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④ 종로구, '개발'과 '가치' 충돌..."600년 도시의 딜레마"

등록 2025.11.15 08:00:01 수정 2025.11.15 08:00:09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세계문화유산 경관과 도심 공동화, 종로를 짓누르는 '문화재 고도 규제'의 무게
익선동·서촌이 이끈 '로컬 공간의 변신', 젠트리피케이션과 상권 지속가능성 논란

 

<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네 번째 장소로, 600년 도읍 서울의 역사가 고스란히 응축된 종로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서울 종로구는 1394년 한양 천도 이래 600년 이상 서울의 역사적, 정신적 중심축을 담당해온 공간이다.

 

강남구가 '계획된 개발'과 '급진적 성장'의 서사라면, 종로구는 수백 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역사의 보존'과 '가치의 축적'이라는 서사를 품고 있다.

 

경복궁, 종묘, 창덕궁 등 조선 시대의 법궁과 종묘를 품고 있으며, 근대 이후에도 정치, 행정, 문화의 핵심 기능을 유지해왔다.

 

'정치 1번지'라 불리며, 행정구역 코드 또한 '11110'인 종로의 공간적 서사는 곧 대한민국 역사의 궤적과 일치했다.

 

최근에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바로 맞은편 세운 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145m 초고층 건축을 허용하려는 서울시와 경관 보존을 요구하는 국가유산청의 갈등이 첨예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처럼 종로는 현재도 '역사 보존'과 '도시 개발'이라는 두 가치가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현장이다.

 

 

◆ 종로, '종(鍾)이 울리던 길'에서 탄생하다
종로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세워진 보신각(普信閣)과 깊은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도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설치된 이 종각이 위치한 큰 거리를 '종로(鍾路)'라 부르기 시작한 것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즉, 종로의 '종(鍾)'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600년 도읍 서울의 시간과 질서를 알리던 핵심 기능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는 종로가 단지 지리적 중심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간적·행정적 중심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시간의 레이어가 쌓인 도심, '역사 보존'의 딜레마
종로구는 1394년 한양 천도 이후 항상 서울의 '첫 길'이자 행정, 상업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는 경기전, 육의전 등 궁궐, 관청, 시전 상점이 집적되어 신분과 직능이 혼재하는 역동적인 도심이었다.

 

종로서적, YMCA, 화신백화점(현 종로타워)과 같은 근대 상업 및 지성의 랜드마크들이 자리하며 서울의 근대사를 관통했고, 종로통 뒤편의 피맛골은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활력이 응축된 공간이었다.

 

이러한 다층적인 공간들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라지거나 재편되는 운명을 맞았다.

 

화신백화점처럼 사라진 공간도 있고, 탑골공원처럼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채 도심의 휴식처 역할을 이어가는 공간도 있다.

 

종로의 도심은 경복궁, 창덕궁과 같은 조선의 유산부터 청와대로 상징되는 현대 권력의 중심까지, '역사 보존'과 '현대적 개발'이라는 필요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곳이다.

 

이러한 종로의 공간은 단순한 주거지나 상업지를 넘어, 격변하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벌어진 현장이었다.

 

 

특히 탑골공원은 1919년 3.1 운동의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역사적 장소로서, 근대 이후 시민 의식과 저항의 공간적 상징성을 지닌다.

 

또한 시청역, 광화문 광장, 대학로 일대는 1980년대까지 학생 운동과 민주화 시위가 활발했던 민주화 운동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하며 '기억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긴 시간만큼 이러한 역사적 특성은 종로에 도심 공동화라는 숙제를 안겼다.

 

2024년 기준 총인구 약 13만명으로, 최근 2년간 2천명 가까이 인구가 감소하는 등 도심 공동화 추세가 뚜렷하다.

 

'세대당 인구수' 역시 1.9명 이하로 떨어져 1인 가구 중심의 핵가족화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궁궐과 종묘, 그리고 청와대가 위치한 종로의 특성상 문화재 보존 및 경관 보호를 위한 엄격한 고도 제한이 적용되고 있어 개발이 쉽지 않아 노후화된 주거 및 상업 시설의 개선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적인 딜레마가 놓여 있다.

 

 

◆ '익선동'과 '서촌', 한옥의 재해석이 낳은 트렌드

최근 종로의 공간적 변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은 로컬리티와 개성을 활용한 공간 재구성 움직임이다.

 

익선동과 서촌은 이 트렌드의 진원지로, 낡고 소외되었던 한옥 주거 공간이 청년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었다.

 

익선동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집단 주거지 중 하나였으나,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상인들이 전통적인 골목길과 한옥의 구조를 거의 유지한 채 감각적인 카페, 레스토랑, 소품점으로 변신시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는 도심 공동화로 비어가는 주거 공간을 '역사의 외피를 활용하는 소비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빠르게 젠트리피케이션을 초래했다.

 

익선동, 삼청동 등 재조명된 상권은 임대료 급등으로 초기 정체성을 만들어냈던 청년 상인들을 밀어냈다.

 

'보존'을 통해 얻어진 공간의 매력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다시 획일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으며, 이는 종로구가 '역사적 가치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하여 풀어야 할 과제다.

 

이에 현재 종로구는 '상생협약', '장기 안심상가', '지구단위계획' 등 다양한 대응책을 추진하며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소에 나서고 있다.

 

 

◆ 대학로와 종로통, 문화 지구의 기능 재정립

종로구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인 문화 예술의 중심지 '대학로' 역시 기능 재정립의 기로에 서 있다.

 

한때 한국 소극장 연극의 메카였던 대학로는 상업화와 콘텐츠의 변화 속에서 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세운상가 주변 도심 산업 집적지, 창신숭인 봉제·패션산업, 청계천·동대문 도매상가 등 종로의 전통적인 상업·산업 기능은 여전히 건재하다.

 

종로 3가와 5가 일대의 귀금속 상가, 포장마차 골목 등은 종로의 전통적인 상업 기능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대교체의 어려움과 노후화된 시설 등으로 인해 미래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세운상가 일대는 종로의 상업·산업 기능 재정립에 있어 가장 뜨거운 감자다.

 

최근 서울시가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내세우며 종묘 바로 맞은편 세운 4구역에 최고 높이 145m에 달하는 고층 건물 건설을 허용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격화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역사적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이 강력히 반발하며 세계유산 지정 취소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다.

 

이 논쟁은 세운상가 일대의 노후 산업 생태계 보존 문제를 넘어, 600년 역사의 핵심 유산을 '개발 논리'가 어디까지 침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서울 도시 계획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던지고 있다.

 

종로가 서울의 역사적 중심을 넘어, 현대적 기능까지 조화롭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존 문화 및 상업 지구의 기능과 공간을 재정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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