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한 기업의 명운을 바꾼 결정적 순간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은 2012년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를 첫손에 꼽을 것이다.
당시 채권단 관리하에 놓여 '주인 없는 기업'으로 표류하던 하이닉스는 그 누구도 선뜻 손대지 않던,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부실기업에 불과했다.
이 기업의 모태는 1983년 설립된 현대전자로,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아 독자 생존을 모색하던 한국 반도체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내부의 거센 반대와 시장의 비관론을 홀로 떠안은 채 막대한 재정적 리스크를 무릅쓰고 인수를 단행한 인물이 바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직물과 카세트테이프, 자전거 등 소소한 내수 기반 업종으로 출발했던 선대 그룹의 자산을 정보통신(ICT)과 정유라는 국가기간산업으로 도약시킨 데 이어, 마침내 글로벌 첨단 기술 시장의 핵심 축인 반도체 영토까지 개척해 낸 순간이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인수 이후 글로벌 반도체 다운턴(경기 침체)의 파고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특히 글로벌 IT 수요 둔화와 메모리 가격 폭락이 겹친 2023년에는 연간 7조 원이 넘는 막대한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그룹의 존폐를 걱정할 만큼 장기간 극심한 경영난을 몸소 겪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처럼 수조 원의 적자가 누적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지출을 축소하는 일반적인 경영 문법을 깨고, 오히려 미래 시장을 겨냥한 조 단위의 과감한 선제 투자를 뚝심 있게 단행했다.
기술 초격차를 확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혜안이 바탕이 된 모험이었다.
이러한 장기적 안목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선두 지위라는 거대한 결실로 돌아왔다.
특히 최 회장과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사이의 인연은 글로벌 AI 생태계를 재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하이닉스 인수 초기부터 다져온 오랜 친분과 신뢰를 바탕으로 시작되었으며, 최근까지도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연쇄 회동을 갖고 차세대 HBM 공급과 AI 동맹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등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 회장은 국내 재계에서 별도의 원고 없이도 AI 기술의 메커니즘과 트렌드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심층 연설이 가능할 만큼 최고의 기술 권위자로 정평이 나 있다.
경영자가 직접 기술의 본질을 완벽히 꿰뚫고 있었기에 젠슨 황과의 깊은 교감이 가능했고,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미래 베팅을 흔들림 없이 지속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의 리더십은 개별 기업의 성과를 넘어 대한민국 재계 전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그가 2021년 3월 경제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민관의 가교 구실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점은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엄중한 시기에, 최 회장은 특유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미래 통찰력을 바탕으로 수출 전선의 규제 해소와 경제 외교를 주도하며 재계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제 SK하이닉스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일등 기업의 반열에 올랐고, 최태원 회장 역시 시대를 앞서간 혜안을 증명하며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일등 경영인의 가치는 정점에 섰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자산 시장과 기술 권력이 가파르게 재편되는 지금, 최 회장과 SK그룹은 성과에 도취하기보다 잘나갈 때일수록 겸손한 태도로 대한민국 경제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과거의 소박했던 시작을 기억하며 미래의 지속 가능한 영토를 차근차근 건설해 나가는 그의 행보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의 가장 선명한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
【 청년일보=안정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