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넥슨이 새로운 리더십 체제 아래 '원칙'과 '효율'을 앞세운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다. 8천억엔이 넘는 현금성 자산에 30년 간 축적해 온 장수 IP와 AI 기반 개발 혁신을 결합해 '선택과 집중'의 묘를 살린다. 이를 통해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은 전날 개최한 2026년 '캐피털 마켓 브리핑(Capital Markets Briefing·CMB)'에서 향후 중장기 성장 전략과 조직 개편 방향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패트릭 쇠더룬드 회장과 이정헌 대표, 우에무라 시로 CFO가 참석해 각각 전략·창의 방향, 사업 운영, 재무 전략 등을 설명했다.
이번 CMB의 핵심은 단순한 신작 소개가 아니다. 넥슨은 게임 개발 방식부터 비용 구조, IP 운용 전략, 글로벌 확장 방식까지 회사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변혁 계획(Transformation Plan)'을 공식화했다.
특히 쇠더룬드 회장이 전사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하고, 이정헌 대표가 라이브 서비스와 일상적인 경영을 책임지는 '투톱 체제'를 구축하면서 역할을 명확히 나눈 점이 눈길을 끌었다.
쇠더룬드 회장은 "이는 위기 극복을 위한 턴어라운드 스토리가 아니다"며 "넥슨은 이미 2025년 사상 최대 매출 4천750억엔, 영업이익 1천240억엔을 기록했고, 연말 기준 8천억엔 이상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넥슨은 8년 연속 1천억엔 이상의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등 경고한 성과를 이어왔다. 풍부한 현금과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한 만큼, 이제는 단순한 외형 성장보다 어떤 프로젝트에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 "모든 프로젝트를 다시 본다"…'선택과 집중'으로 체질 개선
쇠더룬드 회장이 이번 발표에서 가장 강력하게 강조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넥슨은 앞으로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사업성과 장기 성장 가능성 기준으로 재평가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프로젝트에 개발 인력과 비용을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그는 "넥슨은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해왔고, 때로는 충분히 큰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며 "앞으로는 모든 프로젝트가 명확한 투자 기준과 사업성 검토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넥슨은 기존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편한다. 성과가 불확실하거나 핵심 전략과 거리가 먼 프로젝트는 과감히 축소·정리하고, 대신 장수 IP와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높은 작품에 역량을 집중한다.
의사결정 과정도 대폭 단순화된다. 기존에는 여러 조직을 거치며 늦어졌던 의사결정을 더 빠르고 과감하게 바꾸고, 비용 구조 역시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넥슨이 이처럼 강도 높은 비용 통제에 나서는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신작들의 성과 편차가 컸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실제로 '퍼스트 디센던트'와 중국 출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출시 초기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인 라이브 서비스 유지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PC 버전처럼 장기간 이용자와 관계를 구축한 작품은 여전히 안정적인 매출을 창출했다.
특히 쇠더룬드 회장은 넥슨의 진짜 경쟁력으로 '20년 이상 지속된 게임 IP'를 꼽았다.
그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처럼 수천만 명의 이용자와 20년 넘게 관계를 맺어온 브랜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라며 "우리는 단순히 게임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평생 함께할 수 있는 경험과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 메이플스토리·던파 중심 재편…"성공 공식을 다른 IP로 확장"
이정헌 대표는 넥슨의 미래 성장 전략이 결국 '메이플스토리 방식'을 다른 프랜차이즈에 이식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메이플스토리 프랜차이즈다. 넥슨에 따르면, 지난해 메이플스토리 프랜차이즈 전체 매출은 전년보다 43% 증가했다. 한국 PC 원작의 실적 회복, UGC 플랫폼 '메이플스토리 월드', 방치형 모바일 신작 '메이플 키우기', 블록체인 기반 실험인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가 서로 다른 이용층을 확보하며 시너지를 낸 결과다.
