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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난지원금 기부 행렬...'훼손'된 취지와 목적

 

【 청년일보 】 소비 활성화를 통해 경제를 살리는 것이 주목적인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 국민들 사이에서 잡음이 적지 않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를 사실상 ‘재난’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모든 국민들에게 가구당 최소 4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지난 11일부터 15일 동안  전국 997만여 가구가 총 6조 6732억원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난지원금의 취지는 명확해 보인다. 전 국민들의 소비를 적극적으로 유도해 침체한 경제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 확산 및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여파로 벼랑 끝에 내몰린 소상공인들을 돕기 위해 재난지원금의 사용처를 일부 제한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자’라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등 일부 기부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도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먼저 밝혔고, 이후 고위공직자들과 지방자치단체가 잇따라 기부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간 기업 중에서는 금융업계가 기부에 앞장서고 있다.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 금융업은 정부의 입김을 많이 받는 만큼 정부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 13일 신한금융지주를 비롯해 우리금융지주, BNK금융지주는 ‘계열사 임원 전원이 재난지원금을 전액 기부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공식 배포했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메리츠금융그룹이 ‘계열사 임직원 2700여명이 기부에 참여한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바 있다.

 

이들은 기부 취지에 대해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 기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하다. 문 대통령부터 시작된 기부가 공직사회로 확대되고, 또 이 같은 분위기는 민간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는 모양새다. 실제로 향후 여타 기업들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부행렬에 동참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류를 보면서 사회지도층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간 쪽에선 ‘소비 활성화’라는 재난지원금의 취지를 고려하면 대통령의 기부 행위는 되레 정책 취지와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기부한다는데 고위공무원들은 물론이고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기업들도 결국 동참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면서 "이는 소비 활성화란 재난지원금의 취지를 고려하면 이율배반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한다. 선행(善行)을 베풀 때 많이 쓰는 말로,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을 돕기 위한 목적인 선행이 외부로 드러날 경우 그 의미가 퇴색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예수는 선행의 목적이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기쁘게 하는 데 있다고 했다.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인 선행은 타인에게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남의 시선에 상관없이 선행하는 습관을 익히라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문 대통령이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겠다고 나설 게 아니라 소상공인들을 직접 찾아가 재난지원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예수님의 말씀처럼 '남몰래' 선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혼란을 야기하지 않았을 듯하다.

 

국민들은 정부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에 따라 행동에 적잖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관여자들의 처신은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난지원금의 취지와 목적은 소비 활성화다. 정부와 여권은 야권의 반발에도 불구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정부다. 그런데 정부가 되레 기부하는 분위기를 선도하고 나서면 국민들과 기업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 청년일보=정재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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