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최근 모 보험사의 경영실적 조작을 둘러싼 논란에 이어 롯데손해보험(이하 롯데손보)이 보험사 재무건전성의 주요지표인 지급여력비율(이하 RBC비율) 조작 의혹에 휩싸였다.
롯데손보는 금융당국에 감독규정 개정안을 인지 못한 착오에서 비롯된 단순 실수라는 해명을 내놓고 있으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고의성 여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당초 금융당국은 롯데손보가 감독규정에서 명시하고 있는 RBC비율 산출 근거 기준을 위반했다며 제재에 나서려 했으나, 하나손해보험(구 더케이손해보험) 등 일부 보험사들도 동일한 사안으로 문제가 엮이는 등 논란이 확대되면서 결국 금융융위원회에 유권해석을 맡긴 상태다.
금융위원회가 이들 보험사들이 감독규정에서 명시한 RBC비율 산출 기준을 위반했다고 최종 판단할 경우 국내 손해보험사들의 무더기 제재가 불가피 할 전망이다.
RBC(risk-based capital ratio)비율이란, 보험계약자가 일시에 보험금을 요청할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으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RBC비율 산출 결과 100% 이상일 경우 모든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일시에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며, 미만 일 경우 지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에게 RBC비율 150%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100% 이하일 경우 유상증자 등 자본금 증액을 요구하는 등 적기시정조치를 내린다. 이후 보험사는 재무 개선방안을 마련해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영업중단 등 경영상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금감원, 롯데손보 재무건전성 점검서 RBC비율 오류 산출 적발 '논란'...롯데손보 "단순 실수"
5일 금융당국 및 손해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롯데손보에 대한 재무건전성 점검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롯데손보가 재무건전성의 주요 지표인 RBC비율을 잘못 산출해 반영한 점을 적발했다.
보험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말 롯데손보에 대한 점검에 나선 금융당국이 RBC비율 산출 과정에서 가용자본을 과다 계상, 반영한 점을 적발했다”면서 “이에 공시한 RBC비율이 실제보다 높게 산출되는 등 심각한 오류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롯데손보는 RBC비율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가용자본에 무해지보험 상품에 대한 해약환급금을 모두 편입시켜 산출했다.
즉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의 일부를 향후 보험금 지급재원으로 사용할 보험료 적립금을 쌓아둬야 한다. 다만 보험계약 중도에 해약할 경우 지급할 해약환급금이 발생하는데 이 시점에서 발생하는 보험료 적립금과 해약환급금간 차이만큼을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반 보험상품의 경우에 한해서다.
하지만 롯데손보는 감독규정을 인지 하지 못해 야기된 단순 실수(?)란 해명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해지보험 해약환급금 가용자본 과다 계상 "RBC비율 실제보다 올려 공시"...고의성 여부에 '주목'
문제가 된 부분은 무해지보험의 경우다. 상품명대로 무해지보험의 경우 일반 보험상품에 비해 보험료를 낮게 책정하고 있으나, 중도 해약할 경우 해약환급금이 없는 구조다. 때문에 RBC비율 산출 시 중도 해약된 건의 경우 환급금이 없는 만큼 보험료 적립금 부담이 해소된다.
다만 이 역시 RBC비율을 산출할 때에는 일반보험 상품과 동일하게 해약시점 기준 보험료 적립금과 해약환급금 차이만큼만 가용자본으로 인정, 편입해야 한다.
하지만 롯데손보는 무해지보험의 경우 해약환급금을 제로로 계산해 보험료 적립금 전부를 가용자본으로 편입, 결국 과다 계상하면서 RBC비율을 높여 산출했다.
이로 인한 오류로 인해 롯데손보의 RBC비율은 실제보다 약 15%포인트 높게 산출돼 공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007년말 금융당국이 감독규정을 개정하면서 무해지보험에 대한 RBC비율 산출시 가용자본 인정 기준을 명확히 규정한 바 있다”면서 “하지만 롯데손보는 이를 무시한 채 과거 일반보험 상품의 가용자본 인정 기준으로 RBC비율을 산출해 놓고 이제 와서 단순 실수라고 해명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롯데손보는 되레 금융당국이 감독규정 개정 후 시행규칙 내 지급여력비율 산출 양식을 변경해주지 않는 등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행정고시 관료 출신인 최원진 대표이사가 금융위에 금융감독원의 감독부실 등을 집중 부각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진 사장 "규정변경 따른 설명미흡 등 부실" 당국에 책임전가도...일각 "대형보험사는 문제없는데" 궁색
하지만 보험업계 내에서는 롯데손보의 이 같은 해명에 대해 궁색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삼성화재 등 대형 보험사들은 감독규정 개정에 따른 기준에 맞춰 별다른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으나, 문제가 된 보험사들은 주로 중소형 보험사들이다.
