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일부 금융지주사 CEO들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한동안 잠잠했던 관치(官治)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최근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이 다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힌데 이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역시 '라임펀드' 사태를 두고 금융당국이 중징계 조치에 나서면서 연임에 제동, 금융권이 그야말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를 두고 금융권 안팎에선 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강행하기 위해 올해 금융지주 CEO들에 대한 대대적인 재편 작업을 추진할 것이란 다소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면서 급기야 은행권 노조들이 '낙하산 인사'에 대한 결사반대 투쟁 목소리를 높이는 등 벌써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BNK금융지주, '석연치 않은' 김지완 회장의 사임에 '외부인사' 선임 허용...노조 '낙하산 인사' 정지작업 의구심 제기
11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이 임기를 5개월 정도 앞두고 돌연 회장직에서 사임했다.
BNK금융지주는 김 회장의 사임 배경에 대해 최근 제기된 가족과 관련 제기된 의혹으로, 그룹 회장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는 한편 건강 악화와 그룹의 경영과 조직 안정을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적잖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가족 관련 의혹이 심리적 부담으로 김 회장의 개인적 판단으로 사임을 결정했다치더라도, 사임 직전 차기 회장 선임에 있어 외부인사를 포함시킬 수 있도록 경영승계 규정을 개정한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기존의 BNK금융지주의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규정에 따르면, 차기 회장은 그룹 내부 승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사회가 사임 직전 이 규정을 개정해 외부인사도 회장으로 선임이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즉 차기 회장을 외부인사로 선임하기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부산은행 노동조합은 이사회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친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위한 정지작업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은행 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금융감독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대로 외부 공모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을 권고한다면 정치권 낙하산 인사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낙하산 인사는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을 만들고 이로 인한 부작용은 지역과 시장의 신뢰를 잃게 만들 것"이라고 힐난했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 조짐에 금융권 노조도 우려를 나타내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역시 성명을 내고 "금융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피아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로 몸살을 앓아 왔다"면서 "특히 보수정권은 국정통수권자의 최측근들을 금융지주 회장에 앉혀 관치금융을 밀어붙이는 도구로 삼아왔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 금융위 중징계에 벼랑끝에 몰린 손태승 회장...우리은행 노조 "민간 기업서 있을 수 없는 일“
BNK금융지주로 촉발된 인사개입 의혹은 우리금융지주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정례회의에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라임사태 징계안을 상정해 '문책 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확정했다.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이 내려진 지 무려 1년 6개월여 만이다.
금융회사의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총 5단계로 구분된다. 이중 문책경고 이상의 제재를 받을 경우 연임 불가는 물론 퇴직 후에도 3~5년간 금융회사의 취임이 제한된다. 때문에 문책경고의 경우 이 처럼 불이익이 크다는 점에서 중징계로 분류된다.
손태승 회장의 경우 탁월한 성과로 인해 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분석이 적지않았다. 역대급 실적을 거둬들이고 있는데 이어 연임에 다소 결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돼 왔던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소송에서 1심과 2심을 연이어 승소하면 걸림돌도 제거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 라임펀드 사태로 인한 징계에서 문책경고란 중징계를 받으면서 연임 행보에 또 다시 제동이 걸림 셈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손 회장에 대한 제재안 의결에 앞서 "지금 금융시장이 어렵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미룰 수 없는 일"이라며 "연말이 가기 전에 정리할 것은 빨리 하나 하나 정리하자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금과 같은 경우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서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해 볼때 당사자께서도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원장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라임사태에 대한 중징계 결정에 손 회장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더 나아가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유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징계를 통해 손 회장의 연임을 막고 대신 외부 인사를 도모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도로까지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권 안팎에서는 후임 회장 후보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관 출신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금융인 모임의 일원인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등 내부 출신 인사들로 적잖게 거론되고 있다.
이에 노조는 전형적인 관치금융 부활을 우려하며 사전 경고 메세지를 연일 날리고 있다.
박홍배 위원장은 "라임펀드 판매사태를 빌미로 무리한 중징계를 통해 현 (손태승 우리금융지주)회장을 몰아내고 현 법무법인 율촌의 고문인 임모 전직 금융위원장을 앉히려 한다는 소문이 시장에서 파다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손 회장이 금융당국의 징계안에 불복,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금융위의 징계 의결을 취소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후 법원이 이를 수용해 본안 소송까지 진행된다면 연임에 대한 선택은 우리금융지주의 이사회 몫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금융당국과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조직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는 향후 M&A와 같은 사업확대 등 경영 행보에도 크고 작은 걸림돌로 작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손 회장이 이 같은 부담을 덜어내고자 금융당국의 제재안을 수용할 경우 연임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금융당국의 석연치 않은 제재 타이밍과 연임이 불가한 수준의 징계수위를 두고 우리은행 노조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은 "정부 지분이 없는 민간 기업의 수장을 정부의 입맛대로 갈아치우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우리금융지주의 지분을 팔고 은행을 민영화 시켰다면 해당 지분을 산 주주에게 주주 권한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자리에)욕심이 난다해도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은행권 뿐만 아니라 보험업계내에서도 관치 금융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보험업계 싱크탱크로 불리는 보험연구원이 대표적이다. 현 안철경 원장의 임기가 지난 4월 만료됐음에도 불구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할 후임 인선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보험연구원의 경우 3월 후임 원장 인선을 위한 공모 절차를 거쳤고, 후보군에 대한 면접을 직전에 두고 중단된 사례임에도 불구 재개되지 않고 있어 의구심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위 고위관계자가 측근 인사를 도모하려 의도적으로 인선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한 임원은 "보험연구원의 경우차기 원장 인선작업을 중단한 만큼 재개하면 금방 마무리될 일"이라며 "그럼에도 불구 지지부진 한 것은 금융위의 고위관계자가 낙점한 인물을 선임하기 위해 인선작업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개시가 아닌 재개인 만큼 낙점한 인물을 선임하기 위해서는 재공모 또는 추가공모를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상당한 잡음이 야기될 수 있어 타이밍을 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면서 "이에 인선작업이 내년으로 넘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으로, 이는 전형적인 관치이자 적폐사례"라고 힐난했다.
현재 보험연구원은 차기 원장 후보에 안철경 현 원장이 연임에 도전한 가운데 김재현 상명대 교수와 김선정 동국대 교수 등 3명이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한 상태로, 2차 원장후보추천위원회의 면접 재개 여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 청년일보=이나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