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멍 뜷린 보안...기술 유출은 성장동력 상실 '원흉'

등록 2023.12.19 08:00:00 수정 2023.12.19 08:00:12
이창현 기자 chlee3166@youthdaily.co.kr

 

【청년일보】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는 첨단 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에 한창이다. 그 중에서도 '반도체 산업'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떠오른 지 오래다. 

 

단순 미래 먹거리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안보의 주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날로 발전하는 반도체 기술이 향후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이란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한국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반도체 산업이 어느 때보다 규모가 커진 만큼 초격차를 벌리기 위해선 수조 원대의 시설, R&D(연구개발) 투자는 물론, 남들보다 더 빨리 독보적인 '기술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칫 이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산업기술 해외 유출' 범죄 행위가 대표적이다. 요 몇 년 간 이같은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기업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5일엔 국내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업체에 유출한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부장 김씨와 협력업체 반도체 장비 생산업체 A사 팀장 출신 방씨가 구속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씨는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정보를 무단 유출해 중국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제품 개발에 사용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여기에 방씨와 공모해 A사의 반도체 증착장비 설계 기술 자료를 무단 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해당 피해액만 2조3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 2016년 신생 업체인 CXMT로 이직하면서 기술을 유출했고, 그 대가로 수백억원대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지난 6월에는 삼성전자 전 상무가 자사 반도체 공장 설계도를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수감 중이었지만 지난달 중순경 보석금 5천만원을 내며 풀려나기도 했다. 

 

관련 업계에선 정작 법적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대판 매국 행위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실제로 '대검찰청 기술 유출 범죄 양형기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 2015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총 365명이었다. 이 중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람이 292명으로 무려 80%에 달했으며, 실형을 산 사람은 20%(73명)에 그쳤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도 외국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할 시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 명시된 형량에 비해 실제 선고되는 양형은 극히 낮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외 기술유출은 기본 징역 1년~3년 6개월에 가중 처벌을 해도 최대 6년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의 경우 기술 유출을 기본적으로 6등급의 범죄에 해당시켜 0∼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할 수 있다. 이 경우 188개월(15년 8개월)에서 최대 405개월(33년 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대만은 지난해 국가안전법 개정을 통해 군사·정치영역이 아닌 경제·산업분야 기술 유출도 간첩행위에 포함하도록 명시했다. 

 

이밖에 기술 유출이 국내 기업들에게도 천문학적 손실을 끼친다는 결과도 나왔다. 국가정보원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술 유출 적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총 93건에 달했으며 국내 기업이 입은 피해 추산액만 자그마치 25조 원 규모에 이른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축인 만큼 기술 유출 행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닌 성장 동력을 상실케 할 정도의 사안이 중대한 범죄다. 특히 반도체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추세라 먼 훗날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보면 근거를 더욱 뒷받침한다.

 

국가 핵심기술 유출 행위에 적용될 양형 기준 상향 같은 사법 시스템의 전면 개편 논의가 이젠 본격 이뤄져야 할 시기다. 이에 더해 정부와 기업간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응 전략 등 '보호망 구축' 마련이 시급한 때다. 시기를 제 때 놓쳐 경쟁국에 기술 우위를 내준다면 그동안 쌓아온 '반도체 강국' 입지가 좁아지는 건 시간문제다.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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