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속도전'의 이면...서울시 신속통합기획의 명과 암

등록 2025.09.08 08:00:08 수정 2025.09.08 08:00:47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서울시와 자치구, 주민, 전문가가 ‘원팀’으로 공공성과 사업성 모두 잡겠다는 '신속통합기획'
빨라진 절차 만큼 기존 원주민이 치솟은 집값에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성도 공존

 

【 청년일보 】 오랜 시간 표류하던 서울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이제는 단순한 '계획'과 '추진'을 넘어 거침없는 속도전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거침없는 질주에는 2021년부터 본격 시행된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이 그 핵심에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 평균 5~15년 걸리던 사업 추진기간을 2~3년 수준으로 단축하겠다는 신속통합기획은 해묵은 도시 정비의 고질적 한계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속통합기획은 서울시와 자치구, 주민, 전문가가 ‘원팀’으로 복잡한 인허가·심의 절차를 통합하고, 공공성과 사업성을 모두 고려한 ‘통합계획’을 내놓는 방식이다.

 

정비구역 지정에서 사업 인가까지 기존에는 모든 단계가 각각 별도 관문을 거쳤지만 신속통합기획은 다수 심의를 한 번에 진행하고, 계획 수립도 자치구·서울시·전문가·주민이 동시에 논의하는 방식으로 병합했다.

 

올해 8월 기준 130여 개소가 신속통합기획 구역으로 지정됐으며 선정 과정 역시 ‘기초 동의율’ 등 주민 의견을 반영하고, 공개적으로 진행돼 주민의 알 권리가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림1구역, 창신숭인 등 선도 사례에서는 생활 편의 공간, 디자인 혁신, 소외 지역 지원 등 다양한 특화 계획이 등장하기도 했다.

 

 

◆ 신속통합기획 "속도와 공공성, 상생 개발"

 

신속통합기획은 정비계획과 건축설계, 각종 심의를 동시에 추진해 사업 기간을 대폭 단축한다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아울러 용적률 완화 등 규제 수준을 낮추고 혁신적인 디자인 같은 공공성을 높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용적률은 건축물 연면적을 대지면적으로 나눈 비율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사업성이 좋아진다.

 

교통·환경 등 다부문 심의를 통합하고, 예측 가능한 행정 지원을 통해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며, 주민 동의율 강화와 투명한 공개 절차로 사업 주체의 역량을 높인다.

 

결국 신속통합기획은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 주택 공급 확대, 시민의 쾌적한 공간 확보라는 '도심의 리셋'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속도의 그림자..."젠트리피케이션 위험 노출"

 

하지만 신속통합기획을 둘러싼 문제도 만만치 않다. 절차가 빨라진 만큼 기존 원주민이 치솟은 집값에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또한, 행정 주도 통합계획이 오히려 민간(조합)과 주민의 목소리를 제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익성 인센티브 대신 공원이나 도로 등 공공시설의 기부채납을 뜻하는 공공기여 요구가 늘면서 원주민과 조합의 부담이 커지고 갈등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강북구 수유동과 서대문구 남가좌동 등에서는 주민 의견 불일치로 신속통합기획이 취소되기도 했다.

 

두 지역 모두 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후, 동의율 조사에서 입안 동의 요건(찬성 50%)과 조합설립 동의 요건(찬성 75%)을 충족하지 못했다.

 

반대율이 30%를 넘어서 내부적으로 분쟁과 갈등이 지속되고, 주민들 사이의 사업성에 대한 우려와 민원, 재산권 침해 가능성, 분쟁 문제 등이 계속 불거지면서 ‘추진 불가’ 판단이 내려졌다.

 

서울시는 작년 2월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개정해, 토지 등 소유자 25% 이상 또는 토지 면적의 1/2 이상이 반대하는 경우 입안을 취소하는 기준을 신설했고, 이 두 곳이 새 기준의 첫 적용 사례가 되었다.

 

장기간 사업이 정체될 경우, 지역 사회 내 재산권 침해, 갈등 고착, 분쟁 악화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시는 설명했다.

 

현재 두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건축허가제한 등도 해제됐으며 권리산정 기준일도 자동 실효됐다.

 

결국, 주민 갈등이 심하고, 사업 추진에 필요한 찬성 동의율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신속통합기획 취소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 신속통합기획, 오세훈 시장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평가도

 

일각에서는 신속통합기획이 오세훈 시장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 등 단기적 성과를 통해 '일 잘하는 시장' 이미지를 구축하고, 내년 지방선거나 향후 대권 가도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용산 정비창이나 압구정 등 상징성이 큰 지역의 개발을 공략해 도시 혁신을 선도하는 리더십을 부각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속통합기획이 과거 박원순 시장 시절의 공공 중심 개발방식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를 강조하는 점 역시 전임 시장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정치적 전략으로 해석된다.

 

◆ 속도와 혁신의 상징..."현장의 목소리 경청해야 성공"

 

서울형 정비사업인 신속통합기획은 '속도와 혁신'의 상징으로 불린다. 하지만 사업의 성패는 절차 혁신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결국 현장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신속통합기획은 절차 단축과 사업성 제고라는 장점을 지니지만, 원주민 보호와 주민 합의 장치가 병행되어야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이 가능하다"며 "특히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기여가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경우, 이는 공동체 해체와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속도 중심의 접근을 넘어, 공공시설 확충과 함께 적극적인 주민 재정착 지원이 병행돼야 하고, 이러한 균형이 이뤄질 때, 신속통합기획은 진정한 도시 경쟁력 강화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은 주민들과의 끝없는 소통, 공공성과 사업성의 실질적 균형,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성찰적 실행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정한 도시 혁신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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