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일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글로벌 경기 침체 및 물가 상승이 맞물림에 따라 2023년 계묘년(癸卯年) 한국 경제 지표는 전반적으로 짙은 암운이 드리웠다. 이뿐만 아니라 소위 3고 현상(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대내외적 여건 악화와 예측 불허한 상황으로 재계 역시 어려움이 컸던 한 해였다.
이처럼 전례 없는 복합 위기 장기화, 경제 상황을 한 치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재계 안팎에선 내년에도 '고난의 행군'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스러운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이 같은 잿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지난 힘들었던 과거를 냉큼 털어버리고 경제 재도약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내년 초부터 숨 가쁘게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끝내 좌절···'일심동체' 된 재계 총수들 '부각'
국가 최대 핵심사업인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성공을 위해 국내 재계 총수들은 정부와 함께 수 개월간 지구 수 백 바퀴를 돌았다. 자그마치 43조 원의 생산유발효과, 18조 원의 부가가치 등 총 61조 원의 경제 효과가 전망되는 만큼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해 세계 각 국들을 돌아다니며 총력전을 펼쳤다.
지난해 6월 민간유치위원회(위원회) 출범 이후 대기업 12개 그룹은 18개월 기간 동안 총 175개국, 3천여명의 정상과 장관 등을 만났다. 주로 교섭 활동은 국내 5대 그룹(삼성·SK·현대차·LG·롯데)이 주도했다.
이들은 전체 교섭 활동의 89.6%를 차지했고 전체 교섭 활동 회의 두 번 중 한번(52%)은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가 참석했다. 위원회가 유치 활동을 위해 이동한 총 거리는 1천989만1천579km로, 이는 지구 495바퀴에 달한다.
이처럼 엑스포 지지를 적극 호소했지만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막강한 '오일 머니'를 내세웠던 사우디아리비아에 끝내 고배를 마시게 됐다.
아쉬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재계 안팎에선 실패가 아닌 오히려 대한민국의 위상 제고와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며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올해 국내 주요 대기업 임원인사···'세대교체·성과주의' 요약
국내 주요 대기업 연말 정기 임원인사가 모두 마무리된 가운데 재계는 올해 인사 핵심 키워드로 각각 '성과주의'와 '세대교체'로 요약한다.
먼저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에 단행한 임원 인사에서 '젊은 피'를 과감히 발탁해 미래 성장 기반 구축, 세대교체 가속화에 나섰다. 이 중 갤럭시S 시리즈 선행 개발을 리딩한 손왕익 DX부문 MX사업부 스마트폰개발1그룹 상무(39)는 하드웨어 개발 전문가로서 이번 인사에서 유일한 30대 상무다.
4대 그룹(삼성·SK·현대차·LG) 중 가장 먼저 계열사별 임원 인사를 단행한 LG그룹은 '세대교체'에 방점을 뒀다. 특히 44년 'LG맨'이었던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66)이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용퇴를 결정하며 눈길을 끌었다. 새 CEO엔 12살 더 젊은 1969년생 김동명 사장(54)이 선임됐다.
SK그룹도 주요 계열사들의 경영진을 대폭 교체했고 50대 세대교체에 방점을 뒀다. SK그룹은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59)을 임기 2년의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선임했다. 최 부회장은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아들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일각에선 '사촌 경영' 본격화, SK 후계 구도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여러가지 해석들이 나온다.
이밖에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97명, 기아 38명, 현대모비스 20명 등 총 252명의 역대 최대 규모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전체 승진 임원 가운데 신규선임 임원은 총 197명이며, 이중 38%를 40대에서 발탁함으로써 미래 준비를 위한 세대 교체에 중점을 뒀다.
