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혼란' 빠진 홈플러스…사모펀드, '약'일까 '독'일까

등록 2025.03.31 08:00:02 수정 2025.03.31 08:00:10
김원빈 기자 uoswbw@youthdaily.co.kr

 

【 청년일보 】 홈플러스가 지난 4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 개시를 신청했다. 대표적인 '생활 밀접 업태' 중 하나인 대형마트 업계 2위 업체가 법인회생 개시를 신청했다는 소식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소비자·소상공인·납품업체 등 홈플러스와 다양한 이해관계로 엮여있는 주체들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의 난제 속에 하루하루를 무거운 마음으로 보내고 있다고 호소한다.

 

홈플러스에 입점해 있는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아직까지 가시화된 문제는 없지만, 예상보다 사태 해결에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미리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주변에 더 작은 업체들은 벌써부터 대금 지급이 연기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에 식음료 상품을 납품하는 한 대형 유통업체는 "얼마전 납품을 지속하기로 결정하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언제든 상품 납품에 대한 대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태를 면밀히 지켜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은 홈플러스가 기습적으로 회생 신청을 했다. 그야말로 '생활 밀접 업태' 중 하나인 대형마트 업계 2위 업체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7조2천억원을 투자해 홈플러스의 지분 100%를 사들였다. 홈플러스는 2022년 2월로 끝나는 회계연도부터 작년 2월까지 3년 연속 1천억원에서 2천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또한, 지난해 11월까지 3분기 가결산 기준 적자도 1천571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말 총 차입금은 5조4천620억원, 부채비율은 1천408%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가 업계에서의 경쟁력 제고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MBK파트너스가 애초부터 홈플러스를 제대로 경영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채널 다변화'라는 업계의 일반적인 흐름과는 정반대로 '고정비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대표적으로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의 편의점사업인 '365PLUS'를 2022년 1월부로 종료했다. 현재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도 여전히 추진 중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본업'인 대형 마트사업에 전력을 쏟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MBK파트너스는 현재까지 대규모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매출이 높은 우량 점포를 차례로 매각해 왔다. 이후 매각 후 재임대(세일즈 앤 리스 백) 방식으로 매장을 운영하면서 기업 가치는 더욱 하락하게 됐다.

 

이 방식을 택할 경우 당장 사용권 자산은 증가하지만, 단기간 임차료가 증가해 현금 유출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중장기적인 재무 건전성은 악화되고, 기업의 성장 가능성은 시장에서 더욱 저평가 받게 된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현재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음에도, 여전히 우량 점포에 대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이야기가 공유되는 상황 그 자체가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 관계를 상실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이달 17일 사재 출연을 약속하며 소상공인 대금 지급, 고용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껏 구체적인 출연 규모와 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도 불신을 키우고 있다.

 

실제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홈플러스·MBK 파트너스 및 삼부토건'에 대한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한 김광일 홈플러스 대표이사 겸 MBK 부회장은 "소상공인에 대한 대금 지급을 앞당기기 위해 사재 출연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규모나 시기에 대한 의원들에 대한 질의를 회피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회장의 사재 출연 규모가 적어도 1~2조원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MBK파트너스는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결국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MBK파트너스의 일련의 행보는 '사모펀드' 그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에서는 이번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 조사 및 규제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사모펀드 프랜차이즈, 골목상권 진출 제한'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사모펀드의 무차별적인 투기성 자본 투자에 대한 비판은 늘 존재해왔다.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니티)의 락앤락 인수가 그 대표적 사례다. 어피니티는 2017년 락앤락 지분 63.56%를 6천293억원에 인수했다. 2022년에는 락앤락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자진 상장폐지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락앤락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게 됐고, 기업 경쟁력은 물론 노사 간의 갈등 구도마저 심화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다만, 사모펀드의 순기능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에 근원적인 책임을 지니고 있는 MBK파트너스도 과거 오렌지라이프(現 신한라이프), 두산공작기계, 대성산업가스 등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며 기업 가치를 회복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인정하되, 책임 경영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투자업계에 정통한 한 애널리스트는 "사모펀드를 순전한 악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며 "사모펀드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기업들이 제대로 된 가치를 회복하고 다시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복귀한 경우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모펀드의 펀드 조성 과정과 투자금 운용 과정에서의 투명성 확보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를 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한 학계 인사도 "이번 홈플러스 사태의 책임이 마냥 MBK파트너스에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이 사태 자체를 야기하게 된 제도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10여 년간 가장 가까이서 소비자와 함께하며 생활 물가를 책임져왔다. 법인회생 절차를 신청한 이후 초래된 혼란의 크기가 거대한 이유도 바로 홈플러스의 생활 밀접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홈플러스를 살리느냐, 주저 앉히느냐에 대한 해답은 결국 MBK파트너스가 쥐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이해관계자들에게 약속한 실천사항을 이행하는 것은 물론,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고 홈플러스를 다시 한 번 더 '국민기업'으로 돌려놓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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