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불평등과 한국의 복지국가

등록 2025.12.14 10:00:00 수정 2025.12.14 10:00:07
청년서포터즈 9기 이나연 864leena@gmail.com

 

【 청년일보 】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다수의 선호가 제도적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설계된 정치 체제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으며, 전통적으로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 보호와 평등 증진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이러한 이상과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적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불평등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거나 오히려 심화되는 사례는 적지 않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소득 불평등과 노인 빈곤율이 높은 국가에 해당한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재확인된다.

 

2024년 기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25로 전년보다 소폭 증가하였고, 상대적 빈곤율은 15.3%, 특히 66세 이상의 은퇴연령층은 37.7%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재분배 전후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조세와 이전소득을 통한 불평등 완화 효과가 OECD 평균보다 낮다는 기존 평가를 다시 한번 입증하는 결과이다.

 

자산 불평등 역시 심각하다. 2025년 조사에서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 6,678만 원이었으나,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46.1%를 차지하며 자산 편중이 오히려 심화되었다. 순자산 지니계수도 0.625로 전년 대비 상승해 자산 계층 간 분리가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 복지 지출과 사회보장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평등 완화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는 한국 복지국가의 구조적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 Esping-Andersen(1990)의 유형론에 따르면 한국의 복지 체제는 가족 중심 돌봄, 낮은 공공 지출, 시장 의존적 위험 분산 구조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공적 복지가 충분한 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하며, 특히 노동시장 바깥에 놓인 취약계층의 위험이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못한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이러한 한계를 비극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사건 이후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 개정, 사회보장급여법 제정을 통해 위기가구 발굴을 강화했지만, 이는 사회적 위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대응이라기보다 사후적 발견 체계에 초점을 둔 조치에 그쳤다. 또한 상대적 빈곤 기준의 도입과 의료급여 사각지대 문제 등은 여전히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다.

 

국가는 사회적 위험에 개입해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현대 복지국가의 개념은 복지혜택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 간주하며, 국민의 삶의 질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다. 자산과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한국에서 이러한 복지국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주거지원, 실업급여, 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 돌봄 서비스, 교육훈련 등의 사회투자 정책은 계층 간 격차를 줄이고 생애주기 위험을 완화하는 핵심 도구이다. 경제성장 둔화, 고령화, 저출산, 재정 여력 축소 등의 구조적 요인이 복지 확장의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사회안전망 강화를 더욱 절실한 과제로 만들고 있다.

 

결국 개인이 빈곤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렸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토대라 볼 수 있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는 한국 복지국가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들을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필요한 개혁의 방향 역시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자산과 소득의 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제도적 개선 없이는 민주주의의 평등 이념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보다 포용적이고 재분배 기능이 강화된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이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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