◆'폴더블폰 종주국' 위상 제고···삼성전자, 국내 첫 갤럭시 언팩 개최
삼성전자는 지난 7월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갤럭시 언팩 2023'을 열고 '갤럭시Z 폴드·플립5' 폴더블폰 신제품을 공개했다. 갤럭시 Z 시리즈는 콤팩트한 디자인, 다양한 맞춤형 기능, 강력한 성능을 통해 사용자가 기기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갤럭시 언팩은 지난 2010년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처음 시작된 삼성전자 모바일 신제품 공개 행사다. 갤럭시 S 첫 모델 공개 이후 뉴욕,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글로벌 주요 도시에서 진행해왔는데 올 하반기 갤럭시 언팩은 사상 최초로 국내에서 선보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국내에서 신제품을 공개해 '폴더블 종주국'으로서 존재감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행사엔 국내 취재진 400여명, 외신 700여명, 해외 인플루언서와 삼성의 글로벌 파트너 등을 포함한 900여명 등 2천명 이상이 참석했다. 그 중에서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와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 등 국내외 대중들에게 친숙한 유명 인사도 비춰 이목을 사로잡았다.
◆"싱크탱크형 경제단체 전환"···전경련, 55년 만에 '한경협' 복귀
지난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1968년부터 55년간 사용해 온 명칭을 버리고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새롭게 출발했다. 한경협은 1961년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설립한 경제단체의 이름으로 55년 만에 복귀한 것이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정경유착의 핵심축'으로 지목됐던 전경련은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선 이후 각종 경제단체 모임이나 국제행사에서 철저하게 '패싱' 당하는 쓰디쓴 굴욕(?)을 겪어야만 했다.
이에 전경련은 지난 5월 중순 기자간담회에서 최초 설립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취지를 담아 명칭을 변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명칭 변경을 비롯해 구체적으로 권력의 부당한 압력 차단, 회장단 확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의 전환 등 혁신안을 발표했다.
한경협 수장으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선임됐다. 류 회장은 취임 포부에서 어두웠던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G7 대열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사법리스크에 소송까지 휘말렸다"···재계 총수들 '속앓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그룹 총수들이 올해 사법리스크와 각종 소송에 휘말린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이 과정에서의 업무상 배임, 분식 회계에 관한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를 받고 있다. 3년간 진행된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게 지난달 징역 5년에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에 대한 1심 재판 선고는 내년 1월 26일이며 재계에선 만일 유죄를 선고 받는다면 향후 경영 활동에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으로 복잡한 심경에 놓여있다. 노 관장은 위자료로 3억원, 재산분할금으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50%를 요구했다.
지난해 12월, 1심은 위자료 1억원과 현금 665억원을 인정했지만 SK 주식은 최 회장이 상속이나 증여로 취득한 특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재산분할 대상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후 노 관장 측과 최 회장 측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가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에 현재까지 시름하고 있다.
앞서 김 여사와 두 딸은 올해 2월 28일 서부지법에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하자"며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낸 바 있다. 이들은 구 전 회장이 남긴 유언장에 따라 재산을 나눠 가진 줄 알았는데 뒤늦게서야 당시 유언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통상적인 법정 상속 비율(배우자 1.5대 자녀 1인당 1)대로 다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018년 5월 작고한 구 전 회장이 남긴 재산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모두 2조원 규모다. 구 회장은 지분 11.28% 중 지분 8.76%를 물려받았고, 세 모녀는 ㈜LG 주식 일부(구 대표 2.01%, 연수씨 0.51%)와 구 전 회장의 개인 재산인 금융투자상품·부동산·미술품 등을 포함해 5천억원 규모의 유산을 받았다.
◆LG트윈스,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LG 계열사, 할인 행사 진행
프로야구 구단인 LG트윈스가 29년 만에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면서 LG그룹은 지난달 고객들 대상으로 대대적인 할인 행사에 나섰다.
LG전자는 우승을 기념해 LG전자 온라인 브랜드샵에서 가전제품을 29% 할인하는 행사 'LG 윈윈 페스티벌'을 열었다. 행사 개시 2시간여 만에 완판으로 마감됐다.
LG유플러스도 OTT 1년 무료 이용권을 비롯해 한정판 굿즈, VOD 할인 등을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밖에 LG생활건강은 뷰티, 생활용품 온라인 직영몰을 중심으로 각 브랜드의 대표 제품들을 소비자가에서 71% 할인된 '29%' 가격에 판매하는 등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한국시리즈 MVP를 위해 남겼던 '전설의 롤렉스 시계', 우승 축하주로 준비해둔 아와모리 소주가 29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반도체 한파 '직격탄' 맞은 삼성·SK···HBM '승부수' 띄운다
오늘날 국가 안보 자산으로 자리매김한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라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면서 업황 악화에 시달렸고 'K-반도체'는 줄곧 적자에 허덕였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올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누적 12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업황 둔화로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총 4개 분기 동안 누적된 적자가 9조9천747억원에 이른다.
