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누진제, 8년째 '멈춤'…평범한 가정도 '과소비' 낙인

등록 2025.08.17 10:54:09 수정 2025.08.17 10:54:09
조성현 기자 j7001q0821@youthdaily.co.kr

4인 가구 평균 사용량 최고 구간…다자녀 가구 '징벌적 요금' 불만 고조

 

【 청년일보 】 가정용 전기 사용량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2018년 개편 이후 8년째 손질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특별히 전기를 많이 쓰지 않는 평범한 가정조차 '전기 과소비 가구'로 분류돼 최고 구간 요율을 적용받는 경우가 일반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정부가 출산 장려를 통해 확대를 유도하는 다자녀 가구가 정작 전기요금 체계에서는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17일 정부와 한국전력에 따르면, 누진제 전기요금은 주택용에만 적용된다. 산업용과 일반용(상업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여름철(7~8월) 기준 ▲1단계 300kWh 이하(1kWh당 120원, 기본요금 910원) ▲2단계 300kWh 초과~450kWh 이하(214.6원, 기본요금 1천600원) ▲3단계 450kWh 초과(307.3원, 기본요금 7천300원) 등 3단계로 나뉜다.

이 제도는 1974년 1차 오일쇼크 직후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뒤 크고 작은 조정을 거쳤으나, 300kWh·450kWh를 경계로 하는 현행 체계는 2018년 이후 그대로다. 문제는 최근 에너지 소비 구조가 크게 달라져 평균 가정의 전력 사용량이 이미 3단계 구간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한국전력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장철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전체 2천512만 가구 중 월 사용량이 450kWh를 초과해 3단계 누진요금을 적용받은 가구는 1천22만 가구로 전체의 40.5%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1단계 가구는 895만, 2단계는 604만 가구였다. 즉 '전기 과소비 가구'로 간주되는 집들이 오히려 가장 흔한 모습이 된 셈이다.

 

실제 2020년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4인 가구의 여름철 월평균 사용량은 427kWh로 이미 450kWh에 근접했다. 업계에서는 5년이 지난 지금 평균 사용량이 500kWh 전후까지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에어컨 보급 확대, 가전제품 증가, 전기차·전기레인지 보급 등 생활 전기화가 본격화된 영향이다.

 

누진제의 또 다른 문제는 가구원 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 달에 300kWh를 쓰는 1인 가구와 600kWh를 쓰는 4인 가구를 비교하면, 1인당 사용량은 1인 가구가 300kWh, 4인 가구가 150kWh로 오히려 적다. 그러나 실제 전기요금은 각각 약 4만6천원, 14만6천원으로 4인 가구가 2배가 아닌 3배 이상 부담한다.

 

이 때문에 정부 정책 방향과 역행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출산·양육을 장려하는 한편, 다자녀 가구에는 사실상 '징벌적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꼴이 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이제 단순히 누진 구간을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 제도 자체의 존속 여부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두지 않는다. 가스·난방비 등 다른 에너지 요금에서도 별도의 누진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철민 의원은 "에너지 절약도 중요하지만 현 전기요금 누진제는 기후 위기와 생활 방식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가구원 수가 많은 다자녀 가구에 불이익을 줘 출산 장려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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