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석탄 시계가 빨라지는 가운데, 지난 20여 년간 유지되어 온 분절된 발전공기업 체제를 통합 '한국발전공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왔다.
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발전공기업 재편 방안: 한국발전공사법 제정 제안 국회토론회’에서는 현재의 전력 공급 구조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비판과 함께 구체적인 법적 대안이 제시됐다.
■분절의 역사 25년, 결과는 '우회적 민영화'와 '비효율'
이날 토론회의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한재각 공공재생에너지연대 집행위원은 “1999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지속된 발전 5사 분할 체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 위원은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공기업들이 지역과 기술적 협력 대신 억지 경쟁에 내몰리면서 설비와 조직, 투자의 중복이 심화되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우회적 민영화'의 가속화다. 2023년 기준 국내 전체 발전설비 중 민간 비중은 46%에 달하며, 특히 미래 핵심인 재생에너지 분야는 태양광 98%, 풍력 91%가 민간 소유다. 한 위원은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확대에 약 274.5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를 민간 자본에만 맡길 경우 전기요금 인상 압박과 해외 자본에 의한 에너지 주권 잠식은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높은 신용도를 가진 통합 한국발전공사가 재생에너지 투자의 50% 이상을 주도하여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적 실체로서의 '한국발전공사', 구조적 설계안 제시
두 번째 발제자인 이치선 녹색당 정책위원장은 '한국발전공사법'의 구체적인 조문을 통해 재편의 청사진을 그렸다. 제안된 법안의 핵심은 현재 한국전력이 보유한 발전자회사 주식을 정부가 직접 매수하여, 수익 창출에 목매는 주식회사가 아닌 '비주식회사 형태의 공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이 제안한 법안에는 ▲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쇄와 공공 재생에너지 사업의 통합 수행 ▲노동자·주민·환경단체가 참여하는 민주적 이사회 구성 ▲석탄화력 폐쇄에 따른 실직 노동자 우선 고용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특히 법안 제17조(고용보장)는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으로, 발전공기업 통합이 단순히 조직을 합치는 것을 넘어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는 사회적 방파제가 되어야 함을 명시했다.
■전력연맹 "준비되지 않은 전환은 혼란뿐...현장 중심의 정교한 설계 필요"
토론자로 나선 노유근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전력연맹) 정책실장은 노동 현장의 시각에서 통합 논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5가지 정책 과제를 제언하며 무게감을 더했다. 노 실장은 우선 “지난 20년간 발전공기업이 수익 제한 구조 속에서도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헌신해 온 공적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노 실장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기관을 합치는 것만으로는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며, 통합의 실질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영평가 제도의 전면 재설계'를 강력히 요구했다. 현재의 단기 재무 성과 위주 평가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중장기 국가 과제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는 "석탄발전 감축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경영 부진으로 평가하지 말고, 재생에너지 확대 실적과 안전 품질, 정의로운 전환 이행 수준을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 실장은 “'정의로운 Fade out(감축)-Fade in(재편) 전환 로드맵' 수립”을 제안했다. 석탄발전이 사라지는 자리에 단순히 노동자를 던져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 사업을 선제적으로 배치하여 고용 안정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준비되지 않은 전환은 공공성 약화와 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며, 전력 공급의 안정적 유지와 노동자의 지속 가능성이 통합 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에너지 주권 수호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입법 촉구
이번 토론회는 발전공기업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공공 주도 전환'이라는 단일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참석한 김주영, 박해철, 이용우, 정혜경 등 여야 국회의원들은 입을 모아 "에너지 전환은 시장의 논리가 아닌 시민의 권리와 노동자의 생존권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며 입법적 뒷받침을 약속했다.
결국 '한국발전공사법' 제정 논의는 전력산업의 효율성 제고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가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시민에게 보급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더불어 민간 자본의 과도한 이윤 추구를 견제하고, 석탄발전 노동자들의 숙련된 기술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여 '일자리와 환경'을 동시에 지키는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