효과를 입증한 연구가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하며 보다 엄격한 임상 검증을 촉구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AI 상담은 이용자의 감정 정보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가 어떻게 저장되고 활용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없다면 '감정 해킹'이라는 새로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AI 정신건강 챗봇 서비스 업체인 슬링샷 AI가 의료기기 규제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2026년 1월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AI와 인간 의료진은 어떻게 함께 작동할 수 있을까. 서울시의 3단계 상담 체계가 하나의 힌트를 준다. AI 챗봇이 상담의 문을 열고, 시민상담사가 공감으로 마음을 잇고, 전문상담사가 위기 대응을 책임지는 구조다. AI가 전부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AI는 대체재가 아닌 연결재로 설계될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AI 감정 챗봇은 정신건강 서비스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새로운 도구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약화, 개인정보 침해, 위기 상황 대응의 한계라는 그림자도 함께 존재한다. 이 기술이 해결책이 될지, 새로운 문제가 될지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는 AI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돌봄 체계 안에서 AI의 역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김진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