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김부선' 논란···지역 이기주의와 얄팍한 포퓰리즘의 이중주

등록 2021.05.18 18:00:00 수정 2021.05.18 18:00:00
정구영 기자 e900689@youthdaily.co.kr

김포~부천 GTX-D 노선, 주민 반발과 정치권의 노골적 압력으로 변경 가능성
선거 앞두고 더욱 기승 부리는 님비·바나나·핌피현상, 국책 사업 근간 흔들려

 

【 청년일보 】 지역 이기주의(地域 利己主義)는 자기 지역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지역 이기주의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이 용어가 언론이나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0년대 후반부터 사용 빈도가 크게 증가했다.

 

유사한 용어로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이 있지만 이들 용어는 영남과 호남 사이의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갈등을 주로 지칭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반면 지역 이기주의는 경제와 복지 등 구체적 이익을 둘러싼 갈등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님비(NIMBY), 바나나(BANANA), 핌피(PIMFY) 등의 현상이 대표적이다.

 

님비현상은 '우리 집 뒷마당은 안 된다'(Not In My Back Yard)는 뜻이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나 행려병자를 위한 국립의료원 등이 자신의 지역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다른 지역에 들어서는 것은 관계 없다. 일방적이고, 타협의 여지조차 남겨놓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바나나현상은 '어디에든 아무것도 짓지 마라'(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는 의미다.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원자력발전소, 핵폐기물 처리시설 등 공공 목적의 필수적인 시설물이지만 자신의 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에도 설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핌피현상은 거꾸로다. '우리 집 앞마당에 지어달라'(Please In My Front Yard)는 것이다. 공원, 종합병원, 박물관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 복지 확대를 가져오는 개발사업이 주요 대상이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D 노선을 둘러싼 김포 주민들의 반발이 이 범주에 속한다.

 

GTX-D 노선과 관련한 논란은 지난달 22일 한국교통연구원이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수립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대두됐다. 노선이 신도시인 김포 한강~인천 검단~부천~서울 남부~경기 하남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와 달리 김포 장기~부천 종합운동장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 남부, 즉 강남 직결을 원했던 김포·검단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철도정책·안전연구팀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제안한 노선은 기존 노선과 아주 유사한 지역을 통과해 영향을 끼친다"며 "많은 불만이 있겠지만 재정 여건 등을 고려했을때 4차 광역급행철도는 이 정도가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부천 종합운동장은 인천 송도에서 출발해 남양주 마석까지 연결되는 GTX-B 노선이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국토교통부도 이 같은 이유로 노선 수정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용역 결과와 같은 맥락에서 10조원 이상의 사업비 필요, 서울 지하철 2·7·9호선과 노선 중복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은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김포·검단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이어 표(票)를 의식한 정치권의 노골적인 압력까지 더해지자 국토교통부가 노선 변경으로 돌아선 것이다.

 

김포·검단은 최근 영끌을 통해 집을 마련한 20~30대 인구가 대거 유입된 지역이다. 4·7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린 연령층이 밀집해 산다는 것이다. 당장 이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는데, 대부분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 간담회에서 GTX-D 노선을 '김부선'으로 칭하며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부선이란 김포 장기와 부천 종합운동장을 연결하는 GTX-D 노선을 지역 주민들이 폄하하면서 만든 조어(造語)다. 

 

 

당초 인천시는 인천국제공항과 김포를 양(兩) 기점으로 부천에서 만나 하남까지 이어지는 110㎞의 Y자형 노선을 국토교통부에 제안했다. 경기도는 김포~검단~계양~부천~사당~삼성~하남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지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길이는 68㎞.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여기에 경기 광주를 추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희망 노선'일 뿐이다.

 

이재명 지사는 GTX-D 노선이 김포~부천 종합운동장으로 정해지자 "(이것은) GTX 노선이 아니다. GTX-B에 가지 하나 만드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GTX-D라고 하면 안 된다"며 "장기적으로 봐서는 원래 우리가 제안했던 대로 추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재명 지사는 김포·부천·하남지역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시민단체 대표 등과 함께 GTX-D 원안 반영을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는 등 '판'을 키우고 있다. 이는 차기 대선에서 경기 동부권·서남부권 유권자들의 표심을 확보할 키(Key)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뒤질세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골드라인 열차를 타고 '지옥철 경험'에 나섰다. 지난 2019년 개통된 골드라인은 김포 양촌과 서울 김포공항을 잇는 23㎞의 경전철이다. 서울로 출근하려는 주민들이 계속 탑승해 객차가 들어차자 이낙연 전 대표는 "마치 양계장 같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김포 골드라인을 탔는데, 개선 여지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노형욱 장관은 이낙연 전 대표가 국무총리를 지낼 당시 국무조정실 2차장과 국무조정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관가에서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대표적인 ‘이낙연 사람’으로 통한다. 이낙연 전 대표는 노형욱 장관과 통화하며 “그런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여권 잠룡들의 압력 덕분인지 국토교통부는 김부선을 서울 여의도와 용산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강남 직결에 대한 논의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통 전문가들은 여론과 정치권의 압력에 휘둘려 정부가 국가철도망 사업을 이렇게 손쉽게 뒤집는 것은 처음 본다며 정책의 신뢰 훼손을 지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집값은 ‘역세권’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많은 차이가 난다. 일부에서는 이번 김부선 논란의 본질 역시 집값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GTX가 깔리면 집값이 수 억원 뛴다"는 말이 나도는 상황에서 강남 직결은 더욱 큰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포는 GTX-D 노선의 강남 직결 기대에 힘입어 금포(金浦)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가격이 뛰었지만 김부선으로 축소된 이후 실망 매물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철도망의 신설과 확충은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GTX-D 노선만 해도 지난달 발표된 계획을 변경해 강남 직결을 추진하려면 해당 노선에 대한 경제성과 타당성 검토를 위한 연구용역을 추가로 실시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6월로 예정됐던 국가철도망 확정 고시는 연기될 수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대선에 몸이 단 유력 정치인들이 예비타당성 조사 같은 필수적 절차를 건너 뛰려고 하는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경제적 효과를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의 낭비를 막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와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 규정이 무력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아예 못 박아 가덕도신공항을 일사천리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김부선 논란은 선거 국면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질 지역 이기주의에 이 나라가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를 가늠케 하는 시금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 기술성 등을 반영해 결정된 국책사업을 선거 때문에 바꾸는 것은 국책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지역 이기주의에 정치권이 편승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뒤트는 것은 선거철마다 반복되고 있다. GTX-D 노선 변경 역시 표를 얻기 위한 카드로 지속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 이기주의와 얄팍한 포퓰리즘의 이중주(二重奏)가 펼쳐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패착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등 여권 잠룡들은 이번 김부선 논란을 거치며 '김포를 얻는 대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특정 지역이 아닌 전반의 민심이기 때문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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