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예민함은 병이 아니다"…'HSP', 일상의 부담과 과학적 근거

등록 2025.10.12 08:00:00 수정 2025.10.12 08:00:07
청년서포터즈 9기 김현성 jessica01110@naver.com

 

【 청년일보 】 대학생 A(23)씨는 "쉬는 시간이 제일 두려워요"라고 말했다.

 

강의가 끝난 뒤 잠깐의 휴식 시간, 친구들의 작은 대화와 웃음소리가 A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소음이다. 지나가며 들린 한두 마디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그날 남은 수업 전체의 집중력이 무너지고, 과제 마감과 시험 준비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그저 수업의 한 장면'일 뿐인 풍경이 A에게는 과도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일상적인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임상심리학에서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 즉 감각처리 민감성(Sensory Processing Sensitivity)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병'이 아니라 '기질'이라는 점이다. 예민함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품고 있다. 세밀한 관찰력과 높은 공감 능력은 타인의 감정을 빨리 파악하고 섬세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소음·빛·냄새·감정적 충격 같은 외부 자극에 쉽게 과부하가 걸릴 수 있게 한다.

 

신경영상·행동 연구들은 HSP가 단순한 성격 묘사가 아니라 뇌의 감각·공감 처리 회로에서 관찰되는 반응성 차이와 연관된 기질임을 보여준다.

 

전 세계 인구의 대략 15~20%가 HSP 성향을 보인다는 역학적 추정이 있으며, 위의 뇌 영상 연구에서는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인지·공감 관련 뇌 영역의 반응성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러한 신경생리학적 근거는 '예민함'이 생물학적 토대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메타분석과 장기 추적 연구들은 높은 감수성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불안·우울·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HSP 자체가 병은 아니지만, 외부 환경이 강압적이거나 지속적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정신건강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어판 HSPS(자가보고형 척도)의 타당화 연구가 이루어져, 한국인 표본에 맞춘 해석 기준과 컷오프가 제시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해외 연구를 번역·적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국내 실정에 맞춘 연구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자가검사는 어디까지나 스크리닝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임상적 판단은 '어떤 증상이 나타나고 그것이 학업·직무·대인관계 같은 일상 기능을 얼마나 손상하는가'에 따라 내려져야 한다.

 

임상적 접근은 이 점에서 명확하다. HSP 성향 자체를 '치료'하려 하기보다, 그로 인해 발생한 수면장애·만성 불안·우울 증상 등에 맞춘 개입을 우선한다. 인지행동치료(CBT)와 수용전념치료(ACT)는 감정 조절 기술을 가르치고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데 유효하다. 필요시 단기간의 약물치료로 불안 증상을 안정화한 뒤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방식이 흔하다. 임상가는 HSPS 결과를 참고 자료로 삼되, 치료 여부와 범위는 기능 손상과 환자의 고통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HSP 당사자들은 '개인적 쉼'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한 대학생 B씨(23)는 "도서관에서 누군가 표정을 스치기만 해도 불안이 극도로 올라 학습이 불가능해졌다"라며 "장소 자체를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앞서 제시한 대학생 A와 B의 사례들을 보았을 때, 개인 차원의 전략(이어플러그·심호흡·짧은 휴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며, 조직 차원의 실무적 조치가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실무적으로 적용 가능한 조정은 비교적 단순하고 비용효율적이다. 구체적으로 권장되는 항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용한 집중 공간이나 소음 차단 부스 등을 마련해 선택적으로 이용하게 한다. 둘째, 조명·환기·향과 같은 물리적 환경을 조절 가능하게 한다(예: 가변조명, 향 사용 제한). 셋째, 원격·하이브리드 근무 옵션을 제공해 자율적 환경 조절이 가능하도록 한다. 넷째, 익명으로 조정 요청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 '부담스러운 요청' 자체로 환경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한다.

 

따라서, 조직 내 관리자와 교육 담당자는 HSP를 질환으로 낙인화하지 않으면서도 '환경의 합리적 조정'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정책적 관점에서 볼 때도 현실적인 조치가 가능하다. 교육부나 기업의 복지 정책에 한국어판 HSPS를 통해 도출한 기준표를 핵심으로 '감각 민감성 대응 메뉴'를 포함하고, 학교 상담센터와 기업 건강관리 프로그램에서 HSP 관련 정보(간단한 설명·자가 관리법·상담 연계)를 반영해 피상담자에게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큰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추가로 관리자·교수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30분 정도의 단기 연수를 정례화하면, 조직 내 오해와 갈등을 줄이고 개개인의 생산성을 높이고 인재 손실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마지막으로 HSP 성향이 강한 당사자가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전 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업·회의 전에는 의제를 미리 요청해 미리 준비를 하는 과정을 통해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에 대비할 수 있다. 부가적으로 짧은 회복 루틴(깊은 호흡 2분, 눈감기 1분)을 통해 신경을 낮추어 개인에게 오는 자극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이어플러그·노이즈 캔슬링 헤드폰·가벼운 담요 등 '개인 안정 키트'를 준비해 환경적 자극을 최소화한다. 만일 그럼에도 기능적 손상이 지속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임상심리 상담을 예약해 조기 개입을 받는 것이 개인적, 사회적인 장기적 비용을 줄여준다.

 

예민함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사회와 조직이 이를 아직은 잘 모르기에 방치할 경우 개인의 삶과 생산성에 실질적 피해가 쌓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해와 소통, 그리고 실천 가능한 조정 등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춰질 때 HSP 성향을 지닌 개인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면서 불필요한 소진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김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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