특히 프랜차이즈 매출의 약 40%가 한국 외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메이플스토리가 더 이상 국내 중심 IP가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메이플스토리 성공의 핵심으로 '다층적 경험'을 꼽았다. 기존 PC 원작으로 핵심 이용자를 유지하는 동시에, '메이플스토리 월드'로 클래식 경험과 이용자 제작 콘텐츠를 확장하고, '메이플 키우기'로 모바일 이용자를 끌어들이며,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로 새로운 수익모델과 생태계를 실험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별 취향과 문화에 맞춘 '초현지화(Hyperlocalization)' 전략이 더해졌다. 북미, 일본, 동남아, 한국 등 각 시장마다 선호하는 콘텐츠와 운영 방식이 다른 만큼, 하나의 글로벌 버전을 일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별도의 콘텐츠와 이벤트, 운영 전략을 제공해 성과를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공식을 넥슨은 이제 던전앤파이터 프랜차이즈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지난해 던전앤파이터 프랜차이즈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특히 중국 부진으로 주춤했던 PC 버전이 회복세를 보이며 다시 성장 궤도에 올랐다.
넥슨은 텐센트와 협력해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전투 구조와 보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동시에 던전앤파이터 세계관을 다양한 형태로 확장한다.
우선 연내 '던파 키우기(Dungeon&Fighter: Idle RPG)'를 출시한다. 접근성이 높은 방치형 RPG로, 메이플 키우기와 유사하게 기존 IP를 모바일 이용층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어 2027년에는 '던전앤파이터 클래식'을 선보인다. 원작의 액션성을 유지하되 현대적인 UX와 그래픽을 적용해 과거의 향수를 가진 이용자와 신규 이용자를 동시에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또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AAA급 신작도 준비 중이다. '던전앤파이터: 아라드'는 던파 세계관을 서구권 이용자에게 맞게 재해석한 액션 게임이며, '프로젝트 오버킬'은 PC·콘솔 기반 온라인 액션 RPG로 전투 물리와 그래픽을 전면 현대화했다. 넥슨은 초기 테스트에서 높은 이용자 관심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마비노기·FC·신규 IP까지…"글로벌 시장에서 새 성장축 만든다"
기존 IP 재정비와 함께 넥슨은 새로운 성장 축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먼저, 마비노기 프랜차이즈는 최근 국내에서 흥행한 '마비노기 모바일'을 기반으로 일본과 대만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한다. 여기에 PC 원작을 최신 엔진으로 재구성한 '마비노기 이터니티', 액션 RPG '빈딕투스: 디파잉 페이트'를 통해 IP의 생명력을 다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빈딕투스: 디파잉 페이트'는 콘솔과 PC 기반의 현대적인 액션 게임으로 개발 중이며, '마비노기 영웅전'의 감성을 계승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보다 강한 액션성을 내세우고 있다.
'FC' 프랜차이즈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활용한 외연 확장에 나선다. 넥슨은 네이버와 협업해 게임 플레이와 실제 축구 콘텐츠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경기 결과와 선수 이슈, 중계 콘텐츠를 게임 안으로 끌어와 PC·모바일·플랫폼을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신규 IP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아크 레이더스'다. 쇠더룬드 회장이 CEO를 맡고 있는 엠바크 스튜디오가 개발한 이 작품은 넥슨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글로벌 출시 사례로 평가된다.
쇠더룬드 회장은 "아크 레이더스는 넥슨이 서구권을 포함한 글로벌 대중에게도 통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넥슨은 아크 레이더스를 계기로 '넥슨은 아시아 중심 회사'라는 시장의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넥슨은 엠바크 스튜디오의 후속 프로젝트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이와 함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생존 게임 '낙원: LAST PARADISE'도 차세대 글로벌 IP 후보로 육성한다.
'낙원: LAST PARADISE'는 최근 별도의 마케팅 없이 진행한 비공개 알파 테스트에서 동시접속자 3만7천명을 기록했다. 기존과는 궤를 달리하는 새로운 IP임에도 상당한 관심을 입증한 셈이다.
