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지난해 9월 1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제99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8월 2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갑작스러운 사임을 표명한 지 19일 만이다. 8월 중순부터 불거진 건강 이상설에도 임기 수행 의지를 밝혔던 아베 전 총리의 사임 표명은 전격적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차기 자민당 총재에 관한 사항은 당내 지도부에게 일임했다. 일본은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된다는 점에서 차기 자민당 총재는 곧 총리를 의미한다. 자민당 지도부는 위기 상황에서의 정치적 공백 최소화를 이유로 약식 선거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자민당 내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이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총리를 지지했다.
스가 총리는 파벌이 없다. 파벌 정치가 횡행하는 일본에서 무파벌의 정치인이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파벌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속에서 파벌이 없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여러 파벌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스가 총리의 내각, 즉 스가 정권의 연이은 선거 패배로 올해 가을 총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 내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자민당 일각에서는 스가 총리를 간판으로 총선거를 치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중의원(465명)과 참의원(242명)으로 이루어진 양원제 국가다. 하원 격인 중의원의 임기는 4년으로 언제나 해산할 수 있다. 반면 상원 격인 참의원은 6년으로 임기가 보장된다. 중의원을 해산시키는 권한은 총리의 전권 사항으로 반대파와 야당을 견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의 5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투개표가 이뤄진 도쿄도(東京都) 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은 전체 127석 중 33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연립여당의 일원인 공명당이 차지한 23석을 합해도 56석으로 과반인 64석에 크게 미달한다.
이번에 자민당이 확보한 의석은 도쿄도 의회 선거 사상 역대 두 번째로 적었다. 역대 최저 의석은 직전 2017년 도 의회 선거 때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가 설립을 주도한 도민(都民) 퍼스트(First)회(會)의 돌풍에 밀려 기록한 25석이다.
자민당은 31석을 얻은 도민퍼스트회에 2석 많아 도쿄도 의회 제1당의 지위를 탈환했지만 전체 의석의 26% 밖에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패배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초 자민당은 50석 정도를 확보해 공명당과 함께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했다.
도쿄올림픽 개최 및 관중 수용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된 이번 선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상황에서도 유(有) 관중 올림픽 개최를 추진하는 스가 정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스가 정권은 지난 4월 중·참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3개 선거구 모두 패배한 바 있다. 당시 전통적 자민당 강세 지역인 히로시마(廣島) 선거구에서도 패배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번 도쿄도 의회 선거는 올해 가을 총선거의 전초전으로 불렸기 때문에 자민당이 받은 충격은 더 크다. 수도인 도쿄도(인구 1400만명)는 무당파층 비율이 높고, 그때 그때 여론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지역이어서 중의원을 뽑는 총선거의 '선행지표'로 여겨진다.
스가 총리는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7.23~9.5)이 끝나고 중의원을 해산한 뒤 총선거를 치른다는 계획인데,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번 중의원 임기는 오는 10월 21일이면 끝나기 때문에 올해 가을에는 무조건 총선거를 해야 한다. 스가 총리는 여론 동향을 보면서 중의원 해산 시기를 신중하게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가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오는 9월 30일까지다.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자 자민당 내에서는 "스가 총리로는 중의원 선거에서 싸울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교도통신은 "총리 교체론이 나올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며 "(교체론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확산하면 먼저 9월에 자민당 총재 선거를 하고,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에 임하는 전개도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