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최근 상업영화 <암살자(들)>의 개봉과 함께 정치권과 문화계는 또다시 격렬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반세기 전 문세광에 의해 자행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에 당시 박정희 정권 또는 권력 핵심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영화적 가설이 화근이었다.
이미 대법원 판결과 관련국 외교 문서, 심지어 북한 지도부의 사과 기록까지 존재하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음모론적 서사를 덧씌웠다는 야당의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여권과 영화 제작진은 "예술적 창작의 산물이자 성역 없는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로 든든한 방패막이로 삼았다.
이 광경을 바라보며 불과 얼마 전 올여름을 뜨겁게 달군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경기 도중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는 일종의 은어를 응원 구호로 외쳤던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사건이다.
해당 발언의 역사적·사회적 혐오 의미를 온전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학생들의 경위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단체 및 학교 차원의 중징계가 이어졌고 논란을 주도한 10대 고교 선수 2명은 결국 야구 배트를 내려놓고 선수 생명을 완전히 접어야 했다.
당시 사회적 합의와 공론장은 역사적 비극과 피해자에 대한 왜곡·비하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공동체의 아픔을 조롱한 대가는 서슬 퍼런 처벌과 사회적 매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10대 고교생들이 무지함 속에서 뱉은 철없는 혐오 은어에는 엄격하기 짝이 없던 '역사 왜곡의 단죄' 기준이, 왜 수백만 관객을 상대로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비트는 상업영화와 정치 세력 앞에서는 갑자기 '표현의 자유'라는 전지전능한 통행증으로 바뀌는가.
만약 5·18 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참사의 배후를 왜곡하고 모독하는 영화가 개봉했더라도 여권이 똑같이 '과감한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할 수 있었겠는가.
진영 논리에 따라 고무줄처럼 널뛰는 '선택적 표현의 자유'와 '선택적 역사 왜곡'은 철저한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내 편이 행하는 역사의 재해석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되고, 상대편의 왜곡은 '처벌받아야 할 사회적 악'이 되는 가식적 이중잣대다.
정치권과 권력층이 자신들의 팬덤을 결집하고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역사와 예술을 도구화하는 동안 그 부작용과 사회적 갈등, 피로감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 청년일보=안정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