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청년일보는 서울시, 청년허브와 함께 청년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창업과 미래를 향한 도전과 성취의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꿈이 미래가 되는 젊은이들의 삶의 궤적을 하나씩 모아본다.
[글 싣는 순서]
⑭ "지역 청년의 연대와 공조"...어근선 협동조합은평청년정책연구소 대표의 "청년 함성"
⑮ "예술활동 참여를 통한 정신건강 관리"...안티카가 말하는 모두의 자유
⑯ "연극으로 사회 문제를 지적"...극단 스페이스몽키의 예술세계
【 청년일보 】 미소 냉전이 우주개발 경쟁으로 옮겨붙었던 1950년대에 소련은 스푸트니크2호에 떠돌이개 라이카를 태웠다. 이에 대응해 미국이 선택한 것은 인간과 유사한 영장류였다. 1948~1951년 앨버트 1~6이라는 이름의 붉은털원숭이 6마리가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을 했다.
인간보다 먼저 우주에 도착한 이 6마리의 원숭이는 일명 스페이스몽키로 불린다.
이 부분에 착안해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자는 의미로 정성경 스페이스 몽키 대표는 극단명을 지었다. 스페이스와 몽키라는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에는, 상관없어 보이는 소재와 주제, 장르들을 결합해 성찰을 통한 변화의 메시지를 전달해 나갈 극단의 정체성도 담았다.
청년청 이야기, 이번에 만난 스페이스몽키는 연극을 통해 사회의 문제를 제시해온 극단이다. 스페이스몽키는 뮤지컬, 다큐멘터리 연극, 영화 제작 추진을 병행하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사회 편리 위한 소수의 희생"...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산재 다뤄
연출가인 정 대표의 첫 작품은 은하계 제국에서 랑데부다.
정 대표는 "세월호 사건 이후에 연극계의 흐름이 바뀌었다"며 "현실 같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연극이 지닌 픽션이 힘을 잃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때 많은 연극인들이 현실의 문제와 제기되는 목소리들에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연극계의 흐름에 정 대표도 동참, 주목하게 된 것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노동자들의 비극이었다. 시민단체 반올림은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를 대변해 2015년 10월 7일부터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약 3년여 간 천막농성을 이어나갔다.
정 대표는 농성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연극 '은하계 제국에서 랑데부'를 연출했다.
정 대표는 삼성전자가 유명한 핸드폰 시리즈인 갤럭시를 생산해낸다는 점에 착안했고, 황제 국가가 주변국들을 힘으로 억누르는 제국이라는 단어와 결합시켰다. 랑데부는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만나는 것을 뜻한다.
정 대표는 "군대가 집결하는 것을 랑데부라고 한다"고 말했다.
군대가 집결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적으로부터 노출되지 않는 동선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우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우주 공간에서 초속 수십 킬로미터로 날아다니는 우주선을 접촉시키는 것도 당연히 난항이 따른다. 모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그만큼 정 대표가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예사롭지 않게 봤다는 대목으로도 풀이된다.
정 대표는 "반도체는 분명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물건이다"라며 "누군가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잃는 불합리한 현실을 연극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 "왜 우리사회에서 공론화가 안 됐을까"...차기작 제작에 영향 미쳐
정 대표는 은하계제국에서 랑데부 공연을 마친 후부터 사회 문제 제기를 하는 연극에 점차 빠져들게 됐다.
정 대표는 "이전에는 관심 없었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후에도 후속작으로 사회 문제 제기를 하는 연극을 연출했다"라고 말했다.
큰 강물에 작은 돌맹이가 던져지면 처음에는 작은 파동만 발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파동의 갯수가 늘어나 그 강물을 채우게 된다. 정 대표의 마음에도 이런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정 대표는 "첫 작품을 마치고 나서 왜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이후 잘 살고 싶고 잘 먹고 싶은데 아무리 바빠도 그게 안되니 그런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잘 살고 싶고 잘 먹고 싶은 감정들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 언제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고, 1970년대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에 1970년대에 벌어진 남북한 체제 경쟁에 주목했다.
정 대표의 후속작인 '남북한 프로파간다 연극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다 찢어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이야기)'가 이렇게 나왔다.
이야기는 남한의 새마을 운동을 숭배하는 내용의 활화산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숭상하는 연극 성황당을 연구하던 한 작가에게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정 대표는 "두 연극 다 등장인물 중에 다수의 의견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며 "이들을 통해 집단에서 원치 않게 제외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당 작품에서는 작가가 겪게 된 사건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주변인들의 말로 사건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 삼성전자 변화만으로는 부족..."효율 중심 사회 기조 바뀌어야"
은하계제국에서 랑데부 공연이 끝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최근 삼성전자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도입을 원천봉쇄했던 노동조합도 출범했고, 산업재해 신청도 이뤄지고 있다.
정 대표는 "삼성전자가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다만 효율만을 중시하는 사회의 기조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이같은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은하계제국에서 랑데부 공연이 삼성전자의 변화에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된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대표는 "연출한 연극은 실제 농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분들이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의 행동에 비해 항상 한발짝은 느렸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연극은 관객 수도 적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말과는 달리 은하계제국에서 랑데부는 삼성전자의 변화에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류는 다양한 흐름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흐름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담긴다. 나비의 가녀린 날갯짓이 거대한 나비효과를 만들 듯 미약하고 흐릿해 보이는 것도 각자의 역할을 지닌다. 작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도 충분히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음은 물론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누구도 함부로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앞으로도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연극을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에는 시류라는 강에서 앞으로 정 대표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상상을 하게 됐다.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감시자들이 필요하다는 정 대표 내면의 울림도 전해졌다.
【 청년일보=강정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