◆ "AI는 사람을 대체하지 않는다"…넥슨식 AI 전략 공개
이번 CMB에서 넥슨이 가장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내세운 것은 AI다. 다만 단순히 생성형 AI를 도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넥슨이 지난 30년간 축적해 온 이용자 데이터와 결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강조했다.
이정헌 대표는 "넥슨은 수십억 건의 이용자 행동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선택과 감정, 패턴이 축적된 '맥락'"이라며 "이 맥락이야말로 다른 회사가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넥슨은 이를 기반으로 자체 AI 이니셔티브 '모노레이크(Mono Lake)'를 구축하고 있다. 모노레이크는 수십 년간 축적한 이용자 상호작용 데이터를 학습해 개발자와 운영팀이 필요한 정보를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개발자는 특정 콘텐츠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연령대 이용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비됐는지를 즉시 파악할 수 있고, 운영팀은 특정 이벤트나 업데이트가 이용자 잔존율과 과금 패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넥슨은 AI를 통해 게임 기획, 밸런싱, 라이브 서비스 운영, 고객지원, 번역, QA까지 개발 전 과정을 효율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AI가 창작 인력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맥락 없는 AI는 단지 속도만 빠른 알고리즘일 뿐이며, 결국 모든 게임을 비슷하게 만든다"며 "넥슨의 AI는 개발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작업에서 해방시켜 창의성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말했다.
쇠더룬드 회장 역시 엠바크 스튜디오의 개발 방식을 사례로 들며, 앞으로 넥슨 전반에 더 스마트한 워크플로우를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개발자들이 문서 작성이나 반복 QA 같은 비본질적 업무에 시간을 쓰는 대신, 게임의 재미와 창의성에 더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 메이플 키우기 사태 반성…위험관리 체계도 전면 개편
넥슨은 최근 불거진 '메이플 키우기' 관련 논란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쇠더룬드 회장은 해당 사안을 "회사의 평판과 재무에 영향을 준 운영상의 관리 실패"라고 규정했다.
이어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한 실수로 보지 않는다"며 "구조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넥슨은 새로운 최고위험책임자(CRO)를 선임하고, 핵심 사안에 대해 의무적인 다중 보고 체계를 도입했다. 특정 조직이나 개인이 문제를 독점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도록 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여러 부서가 동시에 검증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넥슨이 최근 수년간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가 상대적으로 뒤처졌다고 평가해왔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조직 변화가 아니라, 앞으로 글로벌 기업 수준의 경영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 "주주가치 높인다"…배당 33% 늘리고 자사주 매입 지속
넥슨의 재무 전략 역시 보다 공격적으로 바뀐다. 우에무라 시로 CFO는 "넥슨이 올해 연간 주당 배당금을 60엔으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45엔) 대비 33% 증가한 수준이다.
넥슨은 기존에 제시했던 '전년도 영업이익의 33%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한다'는 원칙도 유지한다. 실제로 넥슨은 최근 수년간 이 기준을 웃도는 수준의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진행해왔다.
회사 측은 앞으로도 막대한 현금성 자산과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을 바탕으로, 성장 투자와 주주환원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넥슨은 올해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의 동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핵심은 비용 절감 그 자체가 아니라, 절감한 비용을 다시 메이플스토리·던전앤파이터·마비노기·아크 레이더스 등 경쟁력 있는 IP에 재투자해 구조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결국 넥슨이 이번 CMB에서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무엇이든 많이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게임과 커뮤니티에만 집중하는 회사로 변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쇠더룬드 회장은 이날 발표를 마무리하며 넥슨의 가장 큰 자산으로 유명 스포츠팀의 팬덤과 같은 '강력한 커뮤니티'를 꼽았다.
그는 "앞으로의 모든 포트폴리오 결정이나 신규 투자 '이것이 이용자의 평생을 함께할 열정이 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하나로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질문에 대한 확신이 설 때만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기회에는 눈을 돌리지 않겠다"고 명확한 원칙을 제시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