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현대자동차가 최근 정규직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결렬과 함께 하청 교섭 압박에 직면했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과도 직접 교섭을 벌여야 한다는 노동 당국의 판단까지 내려졌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조와의 임단협 결렬로 노사간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올해 3월 발효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파고까지 덮치면서, 현대차는 정규직 노조의 파업 위협과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라는 양방향의 압박을 동시에 받아내야 될 위기에 직면했다.
19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사측과의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파업 개시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지난 12일 울산공장 본관에서 열린 제11차 교섭에서 사측과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을 선언했다. 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기본급 14만9천6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지난해 순이익의 30% 수준 성과급 지급, AI(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고용 및 노동조건 보장 등을 요구했다. 여기에 만 65세까지의 정년 연장, 상여금 인상(750%→800%) 등도 함께 주장하고 나섰다.
사측은 노조가 요구하는 기본급 인상 폭과 성과급 규모에 부담감을 느끼며, 구체적 임금·성과급 제시안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년 연장에 대해서도 법제화가 이뤄진 이후 도입 시기를 논의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현대차 노조는 지난 15일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쟁의행위 조정 신청은 노조가 합법적인 파업권을 얻기 위해 거쳐지는 절차다. 중노위가 노사 간 이견을 좁히기 어렵다고 보며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린 뒤, 찬반투표에서 전체 조합원 과반이 파업에 찬성하면 노조는 합법적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이달 24일 조합원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며, 중노위 결정은 25일 전후 나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만약 올해 협상이 파업 국면으로 치달을 경우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미 노조는 지난해 8월 중노위 조정 절차를 거쳐 파업권을 확보한 뒤, 9월 들어 사흘 연속 부분 파업을 단행한 전례가 있다. 당시 노조는 9월 3일과 4일 각각 2시간, 5일에는 4시간 동안 파업을 벌였는데, 이는 2018년 이후 7년 만의 파업이었다.
사흘간의 파업 이후 노사는 월 기본급 10만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성과금 450%+1천580만원, 주식 30주, 재래시장상품권 20만원 지급,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체험관 건립 등에 합의하며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현대차는 지난해보다 복잡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정규직 노조의 파업 리스크에 더해 지난 3월 발효된 노란봉투법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넓힌 노란봉투법을 근거로 노동 당국까지 사내 하청 노조와의 직접 교섭을 해야 한다고 나서면서, 현대차는 '원·하청 동시 교섭 요구'라는 전방위적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노동계에 따르면, 울산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현대차 하청노조 10곳이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공고 시정신청' 사건에서 '인정'을 결정했다. 원청인 현대차가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질적 사용자'이므로, 하청 노조의 교섭 절차에 응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번 시정 신청에는 남양연구소와 국내 공장 사내 하청을 비롯해 보안업체, 구내식당, 자동차 판매대리점 등 다양한 직군에서 근무하는 조합원 1천675명이 대거 동참했다.
그동안 국내 제조업계는 구내식당, 청소 등 외주 협력업체에 위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요 근로 조건은 물론, 노사 문제 역시 각 협력업체가 독립적인 경영 주체로서 전담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현대차 역시 직접 고용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근로 조건은 각 협력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노위의 결정은 외주를 맡긴 원청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이 있다면 하청 노조 문제까지 직접 떠안아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결정에 대해 금속노조는 성명을 내고 현대차에 즉각적인 원청 교섭 이행을 촉구했다.
금속노조는 "현대차가 하청 노동 현장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해 온 만큼, 사용자 책임을 지는 것이 개정 노조법의 취지"라면서 "즉각 지노위의 시정명령을 이행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울산지노위가 판단한 구체적인 사용자성 인정 범위와 대상 직군은 향후 판정문이 공개돼야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측은 판정문을 확인한 뒤 법적 절차와 규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향후 하청노조가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완성차 업계 전반은 물론 국내 제조업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동차 생산 공급망에 직접 들어가는 업체라면 몰라도, 주력 업종과 무관한 청소·경비·식당 등 주변적인 영역까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준 것은 과도한 판정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기업의 경영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건 물론, 국내 제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노위가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원청 대기업이 구내식당이나 경비 등 수십 군데의 하청업체와 일일이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직접 교섭 요구가 제조업계 전체로 확산되면 대한민국 제조업 특유의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