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암호화폐 폭탄 돌리기···'선거 뇌관' 우려로 리스크 방치

등록 2021.05.17 19:31:38 수정 2021.05.17 19:32:02
정구영 기자 e900689@youthdaily.co.kr

2030세대, 코인 투자를 '계층 이동 위한 마지막 사다리'로 여겨
거래 양성화하면 투기 열풍, 억누르면 정치적 후폭풍 감수해야

 

 

【 청년일보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암호화폐 시장을 또다시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비트코인 전량을 팔았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면서 비트코인은 물론 주요 암호화폐 가격을 끌어내린 것이다. 앞서 머스크는 지난 12일에도 테슬라 차량의 비트코인 구매 결제 허용을 중단한다고 기습 발표해 시장을 흔들어 놓았다. 

 

머스크의 시장 교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머스크가 운영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지난 2월 초 15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매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비트코인 '일부'를 팔아 차익을 실현했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실적 발표 당시 "매입했던 15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 중 10%를 2억2700만 달러에 매각해 1억1000만 달러의 차익을 얻었다"고 공개했다. 일부를 팔기는 했지만 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그동안 암호화폐 옹호론을 펴는 등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테슬라의 비트코인 매각에 대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띄우기에 나서더니 정작 가격이 오르자 차익을 실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때도 강력 부인했다. 테슬라가 비트코인의 유동성을 입증하기 위해 10%를 매각했지만 자신은 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지난 13일에는 비트코인 채굴에 너무 많은 전력이 소모된다며 지지를 철회했다. 이에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전량 매도한 뒤 이같은 입장을 발표했을 수 있다"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뉴욕타임스의 '촉'이 맞았던 것일까. 16일(현지시간) '암호화폐 고래'(CryptoWhale)라는 트위터 이용자가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다음 분기 머스크가 비트코인 전량을 팔아치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책할 것이지만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머스크는 "정말(Indeed)이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는 머스크가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 전량을 매도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글로벌 코인 시황 중계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서 비트코인은 하루 전보다 8.23% 급락했다. 비트코인 뿐만이 아니다. 이더리움은 11.47%, 도지코인도 5% 이상 급락했다.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패닉에 빠진 것이다. 도지코인은 머스크가 스스로 '도지 파더'라고 지칭할 만큼 노골적으로 힘을 싣고 있는 암호화폐다.

 

현재 9400여개에 달하는 암호화폐는 크게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으로 나뉜다. 알트코인은 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폐들을 일컫는 말로 대체(alternative)와 코인(coin)을 합성한 것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인식 때문에 대체 투자로 각광받고 있다. 비트코인은 지난달 7326만원(6만4863달러)을 기록했으며, 시가총액도 1364조원(1조2077억 달러)에 달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높은 이유는 발행량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 채굴된 비트코인은 지난 3월 21일 기준 1652만개로 4년마다 채굴량이 절반으로 줄면서 2045년 2100만개를 끝으로 발행이 끝난다. 현재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 점유율은 43%까지 떨어졌지만 올해 초만 하더라도 70%에 달했다. 

 

최근 검증된 비트코인보다 검증되지 않은 알트코인이 더 오르는 것은 그 만큼 시장에 거품이 껴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이다. 해외의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주로 거래하지만 국내에서는 알트코인의 투자 비율이 앞도적으로 높다. 94% 이상이 알트코인에 몰려 있다.

 

특히 알트코인 중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김치코인'이라고 불리는 국내산 암호화폐다. 4대 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571개 암호화폐 가운데 124개(중복 포함)가 김치코인이다. 한국 사람인 것을 숨기고 외국에서 암호화폐 공개(ICO) 등으로 발행하는 경우도 있어 김치코인의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래량 역시 이더리움 등 시가총액 10위권 내에 있는 메이저 알트코인보다 많다.

 

최근에는 급조된 티가 나는 '잡코인'도 대놓고 활개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정교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시세 조작이나 허위 공시로 '한탕' 하려는 작전세력이 잡코인을 만든다는 의혹도 있다. 잡코인에 손을 댔다 상장 폐지되면 투자금은 한 푼도 건지기 어렵다. 실제 4대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상장 폐지된 암호화폐만 총 76개에 달한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암호화폐 투자가 과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변동성이 크고 도박과 비슷한 폭탄 돌리기 식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김치코인, 잡코인에 쏠려 있어 투자손실 위험이 높다.

 

국내 암호화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암호화폐 시장 전반에서 개인투자자 위주로 폭탄 돌리기 식의 장이 이어지고 있다”며 “버블 붕괴 징후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 역시 이를 알고 있다. 투자자 자신이 과대평가된 자산을 매입한 바보라는 것을 알고서도 더 높은 가격에 매입할 ‘더 큰 바보’가 있다면 그 자산을 매수하는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의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17세기 튤립 버블도 같은 사례다. 시장에 뒤늦게 참여한 사람들은 가격 폭락을 겪을 공산이 크다. 한탕을 기대하는 심리에 바탕을 둔 '거품'은 타이밍이 문제일 뿐 꺼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폭탄 돌리기 식의 도박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 같은 암호화폐를 정부가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제도권 편입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암호화폐가 화폐(貨幣) 또는 금융자산으로 인정받을 경우 정부의 투자자 보호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가상자산(virtual Asset)일 뿐 화폐나 금융자산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솔직한 심정은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나왔던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언급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은성수 위원장은 "(암호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이고 가상자산이기에 (제도권 금융 안으로)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성수 위원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이 많이 투자하고 관심을 갖는다고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은 안한다"면서 "잘못된 길로 간다면 잘못된 길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자진 사퇴' 국민청원이라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사실 암호화폐에 대한 정체성 규정은 정부에게 고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를 어떻게 감독하고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없다 보니 우리가 먼저 방침을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암호화폐를 감독·규제하겠다고 방침을 정하면 곧 암호화폐 시장을 제도권으로 정식 인정하겠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암호화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놓고 갈팡질팡 하기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 업계는 암호화폐를 가치저장 기능이 있는 디지털 금(金)이라고 주장하지만 각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은 내재가치가 없는 투기적 자산으로 판단하고 있다. 쾌도난마처럼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암호화폐 투자가 거의 광풍 수준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는 더욱 그렇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5일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고, 지급수단으로 쓰이는 데 제약이 크다는 것은 팩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 투자가 과도해지면 투자자에 대한 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고, 금융안정 측면에서도 리스크가 크다"고 우려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언급이다.

    

하지만 정부 관료의 이 같은 언급은 언제부터인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암호화폐 거래를 양성화하면 투기 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강하게 억누르면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의 60%는 2030세대다. 이들은 암호화폐 투자를 ‘계층 이동의 마지막 사다리’로 여기며 절실하게 뛰어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정부 관료의 운신 폭은 제한되게 마련이다.

 

정치권에서는 암호화폐가 내년 대선에서 2030세대의 표심을 좌우할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만 400만명이 암호화폐 거래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폭탄 돌리기 식의 암호화폐 거래 리스크를 덮어둔 채 시장의 눈치를 볼 개연성이 높다. 비정상적인 투기 현상을 바로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칫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거 뇌관'으로 리스크가 하염없이 방치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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