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2026년 병오년(丙午年)은 '붉은 말의 해'다. 말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삶과 상상력 속에서 자유와 능력, 그리고 하늘과 땅을 잇는 상서로운 존재로 자리해 왔다. 새해를 앞두고 말이 지닌 생물학적 특징과 민속적 의미, 그리고 도심 곳곳에 남은 말의 흔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일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펴낸 한국민속상징사전-말 편에 따르면, 병오년에 태어난 사람은 대체로 호방하고 개방적이며 사교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말처럼 직설적이지만 뒤끝은 없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성정 평가는 말이 지닌 이미지와 오랜 민속 인식에서 비롯됐다.
말은 발가락이 하나인 초식동물로, 겁이 많고 예민한 성향을 지녔다. 이는 생존 전략의 결과다. 5천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한 말의 조상 '에오히푸스(Eohippus)'는 앞발가락 4개, 뒷발가락 3개를 갖고 있었지만, 포식자를 피해 빠르게 달리기 위해 진화 과정에서 발가락 수가 줄어들었다. 인간과 함께 살아온 약 5천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350종가량의 말 품종이 만들어진 것도 이러한 적응의 연장선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의 말은 체내 열을 빠르게 발산하기 위해 피부가 얇고 털이 짧은 '열혈종'으로 분류된다. 역사적으로는 동예의 '과하마(果下馬)'가 기록에 등장하고, 오늘날에는 제주마가 대표적인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무렵까지만 해도 말은 일상적 교통수단이었지만, 1965년 서울 서소문동 고가도로 건설 이후 마차 통행이 금지되며 도시 풍경에서 점차 사라졌다.
민속과 설화 속 말은 단순한 동물을 넘어선 존재로 묘사된다. 말은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잇는 상서롭고 지혜로운 매개체다. 동부여 건국신화에서는 말이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던 큰 돌 아래에서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이가 발견되고, 아기장수 설화에서는 말과 용 사이에서 태어난 '용마(龍馬)'가 우투리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속담에서도 말은 자유와 능력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굴레 벗은 말 달아나듯 한다'는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를,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경험과 지혜를 의미한다. '날개 달린 말'은 비범한 재능을, '말 약 먹듯'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상황을 비유한다. 말의 성정과 신체적 특징이 인간의 삶과 감정에 투영된 결과다.
말의 흔적은 오늘날 지명에도 남아 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은 조선 초기 말을 기르던 마장(馬場)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축산물시장이 들어서 있다. 서초구 양재동 말죽거리는 한양과 지방을 오가던 이들이 말에게 죽을 먹이며 쉬어가던 거리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종로구 피맛골은 신분 높은 관리가 탄 말을 피해 다니던 골목이라는 의미의 '피마(避馬)'에서 비롯됐다. 북한산 말바위 역시 문무백관이 말을 매어두고 풍류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말은 일상에서 멀어졌지만, 말이 남긴 상징과 기억은 여전히 한국인의 언어와 공간, 그리고 민속 속에 살아 있다.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말이 지닌 자유와 생명력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볼 만한 이유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