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 '깨고' 엔비디아 '산다'...'내 집 마련' 포기한 2030

등록 2026.02.27 08:00:02 수정 2026.02.27 08:00:13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고분양가·가점 장벽에 청약 무용론...미장·코인 쏠림
2030 이탈만 연 158만건..."공급 위주 정책 한계"

 

【 청년일보 】 "이 돈으로 청약 넣느니, 차라리 미장이나 코인에 넣는 게 낫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4년 차인 직장인 김모(29) 씨는 지난해 주택청약종합저축을 해지했다. 당첨 확률은 희박한데 통장 금리는 물가 상승률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체감하고 내린 결정이다.

 

대신 그는 해지한 목돈으로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주식을 매수했다. 불확실한 내 집 마련보다 성장 자산 투자가 합리적인 선택지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처럼 청약통장을 깨고 금융 시장으로 향하는 청년층이 빠르게 늘면서 청약 시장의 이탈 흐름이 뚜렷한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2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예금·청약부금·청약저축) 전체 가입자 수는 2천618만4천107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도 말(2천648만5천223명) 대비 30만1천116명 감소한 수치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022년 6월 2천859만9천279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4년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47만7천486명이 감소한 데 이어 2023년에는 85만5천234명으로 감소 폭이 크게 확대됐고, 누적 240만명 이상이 청약 시장을 떠났다.

 

이러한 이탈 흐름의 기저에는 시중 금리를 밑도는 통장 이자율과 치솟는 분양가가 자리 잡고 있다.

 

KB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여전히 10억원대를 넘나들고, 강남 등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인기 지역의 경우 가점 경쟁이 치열해 실질적인 당첨 가능성이 낮아진 점도 가입자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현장에서는 이러한 이탈을 체감 경기 악화와 구조적 변화의 결과로 진단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에는 특정 연령대만의 흐름이라기보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 자체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며 "청약통장은 통상 가장 마지막에 해지하는 상품으로 분류되는데, 최근 해지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체감 경기와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금리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약통장의 수익 매력은 과거보다 떨어진 상태"라며 "여기에 주택 가격 부담과 당첨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장기간 자금을 묶어둘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 집 마련이 멀어진 청년층은 끊어진 부동산 사다리 대신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미국 기술주 등 고위험 고수익 자산으로 눈을 돌리는 양상이다. 엔비디아, 테슬라, 애플 등 글로벌 기술주가 청년층의 새로운 자산 증식 수단을 상징한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2030세대의 경우 근로소득만으로 주택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청약을 통한 내 집 마련 기대가 예전보다 낮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이 자금이 미국 주식이나 가상자산 등 상대적으로 기대수익이 높은 자산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감지된다"고 전했다.

 

이어 "자산 증식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큰 상황에서, 청약통장의 상품성이 과거만큼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이 구조적인 변화"라며 "은행권도 청년층의 자산 형성 수요에 맞는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청약이라는 가장 안전한 자산 축적 경로가 끊어지면서 청년층이 시장 변동성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위험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자산 격차를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청년층의 위험 자산 선호 현상을 부추기며 자산 양극화를 심화할 우려가 제기된다.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세대가 늘어나는 현시점에서 정부의 주거 정책 패러다임도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의 자산 형성 경로가 이미 금융 시장으로 넘어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청년 맞춤형 주거 정책이란 이름 아래 단순히 주택 공급 물량만 늘리는 행정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는 “물량 위주의 공급 대책은 현재 청년들의 복합적인 요구를 담아내기엔 한계가 명확하다”면서 “주거 안정이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청년들이 자산을 효율적으로 불려 나갈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이나 저리 대출을 넘어선 혁신적인 주거-금융 결합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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