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조세 이론상 상속세와 증여세는 과거의 부(富)에 대한 청산, 그리고 과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빈부격차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계가족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보면 상속세는 증여세, 특히 불로소득과는 거리가 있다. 상속세는 재산이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에 의해 불가피하게 명의만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가 없는 나라가 13개나 된다. 이 중 11개 나라는 있었던 것을 폐지했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매우 높다. 최고 50%에 달하며, 특히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20% 할증(+10%포인트)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최고세율은 60%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15%에 비해 네 배 높은 것이다. 두 번 상속을 거치면 재산의 84%를 국가가 가져가게 된다. 약탈적이고, 징벌적이다. '국가 폭력'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우리나라 대기업은 상속세 폭탄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로 12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상속세를 떠안게 된 삼성그룹을 비롯해 대부분의 그룹은 상속세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지분을 처분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주식 담보 대출의 경우 최대주주 일가의 재산권만 담보로 설정하고 의결권은 인정되기 때문에 경영권 행사에 지장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식가격이 담보권 설정 이하로 떨어지면 금융권의 반대매매로 주가가 하락해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
특히 상속세 부담에 따른 무리한 주식 매각은 지분율 축소로 이어져 외부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을 가능성을 키운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아진 틈을 타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유족은 상속세 분납 1차분인 2조원을 내기 위해 모두 합쳐도 5%대에 불과한 삼성전자 지분을 벌써 0.33%나 매각했다. 5년 이내에 더 내야 할 상속세가 여전히 10조원 안팎에 달해 경영권 불안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심리가 최근 주가 급락을 부르기도 했다.
장수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 선진국은 수 많은 장수기업이 맹활약하며 국가 경제를 이끈다. 각국 정부도 가업 승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며 장수기업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장수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상속세 함정으로 3대(三代)만 거쳐도 경영권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일부 장수기업은 가업상속공제를 통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가업상속공제는 기업주의 자녀에 대해 상속세를 줄여주는 제도다.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해 경영한 중소기업을 상속인이 승계하면 가업상속재산가액의 100%, 최대 500억원을 공제해 준다.
하지만 지난 2019년 기준으로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88개에 불과하다. 독일의 경우는 한 해 전 기준으로 1만3169개에 달한다. 이는 가업상속공제를 잘 해주기 때문이다. 실제 독일은 고용 인원과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 5년 후에는 85%, 7년 후에는 100% 상속세를 면제해 준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겠다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33.8%에 불과하다. 이용 계획이 없는 이유로는 사전요건을 충족시키기 힘들어서(40.0%), 사후요건 이행이 까다로워서(25.9%), 제도 혜택이 적어 효율성이 떨어져서(23.5%)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한마디로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제도 정비 역시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이다.
모든 상속인에 대한 최고세율이 동일한 것도 문제다. 다른 나라에서는 배우자나 자녀 상속인은 비과세하거나 제3자 상속인에 비해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과세 방식 역시 불합리하다. 우리나라는 상속세를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 기준으로 과세한다. 다시 말해 유산취득세가 아닌 유산세로 부과하기 때문에 과세표준이 올라 세율이 더 높아진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산세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5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가들은 상속세가 없거나 유산취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 2019년 2월 정부에 제출한 '재정개혁 보고서'를 통해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변경할 것을 권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세수 감소를 이유로 뭉개왔다. 하지만 국회에서 상속세 부담이 과도하다며 정부에 과세 체계의 재검토를 요구하자 최근 유산취득세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산취득세는 현행처럼 상속 총액에 일괄 과세하는 대신 상속자 개인이 받은 재산가액별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상속인을 기준으로 하는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상속세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면서 "해당 검토가 진전되면 상속 체계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것이어서 충분한 연구·검토가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속세율 및 과표구간 조정에는 나서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시늉'만 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상속세 개편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이 끝나는대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실제 개정은 빨라야 내년이 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2023년 상속분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상속세제 개편은 차기 정부의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속세제는 지난 2000년 개정 이후 전혀 손대지 않았다. 22년 동안 약탈적이고, 징벌적인 세제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이는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미국만 해도 지난 2018년 1인당 상속세 공제한도를 5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로 높였다. 1997년부터는 오른 물가만큼 과표를 상향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가고 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기는 커녕 기간 내 신고하면 상속세액의 10%를 깎아주던 것도 2017년부터는 3%로 낮췄다. 사실상의 증세(增稅)다. 그 결과 상속·증여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8%로 OECD 평균 0.4%의 일곱 배에 달한다.
그동안 상속세제는 '언터처블'이었다. 일종의 성역(聖域)으로 상속세 개편을 입에 올리는 순간 부자를 편드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상속세가 부의 세습을 막아주는 '로빈 후드' 세금이라면 모든 선진국은 상속세를 강화해야 맞다. 하지만 현실은 역(逆)으로 움직이고 있다. 상속세 부담 완화는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와 함께 기업가 정신의 대물림을 위한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