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2019년으로 기억한다. 청년 외 서울시민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서울숲을 거닐며 1:1로 산책하는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서울시 치유활동가집단 '공감인' 청년 공감자로서 활동한 지도 올해로 5년째다. 여기서 '공감자'라 함은, '공감인' 내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거나 치유를 경험한 일반 시민들을 지칭하는 말로 여기서 순수 참여자를 '화자'라고 불린다.
신청에 제한이 있지는 않으나 회차당 70~80%의 참여자는 2030세대들이 많다. 또래 청년으로서 반기별 토요일마다 그들의 이야기와 속마음에 집중한다. 나누는 주제는 무척 다양하다. 취업 혹은 진로부터 시작하여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에서 초래된 감정의 부산물 등. 사전에 보내준 사연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당일 공감자가 선택하여 매칭되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이름이나 성별, 나이, 직업 등 개인정보가 필요하거나 중요치 않다. 오로지 '사람'과 '이야기'에 집중하여 1시간 반에서 2시간가량 교류한다.
평균 반기당 3~4회 정도 진행된다. 5년이니 최소 10~15명의 청년 혹은 시민들을 만난 것이다. 철저한 비밀 보장 아래 진행되기에 이후에 어떻게 지내는지 또 지속적인 관계나 만남은 알 수도 없고 또 가질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잘 지내고 있겠지'라는 막연한 믿음 아래 오늘도, 그다음에도 새로운 이들과 대면한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본 적이 있다. 알파 세대로 대변되는 10대부터 MZ 세대까지, 자신 외 타인을 소위 온라인 게임의 'NPC'처럼 생각한다는 이야기. 가령, 자신은 혼잣말을 한 건데 타인이 이를 듣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물어보면 무척 당황하거나 불편해한다는 거다. 이것만 본다면 “요즘 친구들은 사람들과 소통을 별로 하고 싶지 않나 봐”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그들과 대면해 보면 전혀 그러지 않음을 몇 마디 나눠봐도 알 수 있다. 굳이 MBTI로 접근하지 않아도, 성향이 E든 I든 누가 다가와 주길 원한다. 또 스스로도 말하고 싶어 한다. 근데 전제가 있다. '내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장소(공간)나 믿을 수 있는 편한 사람에 한해서'라고.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거나 어색함이 지속되면 말문을 닫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여기서 무언가 느끼는 게 있다면 당신은 민감성이 높다는 증거다. 상황적 맥락이 어떻든 청년들은 말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다. 오죽하면 가까운 일본에서는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서비스 형태로 이용하지 않는가. 다만 내면의 외침이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모를 뿐이지 사실 우리는 모두 안다. 청년들이 힘들어하고 누구보다 응원과 지지가 필요한 대상임을.
청년 사회복지사인 내게 이러한 이슈는 단순한 이슈로 끝나지 않는다. 나 또한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공감하며 지지해 주길 원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양적인 측면으로 청년 복지나 관련 문제를 접근하는 건 오류다. 특히 심리적인 부분의 경우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분으로 해석할 경우 그 문제가 더 가속화되는 경우도 더러 봤다.
완벽한 이 없고 실수 안 하는 이 없다. 하물며 청년이라고 다를까.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엄격한 잣대를 여전히 들이밀고 심판적 태도로 바라본다. 실패를 용인한다지만 그럼에도 "잘 좀 하지"라는 뉘앙스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 곳곳에 숨겨있다. 가까운 가족들마저도 청년들의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나 관계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청년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공감하며 대변해 주는가.
그것이 '속마음산책'에 꾸준히 참여하는 이유다. 잠시나마 그들의 해우소로서 충고나 조언, 평가, 판단하지 않고 공감하고자. 청년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거나 직접적으로 듣고 싶다면 먼저 보여주길 바란다. 작금의 청년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일자리도, 자산 형성 등의 금융 지원도, 문화 혜택이 아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는 진심 어린 말과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도전에 묵묵히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글 / 팀스토리액팅 조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