금융감독원를 상대로 제기한 롯데손보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전 보험사들이 롯데손보와 동일한 실수(?)를 범했어야 하는데 일부 보험사들에만 국한돼 있다. 현재 롯데손보와 동일한 문제가 드러난 보험사는 롯데손보를 비롯해 하나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흥국화재, 메리츠화재보험 등 5개사에 불과하다.
현재 RBC비율 산출 오류로 인해 롯데손보와 금융감독원간 이견, 논란이 커지면서 결국 금융위원회에 유권해석을 맡긴 상태다.
금융감독원 한 관계자는 “단순 실수라해도 명확한 것은 감독규정을 위반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현재 금융위에 유권해석을 맡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 한 상품담당 임원은 “양측간 논란이 커지면서 금융위에 유권해석을 맡긴 상태이나, 금융위내 보험계리 전문가가 전무해 민간 전문기관 등 학계에 해당 사안에 대해 질의, 답변을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롯데손보가 감독규정을 위반한 것은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난해 말 롯데손보의 계리담당 임원이 사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오류산출 질타 vs 인력 및 시스템 부재 등 경영관리 엉망"...담당임원, 대표이사와 충돌 "결국 사임"
실제로 롯데손보는 지난해 말 금융당국으로부터 RBC비율 오류 산출에 대한 문제가 드러나 논란이 되자 최원진 사장과 담당 임원(RM그룹 그룹장 겸 선임계리사)인 박중언 상무(보)가 충돌,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박 상무가 사임했다.
당시 최원진 사장은 RBC비율 오류 산출에 대해 박 상무를 일방적으로 질타했고, 박 상무는 사측의 인력 및 시스템 부재 등 사측의 소극적인 경영 행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극심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박 상무의 후임에는 삼성화재 계리담당 부장(RM파트장) 출신의 박종순 부장을 상무(보)로 신규 영입한 상태다.
업계 한 고위 임원은 “이들 중소형보험사들의 RBC비율 오류 산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2007년 감독규정 개정 이후에도 줄곧 과거 방식대로 해온 것 같다”면서 "여타 보험사들은 김독규정 변경에 따른 기준에 맞춰 산출, 문제가 없는데, 롯데손보가 단순 실수라고 해명하는 것은 제재수위를 낮추기 위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나오는대로 금감원이 후속조치에 나서게 될 것 같다”면서 “일각에서는 감독규정 개정을 인지하지 못해 발생했다는 롯데손보의 해명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고의성 여부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중소보험사 "전문인력 및 시스템 부재 심각"...각종 위험 노출가능성에도 "외줄타기" 경영여전
한 보험유관 기관의 관계자는 "중소형 보험사들의 경우 리스크관리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형보험사들과 달리 전문분야에 대한 인력 및 시스템 부재 등 경영상 문제가 적지않다"면서 "RBC비율 오류 산출 사안은 매우 기본적인 문제이나, 담당업무를 맡을 전문인력 및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향후 적잖은 문제들이 추가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롯데손보 역시 사모펀드인 JKL에 인수된 후 인력 구조조정 단행 등 재매각에만 집중할 뿐 정작 경영 정상화에는 충실해 보이지 않는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선임계리사를 지원해 줄 인력이 전무한 상태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RBC비율 오류산출은 어찌보면 예고된 사태"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도 "급변하는 대외상황에 대비해 IFRS17 확대 도입 등 재무건전성 강화 방안을 마련, 추진하면 보험사들이 당장 망할 것 같다며 정치권을 비롯해 정부 등을 상대로 각종 로비를 해 연기 또는 무마시킨다"면서 "정책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후에도 일정에 맞춰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않아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되는 꼴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보험사의 경영위기가 야기되면 금융당국의 감독부실 등을 문제 삼을게 뻔하지 않나"면서 "재무건전성이 취약하고, 갈수록 대외여건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임금, 배당, 성과급을 두고 노사간 갈등이 반복되는 등 국내 보험업계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내 보험사 평균 RBC 비율은 283.9%로, 롯데손보는 업계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169.4%를 기록했다. 특히 이는 국내 손해보험사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재무건전성이 가장 불량하다는 의미다.
【 청년일보 = 김양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