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티몬·위메프 정산 대금 및 환불금 미지급 사태가 사회적 참사로 악화되는 가운데, 구영배 큐텐 그룹 대표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와 함께 사건 발생 이후 경영진의 안일한 늦장 대응에 이해관계자들과 업계의 신뢰 역시 급락하고 있다.
31일 업계 일각에서는 티몬·위메프 사태의 근원적인 원인에는 구 대표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안일한 경영 관리 능력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면서 "구 대표의 과거 행적과 그간 전략을 살펴보면 그가 국내 계열사 경영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고 짚었다.
◆ '정도경영' 실천에도 회의감…티몬 직원 "회사 경영 의지·방향성 의구심 느껴"
구 대표는 지난 2003년 국내 최초 1세대 오픈마켓 G마켓을 창립했다. 이후 그는 회사의 세를 키운 이후 2009년 미국 이베이에 약 4천500억원(3억5천만달러)에 G마켓을 매각했다.
당시 구 대표는 G마켓을 매각할 당시 이베이와 국내에서 10년간 동종 업종에 종사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2019년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에서 큐텐을 창업했다. 그러나 구 대표가 큐텐을 창업할 당시 그의 관심은 이커머스 사업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는 G마켓을 매각한 후 이커머스 사업으로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유통 물류사업에 집중해 왔다"면서 "그 과정에서 국내외 이커머스업체를 인수하며 무리하게 몸집을 불려온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구 대표는 물류 회사인 '큐텐익스프레스'를 중심으로 그룹의 몸집을 키우며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국내로 다시 돌아와 2022년 티몬, 2023년 위메프와 인터파크커머스 부문을 잇따라 인수하며 2023년 기준 227조원대 규모의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만, 인수 당시에도 구 대표가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를 나스닥 상장을 위한 몸집 불리기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인수 시점에도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상태였고, 현재까지도 이들 업체는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구 대표를 비롯한 큐텐 그룹이 티몬·위메프의 수익 개선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전개하는데 큰 관심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큐텐에 인수된 이후 별도의 재무팀을 갖추지 않은 상태로 운영돼 왔으며, 이 두 업체는 오직 상품 판매와 마케팅 등에만 관여할 수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티몬과 위메프의 재무 관련 직무는 큐텐테크놀로지 소속 직원이 겸직하고 있었다.
실제 사태가 발생한 직후 티몬에서 근무하는 직원 A씨는 "회사의 재무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회사 측이 이를 개선할 의지와 방향성 없이 운영되는 것처럼 생각된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티몬과 위메프 인수를 "국내 시장에서 유의미한 규모의 사업 기반을 확보했다"라고 평가한 구 대표의 주장 역시 당시 업계의 상황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이커머스업체 관계자는 "당시 티몬과 위메프의 시장 점유율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미미한 수준이었다"라면서 "재무상태도 좋지 않아 큐텐의 인수 결정 배경에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큐텐이 인수한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의 시장 점유율을 모두 합산해도 8.4%에 불과했다.
◆ 기약 없는 보상 시점에 '분통'…"이해관계자 신뢰 완전히 상실"
구 대표가 이번 사태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29일 출입 기자를 상대로 한 보도자료 형식의 입장문을 통해서다. 이번 정산 대금 미지급 사태가 실질적으로 올해 6월부터 시작됐었던 점을 고려하면 약 두 달 만이다.
그는 입장문에서 "피해를 입은 고객들과 관계된 모든 파트너사 그리고 국민께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라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큐텐 지분의 매각과 담보를 통해서라도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구 대표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출석을 요청하기 전까지 끝내 소비자, 셀러 등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구체적인 보상 시점 역시 확답하지 않았다.
큐텐 측은 "구 대표는 한국에 체류하며 사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라면서도 그의 구체적인 거처는 알리지 않았다. 그의 소재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자 소비자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돼 왔다.
한 이커머스업체 관계자는 "피해 규모가 계속 불어나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구 대표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현재 계열사의 대표, 실무진만 나서는 상황인데, 이들 역시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제대로 된 응답은 물론 소비자들에 보상 시점을 확답하지 못하고 있어 사태만 악화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시점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이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티몬·위메프 측이 보상 시점과 범위, 가용금액에 관해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원인으로 큐텐 그룹 측과의 소통 부재를 언급하고 있어 사태 해결에 대한 구 대표와 큐텐 측의 의지에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실제 티몬 측은 사태 발생 초기 "큐텐 그룹 본사 측과 소통을 담당하던 인력이 이탈해 문제 해결을 위한 원활한 소통채널을 확립하지 못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며 문제가 수습되더라도 큐텐과 계열사들이 국내에서 정상적인 사업을 다시 영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유통산업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이커머스 사업을 전개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보다 소비자, 셀러, 관련 업계의 '신뢰'"라면서 "큐텐 그룹과 티몬, 위메프는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이해관계자를 응대하는 과정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후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할지라도 구 대표의 소망대로 국내 시장에 다시 도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큐텐 그룹과 구 대표의 입지에는 큰 상처가 남을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한편, 티몬과 위메프는 지난 29일 기업이 자체적으로 회생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끝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을 제출했다. 법원은 바로 다음 날인 30일 이들의 기업회생 신청을 받아들여 티몬과 위메프의 자산을 동결했다. 이에 따라 미정산액 지급이 당분간 중지돼 사태는 더욱 장기화될 전망이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