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청년들의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공약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청년일보]](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522/art_17483591391793_6c0b61.jpg)
"청년의 눈으로, 청년의 삶을 묻다"
6·3 대선은 어느 때보다 ‘청년’이 중요한 화두입니다. 모든 후보가 청년을 말하고, 청년을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정말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걸까?"
청년일보는 청년과 호흡을 맞추는 젊은 매체로서, 공허한 구호가 아닌, 삶에 스며드는 정책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Zoom-In 청년공약] 시리즈는 '노동'과 '주거', '자산형성', '학자금 대출' 같은 청년 일상에 매우 중요한 문제들과 함께 그들의 '마음'도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정신건강'까지 포함한 <5대 생활 영역>을 중심으로 각 대선 후보의 공약을 비교·분석했습니다. 공약을 단순히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현 가능성과 정책 일관성, 청년 체감까지 따져봤습니다. 이처럼 이번 시리즈는 청년의 입장에서 묻고, 청년의 삶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편집자주>
【 청년일보 】 그동안 청년 공약은 주로 일자리, 주거, 자산 형성, 학자금 대출 등 ‘경제적 기반’을 중심으로 제시돼왔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도 주요 후보들은 청년층의 취업과 주거 안정, 재정적 자립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청년의 삶은 '숫자'와 '소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불확실한 미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많은 청년은 ‘사는 법’을 잊어간다. 번아웃, 무기력, 불면, 고립감, 자기혐오. 이 모든 말들이 지금 청년들의 마음 안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다.
정신건강은 이제 청년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여전히 청년의 마음을 가벼운 상담이나 일회성 바우처로만 다루려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청년들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공약을 전면 내세운 후보는 없다시피한 정도다.
2024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1만4천439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약 40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셈이다. 현재까지 2023년 세부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30대의 자살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11.6% 증가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고 한다.
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20대 청년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2.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대비 0.8명 증가한 수치이며, 전체 자살률(27.3명)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청년 자살자 만큼이나 고립 청년도 숫자도 많다.
![대한민국에는 은둔 상태에 놓인 청년이 54만 명 가량이다. 그들의 상당수는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청년일보]](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522/art_17483592637423_f19aad.jpg)
2023년 발표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는 약 54만 명의 청년이 '은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19~34세 청년의 약 5%다. 자발적으로 사회와 거리를 둔 이들은 단순히 방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일상, 미래에 대한 감각을 잃은 채 살아간다.
이 같은 고립 청년들의 문제는 극단적이지만, 청년 정신건강 문제의 연속선상에 있다. 번아웃에 시달리는 회사원, 반복된 탈락으로 자존감이 무너진 취업 준비생, 감정을 소모하다 지친 비정규직 청년. 이들 모두는 지금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정신건강 위기의 일부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거주하는 K씨(57)는 장성한 아들(30)이 스스로 택한 '고립'을 이해하지 못한다. 20대 초까지만 해도 밝고 명랑했던 아들은 어디서나 눈에 띄는 준수한 외모를 가졌으며, 입담이 좋아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말수가 부쩍 줄더니 급기야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K씨는 아들을 방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늘 먼저 지치고 포기하는 쪽은 K씨였다.
K씨는 "화를 내고 윽박질러도 소용없고, 울며 애원해도 소용없었다"며 "벌써 이런 생활을 한 지가 2년째"라고 말했다.
그는 "초반에는 아들에게 여행을 권하기도 하고, 유학을 얘기한 적도 있었다"며 "차라리 그때 상담과 치료를 권했어야 하는데, 잠시 그러다 말 줄 알고 중요한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게 참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수치가 보여주듯, 이처럼 중요한 청년 정신건강 문제를 두고 이번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의 공약은 없다시피하다. 있어도 두루뭉술한 덩어리 형태로 던져졌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자살예방 전담기구 설치'와 '정신질환자 돌봄 강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청년을 겨냥한 정책으로 보기엔 구체성이 부족하다. 그나마 페이스북에는 "은둔청년, 자립 준비 청년들이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메시지가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정신건강 관련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김 후보의 청년 공약은 주로 결혼 주택 지원, 군 경력 인정, 유연근무제 확산 등 비고립 청년 중심이다.
청년과 가장 가까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은 어떨까. 아쉽게도 이준석 후보는 청년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행히 고졸자인 청년들에게 5천만원을 저리로 대출해 사회진출을 돕겠다는 공약은 소수 청년에게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지난 14일 정신장애인연합회가 주최한 공약 설명회에서 정신건강 공약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정신질환자 인권 보장 강화, 지역사회 통합 돌봄 시스템 구축, 공공 정신건강 서비스 확대 등을 약속하며 "격리가 아닌 공존"을 강조했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우울감을 느끼거나,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청년 등은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일상, 자존감,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모두 끊긴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치료가 필요한 질환인 경우에는 상담이나 약물 처방도 중요하지만, 일상 회복부터 직업훈련, 주거, 자립까지 연계된 사회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정책 전문가 B씨도 “지금은 청년에게 ‘일자리’ 이전에 ‘살아갈 이유’를 묻는 정책이 필요한 시대”라며 “정신건강은 더 이상 복지의 영역이 아니라, 생존과 공동체 회복의 중심 과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공약은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를 반영하고, 정치가 책임져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라도 청년들의 마음 챙김을 위한 정신건강 공약을 청년의 시선에 맞춰 수립해야 한다. 모든 관계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킨 채 고립을 택한 청년 54만 명. 이 숫자가 자살율 통계로 넘어가는 일을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청년일보=박윤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