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지난해 4.15 총선은 보수 야당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지형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여대야소(與大野小)라는 의미를 넘어 2022년 대선(大選)까지 더불어민주당의 독주를 예상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일부에서는 공공연히 '20년 집권론'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미래통합당에는 '포스트 황교안'으로 내세울 만한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당내에 내홍이 일고 있는 마당에 대선주자 얘기는 꺼낼 수도 없었다. 국민의당 등 다른 군소 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 같은 야권의 권력 공백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인물이 진입할 틈이 생겼음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친정'인 검찰에서는 여전히 그의 정치행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윤 전 총장의 정치 행보가 우려된다는 현직 지청장의 실명 비판글에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등 여진(餘震)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철완(49·사법연수원 27기)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은 최근 검찰 내부망에 윤 전 총장을 겨냥해 "전직 총장의 정치 활동은 법질서 수호 기관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모순돼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검찰의 수장이었던 분으로서 남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늘리는 방향이 무엇인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 글에는 현직 검사와 수사관 여러 명의 댓글이 달렸다. 일부 검사들은 박 지청장의 글을 반박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장진영(42·연수원 36기) 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는 "(윤 전 총장은) 현직에서도 그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몸소 실천하다 내쫓기듯 나갔다"면서 "누구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필요성과 실현 방안을 잘 아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현직 총장이 아닌 분을 검찰 내에서까지 소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신헌섭(36·연수원 40기)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자연인 윤석열이 정치를 하든 무엇을 하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아닌 검사 게시판에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정치를 한다면 유권자인 국민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강석인 사무관은 "검찰의 정치 중립, 수사권 독립에서 더 망가질 것이 있느냐. 외부적인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그렇다면 그 적임자는 누구일까. 국민들이 더 잘 아시고 그것을 대권 지지도로 표시한 것 같다"고 했다.
이 같은 찬반 논란 외에 윤 전 총장에 대한 언급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혜숙(40·연수원 40기) 서울동부지검 검사는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은 가치판단을 하기에 너무나 이른 시기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최소연(41·연수원 37기)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이 게시글 내용이 본래 순수한 의도와는 다르게 외부의 진영 논리에 따라 악용되고, 게시글에 달리는 검사들의 댓글은 마치 전직 총장의 정치 참여에 대한 찬반 투표처럼 비치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해 10월 22일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퇴임하고 나서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올들어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 직을 사퇴하면서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앞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워딩의 강도가 훨씬 세졌다.
윤 전 총장은 사퇴 이후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연이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내년 대선에서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제3지대 중 어느 선택을 하든 지지율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전 총장이 정치행보를 하게 되면 검찰의 정치 중립성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리더십 부재(不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야권 입장에서는 윤 전 총장의 상품가치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의 권력 의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쌓여 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느낌이라는 관측이 많다. 윤 전 총장의 정치행보를 놓고 검찰 내부에서 논쟁을 벌이는 일도 더욱 잦아질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