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륜학원 전경. [사진= 한국향토문화 전자대전]](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938/art_17578987484014_744071.jpg)
【 청년일보 】 대구 대륜중·고등학교 총동창회가 개교 104주년을 맞아 역사와 정신을 기리고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15일 열린 '제1회 대륜학 심포지엄'은 "104년의 역사, 200년을 향한 도약 – 대륜의 길"이라는 주제 아래 성황리에 진행됐다.
심포지엄의 시작은 대륜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참가자들은 대구 중구 북성로에 위치한 교남학원의 옛터인 우현서루와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을 방문하며 항일 민족 교육의 역사를 되새겼다. 본격적인 논의는 매일신문사 11층 대강당에서 이어졌다.
기조강연을 진행한 엄재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대륜 건학의 철학적 함의'를 주제의 강연을 통해 1921년 9월 15일 항일 비밀결사인 조선 국권 회복단의 홍주일, 3·1운동 당시 대구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영서, 초대 교장 정운기 선생이 뭉쳐 우현서루를 임시교사로 설립한 교남학원의 창립 정신을 조명했다.
석은동 대륜고 교무부장은 '대륜의 역사, 인물, 성과'를 발표에서 교남학원이 1924년 대구 교남학교, 1942년 대륜중학교로 교명을 바꾸며 1950년 대륜고를 병설하기까지의 변천사를 상세히 조명했다.
![대륜고등학교 로고. [사진=대륜고홈페이지]](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938/art_17578988331343_c159e2.jpg)
대륜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민족 교육의 산실이었던 우현서루에서 시작된다. 1904년 이동진 선생이 세웠으나 1911년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고, 이후 1921년 9월 15일 홍주일, 김영서, 정운기 선생 등 항일 정신이 투철한 독립운동가들이 다시 모여 교남학원을 설립하면서 현 대륜의 모태가 됐다. 이 학교는 1924년 대구 교남학교, 1942년 대륜중학교를 거쳐 1950년 대륜고를 병설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이 1933년 교남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저항시인 이육사 역시 이곳에서 수학하는 등 대륜은 수많은 민족 인물을 배출해 냈다. 또한, 대륜 장학재단은 1937년 재정난 속에서 당시 거액인 2만 환(현 30억 원 상당)을 기부 학교를 살린 앵무 염농산 여사의 고향 성주군을 찾아 지역 초·중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 그 숭고한 뜻을 기렸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육 나눔의 실천으로 큰 감동을 자아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륜중·고는 중학교 3만 1천 명, 고등학교 3만 8천 명 등 총 6만 9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민족사학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김성한 총동창회장은 "대륜의 전통과 사학 정신, 그리고 수많은 인물의 업적을 '대륜학'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심포지엄은 대륜의 지나온 역사를 되짚어보고, 앞으로 다가올 200년을 향해 도약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참가자들은 104년 전 우현서루에서 시작된 교육 의지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확인하며 앞으로 200년을 향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모습이었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