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감정이 키운 오해, 무너지는 관계의 균형을 바로잡는 소통기술

등록 2025.03.10 17:51:07 수정 2025.03.10 17:51:07
박이슬 문화평론가

 

【 청년일보 】 길거리에서 마주친 친구가 나를 보고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밝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을 텐데,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 작은 의심은 금세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된 것 같다'는 확신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또 다른 친구에게 전달되면 어떻게 될까? "요즘 A가 너를 피하는 것 같아"라는 말이 B를 거쳐 C에게 전해지고 나면, 결국 A는 이유도 모른 채 '사이가 틀어진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처럼 사소한 오해가 쌓이고 부풀려지면서 크나큰 갈등으로 번지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우리는 불확실한 정보에 감정을 덧씌워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를 만들어내곤 한다. 문제는 이 드라마가 현실이 된다는 점이다.

 

직장 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다. 팀원 C는 회의 중에 팀장 D가 자신의 말을 여러 번 끊는다고 생각했다. "D 팀장은 내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C는 속으로 불편함을 느꼈고, 나중에는 "혹시 나만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이 이야기가 동료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점차 "D는 특정 사람의 말을 자르는 경향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퍼졌다. 결국, D는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상사' 혹은 '존중과 경청을 하지 않는 상사'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정작 D는 C의 의견을 반박하거나 무시한 것이 아니라, 회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조율하고 논점을 정리하려는 의도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는 계속 커졌고, 결국 D는 공식적으로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단순한 회의 진행 방식이 차별로 해석되고, 한 사람의 평판을 흔드는 요소로 작용해버린 것이다.

 

이 같은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이유 중 하나는 '감성적 교감'이 때로는 사실(Fact)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힘들거나 불쾌한 감정을 느낄 때 이를 타인과 공유하고 위로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성적 교감이 본질을 흐릴 때가 많다.

 

예를 들어, C가 D팀장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동료들에게 하소연할 때, 듣는 사람들은 '위로'차원에서 공감을 표시한다. "그랬어? 너무하다", "너한테만 그런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거네", "곧 우리한테도 그러는거 아니야?" 위로해주려는 말들이 오히려 감정을 증폭시키고, '사실'이 아니라 '느낌'이 중심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면 본래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문제도 '나를 향한 부당한 대우'라는 확신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 결과, 단순한 오해가 피해 의식으로 변질되고, 감정적으로 격앙된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며 갈등이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갈등의 상당 부분은 '쑥덕공론'과 '추측'에서 비롯된다. 작은 오해가 전달되어 와전될때마다 더 부풀려지고, 그 과정에서 사실은 왜곡된다. 여기에 감성적 교감이 더해지면, 갈등은 더욱 빠르게 확산된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들은 것이 과연 사실인가?'를 먼저 의심하고, 직접 대화를 통해 진실을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성적 교감이 사실을 가리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더욱 신중하게 판단하고 소통해야 한다. 오해가 불러오는 갈등과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대화와 이해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어던 소통기술보다 무너지는 관계의 균형을 바로잡는 방편이 될 것이다.
 

글 / 박이슬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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