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전 세계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지구의 '얼음이 줄어드는' 현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빙하 속에는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대 미생물과 바이러스들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러시아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permafrost)에서는 약 4만 8천 년 전에 존재했던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부활한 사례가 보고되었고 연구진은 이를 "기후변화가 촉발한 새로운 감염병 리스크의 신호탄"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녹으면 그 속에 잠들어 있던 미생물·바이러스·세균이 토양과 물로 유입됩니다. 이는 단순한 고대 생물체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면역적으로 전혀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병원체가 등장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2016년 러시아 야말반도에서는 70년 전 동토에 묻혀 있던 순록 사체에서 탄저균이 노출되어 주민과 가축이 감염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빙하 융해와 미생물 노출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첫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빙하 속 미생물만이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기후 변화는 모기, 진드기, 설치류 등 감염병 매개체의 서식 범위를 변화시키며 전염병 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기온이 1°C 상승할 때마다 말라리아·뎅기열의 감염 가능 지역이 평균 4.7% 확대된다고 밝혔습니다. 국내에서도 일본뇌염 매개 모기의 북상과 야생진드기(SFTS) 감염 증가가 보고되고 있고 심지어 한겨울에도 모기 활동이 지속되는 '비정상적 계절성'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환경문제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는 곧 감염병 대응의 문제이며 그 영향은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의료체계가 갖춰진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은 병원시스템, 검사 체계, 백신개발 등 공중보건의 전 영역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때 가장 먼저 그 변화를 마주하게 되는 직군 중 하나가 바로 임상병리사입니다.
임상병리사는 혈액, 체액, 미생물 등 인체 검체를 분석해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감염을 조기에 탐지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새로운 병원체가 등장했을 때 그 실체를 최초로 포착하고 확인하는 전문가가 바로 임상병리사입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국내 확진을 판정한 것도 PCR(유전자 증폭) 검사였으며 이 기술을 수행하고 표준화한 주체 역시 임상병리사였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거나 빠르게 확산하는 병원체들은 더욱 정밀한 분석 장비와 표준화된 검사 절차 없이는 감별이 어렵습니다. 예컨대 영구동토층에서 복원된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이나 신종 감염병 환자의 혈청학적 패턴 분석은 임상병리학의 전문성과 정확성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결국 기후 변화 시대의 감염병 대응은 '현장의 눈'인 임상병리사의 역할 없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감염병은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생태계 변화, 전 세계 이동량 증가는 새로운 병원체의 출현 가능성을 상시화했습니다. 그렇기에 임상병리사는 단순한 검사자가 아니라 감염병 데이터를 해석하고 조기 경보 체계를 구축하는 핵심 인력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기후위기는 생태의 위기이자 인간 건강의 위기입니다. 현 상황에서 온난화가 멈추지 않는다면 감염병은 더욱 빈번하고 예측 불가능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의료기관은 환경 변화 기반의 감염병 감시 연구를 강화하고 실험실 인력의 전문 교육 확대, 공공보건 검사체계의 지역 간 격차 완화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감염병은 과거와 다릅니다. 하지만 그 변화에 가장 먼저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다루고 병원체의 미세한 변화조차 놓치지 않는 임상병리사들입니다. 이들의 전문성은 사회의 안전망을 떠받치는 조용한 힘이며 앞으로 그 존재감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기후 변화가 낳은 새로운 위험 앞에서, 우리는 과학으로 인간의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청년 임상병리사로서 내가 바라보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실천이며 앞으로 지켜야 할 책임이자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김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