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지상 아닌 지하로…도심 물류의 새로운 대안 '지하물류'

등록 2025.12.20 10:00:00 수정 2025.12.20 10:00:08
청년서포터즈 9기 전수빈 sallyjsb0318@naver.com

 

【 청년일보 】 도심 물류량이 급증하면서 교통 혼잡, 환경오염, 안전 문제 등이 심화되자 '지하물류(Underground Logistics)'가 새로운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하물류는 지하 공간에서 선적·보관·하역·운송 등 물류 전 과정을 수행하는 체계로, 지상의 교통 부담을 줄이고 도시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 물류량 증가에 멈춰선 도시…지하로 시선을 돌리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세계 주요 도시의 화물 차량은 최근 36% 증가했고, 그로 인한 출퇴근 시간도 2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 물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처리할 노동력 증가세는 뒤처지고 있으며, 물류 종사자의 노동 강도가 높아지면서 사고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삼성화재에 따르면 화물차 사고 건수는 최근 수년간 3배 이상 늘었다.

 

환경 문제도 크다. 다수의 택배차량은 여전히 경유 차량이며, WEF는 라스트마일 배송 부문에서 2035년까지 600만톤(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지하 기반 물류체계 구축이 떠오르고 있다.

 

◆ 지하물류의 핵심 기술…수평·수직 이동부터 환경 제어까지

 

지하물류는 크게 ▲수평 이동 기술 ▲수직 이동 기술 ▲제습·환기 등 환경 제어 기술로 구성된다.

 

수평 이동 기술은 지하 터널이나 파이프라인을 따라 캡슐형 운송체나 자율 전기화차가 이동하는 방식이다. 독일의 'CargoCap'은 팔레트 두 개 규모의 화물을 캡슐로 운송하는 시스템으로, 현재 프로토타입까지 개발됐다. 벨기에의 'UCM(Underground Container Mover)'은 항만 간 컨테이너만을 전용으로 실어나르는 지하 자율화차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수직 이동 기술도 필수적이다. 티센크루프가 개발한 자기부상 엘리베이터는 수직·수평 이동이 가능해 지하 물류센터의 공간 활용도를 높인다. 택배사와 3PL 기업이 사용하는 수직 컨베이어(VRC)는 고층 물류센터에서 지하 터미널까지 화물을 빠르게 내려보낼 수 있어 지하물류와의 연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하 환경의 특성상 제습·환기 시스템은 필수 요소로 꼽힌다. 지하수·습도에 의한 화물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정교한 환경 제어 기술이 요구된다.

 

◆ 스위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지하물류 실증 국가

 

가장 앞선 지하물류 사례는 스위스의 'CST(지하 화물 시스템)'다. 스위스는 국토의 40%가 산악 지형이며 물류비가 높은 내륙국이지만, 잘 정비된 지하철 인프라 덕분에 지하물류 기반 구축이 용이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스위스는 깊이 50m, 지름 6m의 원형 지하 터널을 건설해 주요 10개 도시를 잇는 500㎞ 규모의 지하 화물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터널 내부에서는 전자코레일과 무인 전기차량을 활용해 시속 30㎞로 화물을 운송하며, 상부 유휴 공간에는 시속 60㎞의 OHT를 배치해 소형화물을 빠르게 처리한다.

 

총 사업비는 약 52조원으로 추산되며, 사업이 완성될 경우 도심 대형 트럭 운행이 30%, 소음은 5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 한국은 '지하철 물류' 실증…기존 인프라 활용 전략

 

한국은 대규모 지하 물류망을 신설하기보다는 기존 지하철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실증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화물 전용 철도차량 2량을 개발해 지하철 운행 간격 사이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승객 이동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지하철역 유휴 공간을 물류 전용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아직은 운송 방식에 대한 구체적 계획 수립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인천시는 '공동 집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지하철 택배를 추진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택배 물량을 한 번에 모아 지하철역 집하센터에 전달하고, 이후 전기화물차로 최종 배송하는 구조다. 기존 허브 터미널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용·시간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서울·인천 사례를 결합하고, 티머니가 운영하는 도심 도보 배송 서비스와 연계할 경우 단기간 내 현실적인 지하물류 도입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 풀어야 할 과제…비용·민원·제도 부재

 

지하물류가 본격 도입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지하 터널 건설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동화·무인화를 통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고, 24시간 운송체계 구축 등 편익을 높여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역 주민 민원도 우려된다. 지하 물류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소음·환경 문제, 지하 공간의 재산권 등 복합적인 갈등 요인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사유지·공유지·지하 공간의 법적 구분 체계를 명확히 하고, 국가 차원의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적 기반 역시 미비하다. 지하 물류시설의 기준, 지하 공간 승강기 설치 규정 등 기본적인 법·제도가 정립되지 않아 실제 추진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 "기존 인프라 활용 vs 신설"…한국 지하물류, 선택의 기로

 

한국은 당분간 기존 지하철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스위스와 같은 전용 지하 물류망 구축이 도시 경쟁력과 환경 목표 달성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도시 물류의 효율성과 시민 생활의 편의, 환경적 편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하물류 도입의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하물류가 미래 도시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이 어떤 모델을 선택할지는 앞으로의 정책 결정과 사회적 논의에 달려 있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전수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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