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⑬ 은평구, '무색무취' 베드타운 벗고 서북권 '교통·경제 허브'로

등록 2026.01.18 08:00:03 수정 2026.01.18 08:00:17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GTX-A로 '서울역 10분' 실현... 수색·증산 마천루는 '상전벽해'
불광천의 낭만과 한옥마을의 운치... 만성적인 '통일로 정체'는 난제

 

<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13번째 장소로, '서울의 변방'에서 서북권의 새로운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은평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북한산의 수려한 능선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은평구는 예로부터 서울과 서북방(의주)을 잇는 길목이었다. 조선 시대 중국 사신이 오가던 의주로(현 통일로)가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서울 도심 팽창에 밀려난 서민들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베드타운(Bed Town)'으로 인식되어 왔다.

 

'서울인 듯 서울 아닌 서울 같은 곳'. 은평구를 따라다니던 꼬리표였다. 도심 접근성은 나쁘지 않지만, 강남 등 주요 업무 지구로의 이동이 불편하고, 노후화된 주택가가 많아 부동산 시장에서도 저평가받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2026년 1월, 은평구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 연신내역이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수색·증산 뉴타운의 스카이라인이 완성되면서 '교통 오지'와 '낙후된 동네'라는 설움을 단번에 씻어냈다.

 

 

◆ GTX-A가 가져온 '공간 혁명', 연신내의 비상

 

은평구 변화의 핵심 동력은 단연 '교통'이다.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에 의존하던 은평구민들에게 GTX-A 연신내역의 개통은 단순한 노선 추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시간의 압축'이다. 과거 30~40분 이상 걸리던 서울역까지의 이동 시간이 10분 안팎으로 단축됐다. 서울의 심장부인 도심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강남권으로의 환승 진입 장벽도 크게 낮아졌다.

 

여기에 더해 핵심 구간인 삼성역으로 이어지는 연결 공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 남은 구간까지 모두 연결되면 은평구는 명실상부한 '강남 20분 생활권'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이러한 교통 혁명은 연신내역 인근 상권의 지형도를 바꿨다. 등산객 위주의 재래시장과 먹자골목 중심이었던 역세권은 이제 업무 시설과 주상복합이 어우러진 '서북권 비즈니스 거점'으로 진화 중이다.

 

 

◆ "여기가 은평구 맞아?"...수색·증산의 천지개벽

 

연신내가 교통으로 주목받는다면, 은평구의 남쪽 관문인 수색·증산동은 '천지개벽' 수준의 물리적 변화를 겪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낡은 빌라와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던 이곳은 현재 마포구 상암 DMC(디지털미디어시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모했다.

 

수색역세권 개발과 맞물려 대규모 주거 단지가 입주를 마치면서, 이곳은 은평구의 새로운 '부촌'이자 젊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은평구민들의 젖줄인 '불광천'의 변화도 눈부시다. 하천을 따라 잘 정비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는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문화 공간이 되었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밤이면 카페 불빛이 어우러지는 불광천변은 삭막한 베드타운 이미지를 '살고 싶은 수변 도시'로 바꾸는 일등 공신이다.

 

 

◆ 혁신파크의 변신과 한옥마을...문화·경제 입히다

 

멈춰 섰던 대형 개발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불광역 인근 옛 국립보건원 부지(서울혁신파크)는 은평구의 자족 기능을 강화할 핵심 승부처다.

 

오랫동안 활용 방안을 놓고 표류하던 이곳은 업무·상업·문화가 융합된 대규모 복합 단지로 탈바꿈을 준비 중이다. 서울 서북권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타워와 기업 입주 공간 조성 계획은 은평구에 부족했던 '양질의 일자리' 갈증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진관동 북한산 자락의 '은평 한옥마을'은 이미 성공적인 문화 콘텐츠로 안착했다. 북촌이나 서촌과 달리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현대식 한옥 단지인 이곳은, 북한산의 웅장한 자연과 한옥의 곡선이 어우러진 독보적인 경관을 자랑하며 주말마다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 만성적인 '통일로 정체'와 신구(新舊)의 불균형

 

하지만 화려한 비상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은평구의 대동맥인 '통일로'의 만성적인 교통 체증이다.

 

은평뉴타운을 넘어 고양시 삼송·지축·원흥지구 등 인근 신도시 입주가 완료되면서, 서울로 진입하는 차량 행렬은 출퇴근 시간대 통일로를 거대한 주차장으로 만들고 있다. GTX라는 철도망은 뚫렸지만, 도로 교통의 마비는 여전히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지역 내 양극화도 숙제다. 잘 정비된 수색·증산 뉴타운과 달리, 구산동·역촌동·응암동 일대의 구도심 빌라 밀집 지역은 여전히 좁은 골목과 주차난에 시달리고 있다. 신도시급으로 변모한 지역과 노후 주거지 간의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균형 발전'은 은평구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수색동에 거주 중인 30대 직장인 A씨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상암동이라서 공원도 많고, 교통도 편리하다"라며 "아직은 강남과는 거리가 있지만 GTX가 연결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만 아직도 빌라촌이나 지하철역과 거리가 먼 곳들이 너무 많다. 명지대 인근은 학생들은 괜찮겠지만 직장인이 거주하기엔 너무 멀다"라고 말했다.

 

은평구는 지금 '베드타운'이라는 오래된 허물을 벗고 있다. 북한산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 위에 GTX라는 초고속 엔진을 달고, 마천루가 솟은 수색·증산이라는 새로운 날개까지 폈다.

 

관건은 연결이다. 철도의 속도 혁명을 도로망의 개선으로 잇고, 뉴타운의 쾌적함이 구도심의 골목까지 스며들게 하는 세밀한 도시 설계가 필요하다. 서울의 변방에서 서북권의 경제·교통 허브로 도약하는 은평구의 실험은 이제 막 본궤도에 올랐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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