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문화예술 지원 사업은 오랜 역사가 있다. 로마제국의 정치가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는 당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후원했고, 이를 계기로 그의 이름에서 '메세나(Mecenat)'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메세나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활동이나 지원자'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과거 정치가·귀족층이 담당했던 메세나 역할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기업으로 옮겨 갔다. 데이비드 록펠러 체이스 맨해튼 은행 회장이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 일부를 문화예술 활동에 할당하자고 건의하면서 기업의 메세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굴지의 기업들이 문화활동 지원자로 자처하고 나서고 있다. 이랜드그룹 또한 이랜드뮤지엄을 설립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보물 같은 작품들을 소장·전시하며 이에 동참한다. 

이랜드뮤지엄이 내달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하는 '셀럽이 사랑한 Bag&Shoes' 전시를 방문해 이랜드그룹이 전하고자 하는 문화예술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 백&슈즈…기업 아이덴티티 반영

'셀럽이 사랑한 Bag&Shoes'는 이랜드뮤지엄이 30년간 수집한 소장품 50만점 중 세계적인 스타들의 신발과 가방 등 200점을 엄선해 선보이는 전시다. 해외 스타의 희귀한 소장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해 패션 아이템의 미술적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의도에서 기획했다. 패션 소품이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이자 당대의 사회문화현상을 담고 있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도 전달한다. 

이번 전시에는 마가렛 대처, 마를린 먼로, 마이클 잭슨, 마이클 조던, 제256대 교황 레오 13세까지 정치·문화·종교 등 폭넓은 분야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이들의 애장품을 전시한다. 이외에도 패션에 관심이 많다면 주목할만한 역사적 패션 아이템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인기 영화의 대표 의상도 준비했다. 

이랜드그룹은 1980년 이화여대 앞에 자리한 작은 보세 옷 가게 '잉글런드'에서부터 시작했다. 박성수 초대 회장은 맞춤복이 유행이던 당시 '절반 가격에 2배 가치를 제공한다'는 철학으로 대중성과 가성비를 갖춘 캐주얼 보세 의류를 판매했다. 이후 사업이 번창하며 상호를 '이랜드'로 변경하고 당시에는 낯설었던 프랜차이즈 의류 브랜드 4개를 구축했다. 현재는 시계·주얼리, 아울렛, 외식, 청년주택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상태다. 

가방과 신발을 주제로 연 이번 전시는 이랜드의 역사가 담긴 듯했다. 전시관 입구에 쓰인 '셀럽이 사랑한  Bag&Shoes'라는 문구 옆 구두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이랜드그룹의 아이덴티티와 전시의 주제를 한 번에 인지할 수 있었다. 

전시는 리더스, 역사적 유행어, 영화 속 신 스틸러, 엘리자베스테일러·찰리채플린, 마이클 조던, 무대 위 신 스틸러, 마이클잭슨, 더 라스트 등 8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 패션의 정치 영향력

8개의 섹션 중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 건 '리더스' 관이었다. 이랜드뮤지엄은 "패션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부인이 착용한 제품이 언론의 관심을 받고, 해외 순방 차림이 국가의 이미지로 인식되기도 한다. 

리더스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였다.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렛 대처는 공사를 철저히 분리하면서도 일과 가정 모두를 지키는 당대 멋진 여성의 표상이었다. 그는 이러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헤어스프레이로 단단히 고정한 부푼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각이 잡힌 디자인의 의상·가방 등을 애용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각을 유지하는 마가렛 대처의 핸드백이었다. 핸드배깅(Handbagging)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 말의 유래는 마가렛 대처의 핸드백에서부터 나왔다. 

마가렛 대처의 상징을 살펴본 후 몇 걸음을 옮기자 '영화 속 신 스틸러'관이 나왔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영화의 명장면과 상징적인 패션 소품이 마치 한 장의 스틸컷을 연상케 했다.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기 좋아하는 MZ세대의 성향은 '전시인증샷'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이는 전시를 감상하는 모습을 찍어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트렌드에 일부 전시기획자들은 사진 촬영하기 좋은 형태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영화 속 신 스틸러관 역시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 듯했다. 이번 전시는 자유로운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 패션으로 본 시대별 문화 아이콘 

 

앞서 살펴본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관들은 한시대를 풍미했던 문화 아이콘들의 애장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패션과 문화는 강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패션에는 당시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담긴다. 이러한 특성은 영화 산업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빼어난 외모와 고혹적인 분위기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그는 아름다운 외모로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관에서는 그가 남편이자 연인이었던 배우 리차드 버튼의 생일파티에서 실제 입었던 검은 드레스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그가 애용한 신발과 가방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지금도 큰 사랑을 받는 브랜드 샤넬과 펜디의 제품도 눈에 띄었다. 

특히 일명 '바게트백'이라 불리는 펜디의 가방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전시된 펜디백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펜디 특유의 로고로 장식된 갈색 디자인이 아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화려함이 담긴 은빛 스팽글 디자인이었다. 같은 제품도 주인에 따라 화려함과 단아함을 달리하는 패션의 특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최근 컬렉션에 추가된 헐리웃 최고의 섹스심벌 마를린 먼로, 팝의 제왕이라 칭송받는 마이클 잭슨, 역대 스포츠스타 중 가장 많은 수입을 벌 정도로 농구를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던 마이클 조던의 애장품도 전시되어 있다. 

현재 큰 사랑을 받는 팝스타들의 애장품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로 평가받는 니키 미나즈, 전 세계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브리트리 스피어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전시관을 메우고 있었다. 

이후 전시 일정에 대한 문의에 이랜드그룹 측은 "이랜드그룹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기획전 주제도 다채로워질 예정"이라며 "추후에도 여러 전시를 통해 예술적 가치를 가진 다양한 소장품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청년일보=오시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