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② 중구, '남촌에서 힙지로까지' 자본의 역사와 골목의 재탄생

등록 2025.11.01 08:00:02 수정 2025.11.01 08:00:12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초고층 빌딩과 낡은 주택...성장통이 만든 도시의 그림자
18조1천억원 vs 12만명...세수 1위와 자치구 최저 인구수

 

<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두 번째 장소로, 금융과 상업의 심장인 동시에 도심 공동화의 그림자가 드리운 서울의 중심, 중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중구는 1943년 경성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기존 경성부에서 종로구와 분리돼 신설될 때부터 서울의 중심(中心)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한양도성과 남산, 청계천을 기반으로 궁궐, 관청, 시장, 공공시설 등이 집중된 서울의 원형적 도심이었다.

 

조선시대의 중구 일대는 서울 도심의 양면성을 대표했다.

 

경복궁 북쪽의 북촌(종로)이 고위 관료들의 주거지였던 것과는 달리, 남산 기슭 아래의 남촌은 양반, 서민, 이방인, 군속(군 소속이 아닌 민간인으로 행정, 기술, 보급, 의료, 노무 등의 업무를 하던 사람) 등이 거주하는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예로부터 '남촌'은 정치적 주류에서 벗어난 계층이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사대부들이 거주했던 '배척의 공간'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일제가 일본인 거주지와 상업지로 남촌을 개발해 자본과 권력이 모이는 핵심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남촌의 특성은 '화려함과 소외'의 대비로 더욱 심화됐다.

 

명동 일대에 미츠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조지야 백화점(현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등 최신 문물이 도입된 첨단 상업 공간이 들어섰으나, 이는 토착민에게는 소외감을 주는 공간적 분리만 가져왔다.

 

화려한 일본인 상권의 배후지인 청계천 주변이나 충무로(당시 혼마치) 일대 후미진 곳에는 조선인 서민과 도시 빈민들이 집단 거주하며 빈민가를 형성했다.

 

결국 중구는 역사적으로 번영과 빈곤, 두 극단이 공존하며 도시의 명암을 담아낸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지역적 특징을 뚜렷하게 지닌다.

 

 

◆상권의 변천: 자본의 흐름과 공간의 진화
중구의 명동, 남대문, 회현동 등은 개항 이후 상업, 문화, 금융 중심지로 빠르게 부상했다.

 

특히 명동(당시 메이지초)은 일본 상인들의 거주지였던 '남촌'의 핵심 상권으로, 은행과 금융 기관이 집중되면서 서울의 금융 심장 역할을 했다.

 

또한 남대문시장은 조선시대 칠패시장의 전통을 이어받아 전국적인 상품이 모이는 최대의 상거래 거점으로서 역할을 공고히 했다.

 

외국인 상권이 형성되며 국제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한 중구는 광복 후에도 금융, 행정, 상권의 핵심지로 독보적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남대문세무서 관할의 총 세수(국세 징수액) 규모가 전국 세무서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자본 집적도가 높다.

 

2024년 국세 통계에 따르면, 남대문세무서는 18조 1천억 원의 세수를 징수하며 3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중구에 신한·하나·농협 등 굴지의 금융기관을 비롯해 대형 백화점, 국내외 대기업 본사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세수 1위 기록은 중구가 단순히 지리적 중심을 넘어, 징수 규모 면에서 '서울의 경제 심장'이라는 위상을 숫자 그대로 입증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도심 공동화 현상과 상권 침체가 시작되면서 공간 변화를 겪었다.

 

 

◆'힙지로'의 명암: 뉴트로의 상륙과 골목의 변절
을지로는 과거 인쇄, 공구상 중심의 도심 산업 집적 지역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힙지로'라는 별칭과 함께 뉴트로 감성을 찾는 젊은 세대의 성지가 되며 골목 상권으로 재탄생했다.

 

와인바, 카페, 이자카야 등이 공장이나 철물점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독특한 미감을 형성하며 개인 매장 중심의 문화 공간 성격을 띠고 있다.

 

2025년 1분기 기준, 점포 중 일반 매장 비율이 95.7%로 높은 것도 이러한 개성 소비 트렌드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도시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을지로의 상징 중 하나였던 노포 중심의 '노가리 골목'은 젊은 유동 인구와 자본의 유입 속에 변절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대료가 급등하고 신규 프랜차이즈 및 세련된 주점들이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골목 문화는 희석되고 상업화가 가속화되는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및 상인 내몰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을지로입구역 인근에는 '노포스러운' 오픈 콘크리트 콘셉트의 신규 카페와 술집만이 가득해, 정작 옛 도심 산업의 흔적이나 기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도심 공동화와 인구 구조의 변화
중구는 서울 내에서 인구 밀도 변화가 가장 극심한 지역 중 하나다.

 

2024년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 중 인구가 가장 적은 자치구(약 12만 명)이며, 지난 10년간 인구 감소율이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도심 공동화가 심화되며 인구 감소 추세와 고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고, 학교나 생활 인프라가 감소하는 문제가 이어졌다.

 

특히 중구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21.71%, 2024년 기준)은 서울시 평균(약 17%)을 상회하며, 도심 지역의 노령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광객 유입 증가와 함께 여의도 등 인근 도심으로의 접근성을 바탕으로 청년층과 외국인 주민 유입이 늘어나면서 세대 및 인구 구조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중구는 외국인 주민 비율(약 8.64%, 2024년 기준)이 서울시 평균(4.5%)보다 월등히 높아, 상주 인구는 적지만 다문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심지어 신당동, 광희동 등 일부 동은 외국인 비율이 14% 가까이 되는 지역도 있다.

 

명동 등 주요 상권이 유동인구 위주로 재편되는 가운데, 중구는 주민과 상인들이 자발적인 도시재생 모델과 공유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며 도심 공동화 극복을 위한 활발한 민관 협력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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