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나는데 규제에 발목"…대형 마트업계, '유통산업발전법' 성토

등록 2025.04.25 08:00:02 수정 2025.04.25 08:00:09
김원빈 기자 uoswbw@youthdaily.co.kr

2012년 골목상권 보호 취지 개정…"의무휴업일·영업 시간 규제"
코로나19 거치며 이커머스 급성장…'오프라인 기반' 마트 역성장
업계 "공정한 경쟁 조건 필요"…전문가 "소비 트렌드 반영해야"

 

【 청년일보 】 대형 마트업계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의 약진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유통산업발전법'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해당 법률이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에 맞춰 변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입을 모은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형 마트업체들은 최근 이커머스 플랫폼의 급격한 성장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더 이상 이커머스 플랫폼과 대형 마트업체를 대등한 경쟁관계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며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한 제약으로 안 그래도 어려운 업황이 더욱 가혹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난 1997년 유통 분야를 독자적 산업 영역으로 촉진시키기 위해 마련된 법률이다.

 

이 법안은 2012년 당시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소상공인 등 '골목상권'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개정됐다. 이때 추가된 주요 조항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일 지정 등이다.

 

이후 대형 마트업체들은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동시에 매달 2회 의무휴업일을 지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법률의 입법 취지를 인정한다면서도, 유통산업발전법이 소비자들의 소비 트렌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대형 마트업체 관계자는 "당시에는 골목상권과의 상생이 화두였고, 이러한 사회적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에 법률 개정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현재는 대형 마트업체와 골목상권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오프라인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모든 업종이 실적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전년 대비 7.5%의 성장률을 기록한 연도별 국내 소매시장 규모는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3.7%, 3.1% 급감했고, 작년에는 0.9% 떨어졌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는 2021년 전년 대비 -2.3% 역성장했으며, 2022년에는 -7.6% 급락했다. 2023년의 경우 0.5% 성장하며 소폭 회복했지만, 작년 다시 -0.5% 역성장했다.

 

반면 이 기간 이커머스 업계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통계청의 동일한 조사를 보면,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1년 이커머스 업계는 전년 대비 20.2% 급성장했고, 2022년 11.0%, 2023년 8.0%, 2024년 7.4% 등으로 상승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이 시기 유통업계에서 쿠팡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 오프라인 기반 매장의 성장률을 저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형 마트가 지속적인 역상정을 면치 못하던 작년 기준, 쿠팡은 각각 41조2천901억원과 6천23억원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전년 대비 각각 2.4%, 1.5% 감소한 수치지만,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과징금과 통상임금 추정 부담금까지 반영된 수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반면, 대형 마트업계 1위인 이마트는 고강도 체질 개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9조209억원의 매출과 47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물론 대형 마트업계가 부진한 실적을 올린 이유로는 이들 업체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소비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영업시간 제한 조항으로 인해 업체들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통업계에 능통한 한 학계 인사는 "이커머스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신속한 새벽 배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쿠팡의 '로켓배송'이 대표적으로, 시장이 성장할 당시 이와 유사한 배송 서비스로 무장한 이커머스 업체들이 대거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점포라는 확실한 '배송 거점'이 있었지만,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법으로 인해 이를 활용할 수가 없었다"며 "이에 많은 업체들이 외부에 물류 거점을 세우는 등 우회적인 전략을 시도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의무휴업일 지정으로 인해 타 업계에 비해 불공정한 경쟁 조건이 형성됐다는 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요 경제단체의 한 전문가는 "이커머스의 경우 사실상 24시간, 365일 영업을 하는 데다, 접근성까지 뛰어나다"며 "반면, 오프라인 매장 기반 점포는 매출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주말 중 절반을 쉬어야 하는 데다 소비자가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장벽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제도적 악조건 속에서 오프라인 상의 접촉이 제한된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며 대형 마트업계는 그야말로 '절벽'에 몰린 것"이라며 "시장 경제에서 이와 같은 규제 조항을 두는 국가는 흔치 않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당시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률안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대형 마트업체 관계자는 "대형 마트로 인해 소상공인이 더 어려워진다는 인식은 매우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오히려 주변 소상공인들은 인근의 대형 마트가 폐점했을 때 상권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를 더 걱정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대형마트, 전통시장, 소상공인 등이 함께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라며 "적어도 이커머스 업체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소비자들도 해당 법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의견을 적잖게 표출하고 있다.

 

회사 업무 때문에 주말에 주로 장을 본다는 40대 소비자 A씨는 "현실적으로 평일에는 장을 볼 시간이 없어 주말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형마트가 쉬는 날인지 알지 못하고 매장에 방문했을 때 시간적 소모가 너무 크다"고 전했다.

 

비슷한 사정을 가진 30대 소비자 B씨도 "가까운 대형 마트를 두고 먼 곳으로 생필품을 사러 가야 하는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며 "대형마트, 전통시장 각각의 특징이 있는 만큼, 구태여 대형마트의 영업만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도 유통산업발전법이 합리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으로 소비자들이 모두 몰려가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기반 대형 마트업계만 규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기본적으로 유통업이라는 것은 고객이 몰려야만 활성화되는 구조인데, 이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두 번 의무휴업을 하게 되고, 영업시간조차 규제하게 되면 대형마트는 물론 주변 상권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고객을 '빼앗긴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고객이 일단 집 밖으로 나와야 한다'라고 함께 생각하는 게 현재로서는 더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정부나 지자체의 경우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에 대한 지원은 한시적인 일회성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 경쟁력 자체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개인 자영업자가 하기 어려운 도로 정비, 주차장 시설 보완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그 예시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저작권자 © 청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유로49길 23, 415호 (양평동4가, 아이에스비즈타워2차) 대표전화 : 02-2068-8800 l 팩스 : 02-2068-8778 l 법인명 : (주)팩트미디어(청년일보) l 제호 : 청년일보 l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6 l 등록일 : 2014-06-24 l 발행일 : 2014-06-24 | 편집국장 : 성기환 | 고문 : 고준호ㆍ오훈택ㆍ고봉중 | 편집·발행인 : 김양규 청년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9 청년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youth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