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취업난과 주거 불안,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비참한 세대'로 묘사된다. 반면 기성세대는 고도성장기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자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린 '화려한 세대'로 그려지곤 한다.
이러한 대조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주지만, 실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출생연도만으로 나누고, 각 세대가 하나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에서 연령은 시간이 흐르며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생물학적·사회적 변화를 의미하지만, 세대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공통된 역사적 경험과 사회화를 공유한 집단을 뜻한다.
그러나 같은 세대에 속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높은 자산과 안정적인 연금을 보유한 노인이 있는 반면, 충분한 소득 없이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해야 하는 노인도 있다.
청년층 역시 부모의 자산과 교육 기회, 고용 형태와 주거 조건에 따라 삶의 출발점이 크게 다르다. '청년'과 '기성세대'라는 이름은 이처럼 세대 내부에 존재하는 계층적 격차를 가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일자리와 연금, 복지예산을 둘러싼 문제는 자주 세대 간 경쟁으로 설명된다. 한정된 일자리를 기성세대가 차지하고 있으며, 노인 복지에 쓰이는 재원이 청년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청년과 노인이 국가의 자원을 두고 서로의 몫을 빼앗는 관계가 된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고용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된 문제이며, 노후 빈곤은 불충분한 연금과 사회보장제도의 문제다. 청년 주거난 역시 단순히 앞선 세대가 집을 많이 보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택시장과 자산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세대전쟁 담론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개인과 세대의 책임으로 돌린다. 일자리 정책이 실패하면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복지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으면 노인이 미래세대의 자원을 빼앗는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울리히 벡이 말한 '조직화된 무책임성'처럼 문제를 만들어 낸 구조와 책임의 주체는 보이지 않고,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세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노동·주거·복지의 문제가 세대갈등의 언어로 바뀐다.
현대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는 '청년성'도 이러한 갈등을 강화한다.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도전적이고 유연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는 태도가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제시된다. 안티에이징 산업은 노화조차 관리와 극복의 대상으로 만들며, 노인에게도 계속 젊고 생산적인 존재로 남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작 실제 청년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높은 주거비로 인해 사회가 요구하는 도전과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 청년도, 노인도 모두 젊음과 생산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가 경쟁자로 인식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는 청년세대가 겪는 어려움이 과장됐다는 의미도, 노년층의 어려움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취업과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청년의 현실과 빈곤과 고립에 놓인 노인의 현실은 동시에 존재한다. 어느 세대가 더 힘든지를 가리는 방식으로는 두 문제 모두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세대별 평균 뒤에 가려진 소득과 자산, 고용과 주거 조건의 차이를 살펴야 한다.
세대갈등이 강조될수록 정책과 제도의 책임은 흐려진다. 청년의 불안과 노인의 빈곤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왜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사회보장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지를 물어야 한다. 청년과 노인이 서로의 몫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두 집단을 경쟁자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편제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