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시간과 정성이 담긴 요리는 맛이 없을 수 없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말이지만 '속도가 생명'이라는 요즘 이 맛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포기 없이 정성의 맛을 찾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태원으로 향하는 걸 추천한다. 전 세계 언어를 다 들을 수 있다는 '이태원'과 '정성'의 조화가 의아할 수 있겠지만, 이태원역에서 도보 1분이면 비밀스러운 맛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6월 교촌치킨이 '비밀'과 '정성'을 담은 공간 '교촌필방'을 선보였다. 그리고 교촌필방 깊숙이 더욱 비밀스러운 공간 '묵암(嘿暗)'을 조성했다. 이곳에서 하루에 2번, 한 회에 단 6명에게만 제공하는 '치마카세'는 셰프가 정성을 담아 1시간 30분 동안 코스요리를 선보이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눈앞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적절히 조명을 낮춘 공간에서, 쉐프가 전하는 식재료와 조리법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에 기자가 함께 했다.
◆ 고요히 맛에 집중하는 '묵암'…아늑함을 위한 세심한 배려
커다란 간판 대신 '필방'이라는 이름답게 입구에 거대한 서예 붓이 자리한 '교촌필방'에 들어서기 위해 붓을 잡고 아래로 당겼다. 스르르 열리는 문을 지나 카운터 옆 서예 전시장을 밀자 그제야 교촌필방이 맨얼굴을 드러냈다.
교촌필방은 자작한 국물에 담긴 무가 떠오는 '치킨'에 대한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이태원 어느 클럽 같은 분위기와 음악으로 가득했다. 여기서 잠깐, '치마카세'를 맛보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보다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야 했다.
첫 방문자라면 알아차리기 힘든 비밀공간을 현장 안내직원의 도움으로 입장했다.
'힙' 했던 홀과는 전혀 다른, 예상할 수 없었던 '산수도(山水圖)'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검은 먹색 하나로만 꾸며졌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동굴 같이 거친 벽면과 한쪽 벽에서 수직으로 흐르는 잔잔한 시냇물, 여기에 현대적인 식기 등이 어우러진 공간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단 6명을 위해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이 공간의 이름은 '묵암(嘿暗)'이었다. 고요할 묵(嘿)과 어두울 암(暗). 공간을 한마디로 정의한 이름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오묘한 공간의 분위기와 닮은 쉐프가 우아한 움직임으로 장장 1시간 30분 동안 펼쳐질 공연 같은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자도 그 흐름에 맞춰 셰프 정면에 마련된 관객의 자리에 착석했다.
공연을 기다리며 자리에 놓인 물건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정갈하게 놓인 식기들 사이로 작은 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주머니의 존재를 물으니, 방문자를 위해 준비한 어메니티(amenity)라는 쉐프의 대답이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어메니티는 안락한 투숙을 위해 호텔이 객실에 준비하는 위생용품, 화장품 등을 말한다.
어메니티로는 식전을 위한 손 세정제와 식후를 위한 가글액, 머리카락이 긴 여성 방문자들의 편안한 식사를 위한 머리 끈까지 준비돼 있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모든 시간이 아늑하도록 준비한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 한식으로 새단장한 '치마카세'…다양한 국적·연령에 특별한 경험 제공
잠시 후 임세훈 쉐프의 인사로 이날 공연의 막이 올랐다. 오랜 시간 한식을 요리한 그는 '치마카세'라는 교촌치킨의 색다른 시도에 흥미를 느껴 자신 역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치마카세와 오늘 선보일 8코스, 10가지 요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에 따르면 '치마카세'는 재료 본연의 가치에 집중, 여기에 장인정신의 손길을 더해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모든 요리는 고품질의 닭만을 사용하는 교촌치킨의 철학에 따라 신선한 토종닭과 육계 특수 부위를 사용해 마련됐다.
치마카세에서 선보이는 요리는 한식 중심으로 구성됐다.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2기 한식 치마카세는 지난 6월 교촌필방이 문을 열며 첫선을 보였던 1기 일식 치마카세를 대대적으로 리뉴얼한 것이었다. 변화에는 1기 방문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치마카세가 한식 중심의 코스요리로 변화한 데는, 이곳을 찾는 방문자들의 국적과 연령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숨어 있어 더욱 궁금한 교촌필방은 SNS를 타고 한국을 찾은 해외여행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더욱이 외국인이 많이 찾는 이태원에 자리해, 현지서 'K-치킨' 문화를 체험하고자 교촌필방을 찾는 외국 손님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국경뿐 아니라 세대도 넘고 있다. 소수만 참석하는 별도의 조용한 공간에서 최상의 음식을 맛본다는 특징에 부모님과 동행하는 손님들도 부쩍 늘었다.
이와 관련해 교촌치킨 관계자는 "경험을 찾아 한국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K-치킨의 또 다른 모습과 가장 한국적인 분위기를 제공하고 싶었다"면서 "더불어 부모님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은 자녀들의 마음을 반영해 어른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익숙한 한식을 색다르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 쇼처럼 다채로운 10가지 맛…도전에 진심인 '교촌치킨'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며, 쉐프가 참석자들에게 요리와 함께 즐길 주류 또는 음료 선택을 권했다. 와인, 맥주, 칵테일, 전통주, 탄산음료 등 선택의 폭이 넓었다.
그중 쉐프가 추천한 '교촌필방 페어링 코스'를 선택했다. 이는 치마카세에서 맛볼 8가지 코스요리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주류를 차례로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IPA, 라거, 에일 등 3종류의 맥주와 교촌이 제조하는 '은하수막걸리'가 차례로 제공됐다. 특히, 은하수막걸리는 아직 교촌필방에서만 맛 볼 수 있기에 놓쳐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토종닭의 특수 부위를 활용한 '맞이 3종', 부드러운 닭가슴살과 상큼한 청귤 소스가 어우러진 '전채요리'를 시작으로 치마카세에서 개발된 특별한 음식들이 차례로 이어졌다. 모든 요리가 하나의 작품처럼 플레이팅돼 미각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즐거운 식사가 계속됐다.
1시간 30분 동안 맛본 10가지 음식은 신기하게도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솔잎과 함께 구워낸 '토종닭 콩피&목살 숯불구이'는 담백함을 자랑했고, 볶을 톳을 접목한 '치킨버거'는 부드러운 닭가슴살과 오독한 톳의 식감이 어우러져 재미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작은 이벤트가 어우러진 요리도 있었다. 새우살이 들어간 '속을 채운 닭날개 튀김'은 작은 벼루와 붓이 함께 서빙됐는데, 벼루 안에는 교촌치킨의 특제 소스가 들어있었다.
쉐프는 붓을 이용해 닭날개에 소스를 발라 맛보길 추천했다. 이는 교촌이 치킨을 만들 때 정성껏 붓으로 소스를 도포하는 실제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었다. 필방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벼루와 교촌만의 조리 방법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낸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눈과 입, 손으로 음식을 맛보다 보니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하나의 쇼처럼 기획된 시간을 마치며, 교촌치킨이 이번에도 새로운 도전에 진심을 담았다고 생각했다.
【 청년일보=오시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