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최근 '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GOS)' 논란으로 홍역을 앓은 삼성전자에 또 다른 악재가 발생했다. 내부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에 대해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엄벌 등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6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삼성전자에 근무 중인 한 직원의 사연이 올라왔다. 30대 초반에 미혼 여성이라는 직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자신에게 가해진 성희롱 관련 상황을 밝히며 회사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해당 글에 따르면 피해자는 40대 초반 기혼인 남성 관리자로부터 여러 차례 성희롱을 당했다. 카카오톡을 통해 '네가 웃으면 나는 좋아'·'너 참 예쁘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가 하면, 피해자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선물로 달라는 등 무리한 요청을 이어갔다.
또한, 가해자는 다른 남성 직원과 연인 사이로 오해하고 질투하는 모습도 보였다. 해당 남성 직원이 피해자와 출·퇴근 시간이 겹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와 관련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추궁하는가 하면, 다른 파트원에게 험담을 하는 등의 행위로 피해자를 압박했다.
결정적인 사건의 시작점은 가해자가 막무가내로 피해자에게 저녁식사를 하자고 강권한 것이었다. 피해자가 거절하자 가해자는 업무용 회사 메신저 단톡방을 나가버린 데 이어 다음날 피해자가 업무보고를 하자 가해자는 담당자를 변경하겠다고 통보했다.
부당한 처사라고 판단한 피해자는 가해자의 저녁식사 초대에 어쩔 수 없이 응했으나, 가해자는 그 자리에서도 피해자에게 "타 업체 남직원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길래 그 말을 전해 들었느냐"와 같은 선을 넘는 발언을 했고, 코로나19 방역수칙으로 식당과 편의점, 카페 등에 있을 수 없게 되자 가해자는 피해자의 집에서 남은 이야기를 하겠다며 떼를 썼다.
피해자가 계속 거부 표시를 하고 이후 카카오톡 메시지와 전화를 받지 않자 이후 3일간 가해자는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거는가 하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전화와 카카오톡을 수십 차례 보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무서워서 사촌언니 집에서 한동안 지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와 같은 사태를 더 참을 수 없었던 피해자는 지난 1월 24일 삼성전자 사내에 있는 라이프코칭센터에 상담을 진행했고, 이후 인사과에서 자신이 겪은 모든 사실을 전달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는 적반하장으로 억울함을 호소했고, 함께 일하는 파트원은 피해자를 무시하는 등 2차 가해를 가했다.
피해자에게 가장 큰 좌절감을 안겨준 것은 인사과의 대처였다. 피해자는 인사과에서는 증거가 없고 가해자가 사실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이번 사건을 '확인불가'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12년간 이 회사에서 받은 교육과 달랐다. 수치심을 느끼고 힘들면 성희롱이라고, 참으면 안 된다고 마르고 닳도록 교육하던 회사가 아니었다"며 "징계 결과는 가해자와 파트장에게만 통보하고 피해자에게는 개인정보의 이유로 알려주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과를 아는 가해자와 파트장은 받은 징계가 없다고 이야기하더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이 용기를 내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고 말한 피해자는 "선을 넘는 말을 들었을 때 왜 피했는지, 매일 봐야 하는 껄끄러움을 걱정하느라 화도 내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게 된다"며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을 자책하게 되고 살고 싶지 않아진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이곳에 제 모든 심정을 토로한다"며 글을 마쳤다.
블라인드에서는 피해자를 위로하고 가해자를 질책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카카오톡 내역 등이 버젓이 있음에도 확인불가 처리한 인사과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사내에서는 절대 해결 못하니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라거나 "언론에 제보해야 한다" 등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격려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또 다른 삼성전자 직원은 "가해자라는 사람이 피해자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밀어 넣고 모욕한 것이 진짜 너무 화가 난다. 아무 죄도 없는 피해자분을 오물통에 넣는 그런 사람이 같은 회사 사람이란 것이 부끄럽다"며 "잘못한 가해자가 반드시 벌 받고 피해자분의 마음이 놓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한편으로는 문제가 발생했을 시 무조건 최소화하려는 조직문화를 비판하는 반응도 있었다. 피해자와 비슷한 입장에 놓였으나 헛소문, 험담 등 2차 가해로 인해 결국 회사 또는 팀을 옮겨야 했던 사례를 들며 어두운 현실에 대해 자조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인사팀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면밀히 조사에 착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 청년일보=박준영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