이와 같이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쌍두마차 격인 양사는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고난의 행군'을 걷고 있다. 하지만 최근 D램과 낸드 가격이 동반 상승곡선을 타며 업계에선 시장 회복 시점이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청신호'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시장 열풍이 불면서 차세대 미래 먹거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로 내년 실적에 훈풍이 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고성능 D램이다.
무엇보다 GPU의 빠른 연산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HBM과 같은 고성능·초고속 메모리 반도체 탑재가 필수적이다. 양사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이미 절대적 지위를 확보한 만큼 저마다의 공략법을 내놨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을 통해 HBM 생산능력을 내년까지 올해보다 2.5배 이상 수준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8월, SK하이닉스는 5세대 메모리인 HBM3E 개발에 성공한 뒤 고객사 엔비디아에 샘플을 공급하는 등 AI용 메모리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5월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우주 강국 도약 발판 마련
지난 5월 25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 3차 발사 성공은 한국 우주 개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국·러시아·유럽연합·인도·일본·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7번째로 독자적인 우주 발사체를 개발한 국가가 됐다.
특히 발사체 이륙과 비행, 위성 사출, 주탑재 위성 작동까지 사실상 완벽한 진행으로 마무리됐다는 평가다. 이는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한국이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발판이 된 것이다.
지난 2010년 3월 시작된 누리호 개발 프로젝트는 국내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 인프라 등을 적극 활용하는 민·관 협력 방식으로 진행됐다. 설계부터 제작, 시험, 발사까지 전 과정이 순수 국내 기술로 진행된 누리호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외에 HD현대중공업, 현대로템 등 국내 민간 기업 300여곳이 참여해 빛을 발했다.
무엇보다 업계 안팎에선 누리호 발사가 민간이 우주산업을 이끄는 '뉴 스페이스' 시대로 가는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의를 두고 있다.
오는 2027년까지 진행하는 누리호 4차부터 6차 발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주도한다. 2025년 예정인 4차 발사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참여 범위가 조금식 확대될 예정이며 6차 발사는 발사책임자(MD), 발사운용책임자(LD) 및 발사관제센터(LCC) 일부 콘솔을 제외한 모든 과정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尹 대통령,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한숨 돌린 재계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지난달 9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경영계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구체적으로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경영계는 노동쟁의 개념을 확대하고 손해배상 책임 제한하고 있어 산업현장에 이른바 '파업 만능주의'를 만연케 할 것이란 적잖은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 자명할뿐더러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경제성장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노란봉투법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후 다시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으나 부결돼 최종 폐기됐고 재계는 한숨을 돌린 상태다. 그러나 민주당이 해당 법안을 재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올해 M&A 시장 최대어 HMM 인수전···하림그룹 승리 거둬
올해 인수합병(M&A) 시장 최대어로 꼽혔던 HMM 인수전은 동원그룹과 하림그룹 간 2파전 끝에 하림그룹이 승리를 가져갔다.
앞서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HMM 매각을 위해 지난달 실시한 본입찰에서 동원과 하림그룹이 최종 입찰에 참여한 바 있다.
하림그룹은 6조4천억원가량의 인수가를 써내 동원그룹 인수가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면서 정량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자금조달 계획, 해운업 경험 등 정성평가에서도 더 나은 평가를 받았다. 하림은 JKL파트너스와 함께 유가증권 매각과 영구채 발행, 선박 매각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은과 해진공은 향후 세부 계약 조건에 대한 협상을 거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내년 상반기 중 거래를 종결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선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하림의 자산규모가 17조원대인 반면 HMM은 26조원 수준이며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만일 HMM 인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하림그룹은 자산이 42조8천억원으로 불어난다. 재계 및 증권가 안팎에선 재계 순위가 종전 27위에서 10위권 초반으로 뛰어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청년일보=이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