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한국생명운동연대가 세계자살예방의 날(9월 10일)을 하루 앞두고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에 자살예방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 마련과 법·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자살예방기금 설치와 기초자치단체의 예방계획 수립 의무화, 군·응급실 등 정보공유 사각지대 해소, 학교 자살예방교육 예산 지원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생명운동연대는 9일 성명서를 내고 "이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이자 사회적 재난인 자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자살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생명운동연대는 한국종교인연대 등 33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9월 10일 세계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정부·국회·지자체에 자살 감소를 위한 정책 추진을 요구했다.
연대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국내 자살 사망자는 1만4천872명으로, 하루 평균 40.6명에 달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0.6명의 약 2.7배 수준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국무총리 주재로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발표하고 '모두가 모두를 지키는 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2029년까지 자살률을 19.4명, 2034년까지 17.0명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2026년도 자살예방 예산은 전년 562억원에서 708억원으로 20.6% 늘었다.
한국생명운동연대는 목표 설정과 예산 증액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또 하나의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과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자살예방 예산의 절대적인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대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김교흥 의원이 지적한 자료를 인용해 자살 사망자 1인당 배정된 자살예방 예산이 226만원인 반면 교통사고 사망자 1인당 관련 예산은 5억4천만원으로 약 240배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또 2003년 교통사고 관련 특별회계가 증액된 이후 교통사고 사망자는 81%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자살 사망자는 1만명 이상 증가했다며,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국가 출연금과 주세, 복권수익금 등을 재원으로 하는 '국가자살예방기금'을 설치하고 단년도 예산 심의에 좌우되지 않는 안정적인 재원 구조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자체 간 자살예방 역량 격차도 문제로 지적했다. 한국생명운동연대는 229개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자살예방 활동 수준의 최댓값과 최솟값이 최대 2.6배 차이를 보였다고 밝혔다.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는 지자체는 전체의 17.5%에 그쳤으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내 자살예방분과를 운영하는 지자체도 12.7%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현행 지방자치법에는 자살예방 사무가 지자체의 법정 사무로 명시돼 있지 않고, 자살예방법상 시행계획 수립 의무도 17개 광역자치단체에만 부여돼 있다. 연대는 자살이 실제 발생하는 229개 기초자치단체에도 시행계획 수립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자체 교부금과 연동하는 종합평가지표에 자살예방계획 이행 여부를 반영해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군과 학교 등 생애주기·특수집단별 자살예방 체계의 사각지대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생명운동연대는 군에서 매년 2.4건의 자살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국방부 담당 인력이 3명에 불과하며, 정신건강 문제로 조기 전역하는 연간 5천여명이 지역사회와 충분히 연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자살예방법상 정보공유 대상기관에 군이 포함되지 않아 입영 전 자살 시도 이력이나 복무 중 위기 상황이 부대의 의료·지원체계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자살예방법을 개정해 군과 병무청을 정보공유 대상기관에 포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교 현장에 대해서는 자살예방교육에 대한 별도 예산 지원 없이 강사 배정 중심으로 운영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정서·행동특성검사만으로 위험 학생을 선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실제 자살한 청소년 가운데 학교가 관심군으로 관리했던 비율이 10~20%에 그쳤다는 게 연대 측 설명이다.
이에 초·중·고 건강검진에 정신건강검진을 도입하고 학교 자살예방교육에 대한 실질적인 예산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응급실 연계 등 위기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개입 체계의 법적 기반 마련도 촉구했다. 현재는 경찰·소방의 정보 연계나 응급실 요청이 있을 때 개입할 수 있어 상당수 위기 상황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자살예방법 개정을 통해 응급실 정보를 자동 연계하고 즉시 출동·지원하는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관련 법안이 아직 개정 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생명운동연대는 국무총리실 내 '범정부 자살대책추진본부'가 단순한 회의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2019년부터 운영됐지만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반복적인 대책 발표보다 정책 이행과 이를 뒷받침할 법·예산 마련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생명운동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주세·복권기금 등을 활용한 국가자살예방기금 조속 설치 ▲229개 지자체의 자살예방계획 수립 의무화 ▲군·응급실 등 정보공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법 개정 ▲학교 자살예방교육에 대한 예산 및 관리·감독 체계 마련 ▲범정부 자살예방 추진본부의 이행력 확보를 위한 점검·평가체계 법제화 등 5개 사항을 정부와 국회, 지자체에 요구했다.
한국생명운동연대는 "국민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자살 감소를 위한 5가지 요구사항이 이뤄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정책을 점검하고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