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열 히트펌프 재생에너지 편입 "급물살"…'대기업특혜' 논란 속 "반발 고조"

등록 2025.12.19 08:00:00 수정 2025.12.19 08:50:20
이성중 기자 sjlee@youthdaily.co.kr

기후부, 350만 대 보급 공식화에…탄소량 늘고, 비용부담 가중 등 '반발'
업계 ‘그린워싱’ 우려 제기에...기후부 “중견·중소기업 네트워크가 강점”
일각 "일방 강행 아닌 업계 간담회 등 소통 통해 공존 방안 마련" 지적도

 

【 청년일보 】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가 국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과제로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기기 편입을 공식화하고, 오는 2035년까지 국내에 총 35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공격적인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번 정책은 화석연료 중심의 난방 구조를 전기 기반의 고효율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정책 발표 직후, 기존 재생에너지 업계와 설비 중소기업들이 생존권 위협과 정책적 실효성을 이유로 전면 투쟁을 선포하며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기후부는 이러한 갈등을 단순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아닌 산업 전환기의 진통으로 규정하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닌 업계와의 소통을 통한 상생안 마련에 착수했다.

 

이번에 기후부가 제시한 350만 대 보급 목표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후부는 내년부터 제주도에서 실시되는 시범 사업을 기점으로 보급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했다.

 

특히 보급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회의적인 시각에 대해 기후부는 면밀한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반박했다.

 

현재 국내 기축 주택 약 600만 호 중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거나 이미 태양광 설비가 설치되어 전기 효율화가 용이한 250만 호를 1차 핵심 타깃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공시설과 복지시설 등 에너지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시설까지 포함할 경우, 향후 10년 내 350만 대 보급은 실현 가능한 현실적 목표라는 것이 기후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설비업계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결성된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지정 반대 TF팀’과 유관 기관들은 이번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독단적 결정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반대 TF팀’은 올해 초 공기열 히트펌프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을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해 왔다.

 

이들은 유럽 등 해외 사례에서도 공기열 히트펌프는 매우 엄격한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만 제한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인정받고 있음을 지적하며, 국내의 에너지 믹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제도 도입은 자칫 국가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반대 TF팀’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지점은 이번 정책이 탄소중립이라는 명분 아래 실질적으로는 탄소 배출을 조장하는 ‘그린워싱’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 생산량의 약 56.2%가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로 구동되는 공기열 히트펌프가 대량 보급될 경우 간접적인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급증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대TF팀’ 관계자는 “지열 히트펌프와 비교했을 때 공기열은 동절기 난방 시 전력 사용량이 2배 이상 많아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명백한 열세에 있다”며 “에너지 효율이 낮은 기기를 재생에너지로 둔갑시켜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책적 모순”이라고 성토했다.

 

산업 생태계 파괴에 대한 공포도 갈등의 핵심 축이다. 중·소기계설비업계는 공기열 히트펌프가 재생에너지로 지정될 경우, 건설사들이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 등급을 손쉽게 획득하기 위한 편법 수단으로 이를 남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초기 설치 비용이 높지만 효율이 좋은 태양광이나 지열 산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보유한 대기업이 시장의 90% 이상을 독점하는 구조로 재편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곧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수많은 중·소설비업체들의 폐업과 종사자들의 실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으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 반발에 대해 기후부는 당초 ‘선 정책 발표, 후 의견 수렴’이라는 다소 경직된 스탠스를 유지해 오다, 최근 갈등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 전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특히 기후부는 업계가 제기한 ‘대기업 특혜’ 논란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며 중소기업과의 상생 가능성을 강조했다.

 

기후부 관계자는 “시장의 우려와 달리 가전 기반의 대기업은 보일러 설치와 직결된 촘촘한 지역 유통 및 시공 네트워크가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전국적인 서비스 망을 이미 보유한 기존 중견·중소 보일러 업체와 시공업자들이 사업 전환을 시도할 경우, 대기업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후부는 이번 정책이 특정 기업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기존 보일러 산업에 종사하던 중소기업들이 히트펌프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산업 전환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기후부는 중소 시공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기술 교육 지원과 전용 금융 모델 개발 등 구체적인 지원책을 검토 중이다. 또한, 정책 발표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여, ‘반대 TF팀’을 포함한 관련 단체들과의 공식 간담회를 조속히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순히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오해를 해소하고 세부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대 TF팀’ 역시 정부의 이러한 소통 의지에 대해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반응이다. ‘반대 TF팀’ 관계자는 “성명서 발표 이후에도 정부의 묵묵부답이 이어진다면 집단행동도 불사하려 했으나, 늦게나마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면 우리의 전문적인 견해와 현장의 고충을 가감 없이 전달할 것”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진정으로 탄소 중립에 기여하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 설계”라고 덧붙였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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